자식이면서 부모인 내게 '어버이날'이 지닌 두 의미

심정화 2024. 5. 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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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냉전 중 맞이한 5월 8일, 사이좋은 모습도 아이들에겐 선물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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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화 기자]

남편과 며칠째 냉전 중이었다. 무슨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청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다. 성격이 너무 달라서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가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서로 달라서 생기는 문제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평소에 남편과 그리 알콩달콩하게 지내 온 것도 아니니 서로 데면데면해져도 별로 불편한 건 없었다. 그런데, 둘이서 함께 신경 써야 하는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게 문제였다. 양쪽 부모님께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지 상의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서먹하니 말을 꺼내기가 껄끄러웠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쌓인 정
 
 돌아온 어버이날(자료사진).
ⓒ 픽사베이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기다렸지만 특별한 날을 챙기는 건 결혼한 이후로 줄곧 나의 몫이었으니, 이번에도 애가 타는 쪽은 나였다.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버이날 하루 전에 남편에게 문자로 부모님의 계좌번호를 적어 보내며 용돈을 보내드리라고 했다.

아들 이름으로 보내졌을 텐데도 시어머님은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셔서 고맙다고 하셨다. 친정엄마는 또 사위에게 전화를 하셔서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솔직히 남편이 미울 때는 시댁에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만,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괜히 눈치라도 채시면 걱정하실 것 같아 여느 때처럼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버이날 아침에는 양쪽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인사를 드렸다. 직접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에 통화 말미에 손가락 하트까지 만들어 보이며 처음으로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분명 남편에게는 아직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데도 시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족으로 지내면서 남편과 상관없이 시부모님과도 쉽게 끊을 수 없는 깊은 정이 쌓인 것 같았다.

자주 영상통화를 하는 친정 부모님도, 어버이날이라서 그런지 전화기 화면에 보이는 모습이 어쩐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에 아버지 비위 맞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던 터라 두 분 사이를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친정 부모님도 그렇고, 간혹 티격태격하시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양쪽 모두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고 계신 것이 참 감사하다. 부디 두 분이 서로 다정하게 오래도록 함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자식에서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챙김을 받는 부모가 될 차례였다. 부모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거실로 나와보니 아이들이 주는 선물과 편지가 놓여있었다.

편지 안에 쓰여있던 많은 감동적인 말들 가운데서도 나는 '엄마가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들도 언젠가 부모가 될 텐데 
 
 어버이날 딸에게 받은 편지
ⓒ 심정화
아무래도 요 며칠 집안의 냉랭한 분위기를 아이들도 느끼고 있었나 싶었다. 매일 아이들이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도 않았는데, 내가 너무 굳어있는 표정만 보여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편지를 다시 찬찬히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이 서로 다정하게 지내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서로 다정한 부모의 모습을 바라고 있을 텐데. 그리고 부모인 우리를 보면서, 아이들도 이 다음에 자신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나갈 텐데.

그러고 보니 자식이면서 부모이기도 한 나에게 '어버이날'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고마움을 깨닫고 감사를 전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는 날인 것 같다.

어느새 남편이 미워도 시부모님은 미워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내 아이들도 이제 다 커서 머지않아 결혼도 하고 부모도 될 것이다.

이제 남편과 성격 차이로 다투고 냉랭해질 나이는 지난 것 같다. 우리가 부모님께 늘 바라는 것처럼 우리 부부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이 외식을 하자는데, 그 틈을 타 나도 남편에게 슬쩍 술 한잔 따라줘야 할까 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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