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달라진 바다, 40년 전 ‘안전’ 기준 고집해선 안 돼”

장정욱 2024. 5.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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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기후 변화 따라 매년 선박 사고 증가
먼바다 조업 어선, 안전 기준은 그대로
“선박 구조적 문제부터 고민해야”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올해 봄철은 유독 어선·선박 사고가 잦았다. 지난 2~3월에 발생한 인명피해만 해도 20여 명이 넘는다. 단순히 변화무쌍한 날씨나 선원들 ‘안전 불감증’만 탓하기엔 늘어나는 사고 규모가 심각하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김준석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이사장은 선박의 구조적 안전 기준 개선부터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발생한 어선 인명피해 사고는 해경에 신고 접수된 것만 7건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인근 해상에서 조업하던 6t급 어선이 전복해 2명이 숨진 사건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도 남방 해상에서 9명이 사망 또는 실종한 사건까지 모두 2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유독 해빙기 어선 사고가 잦은 것은 날씨 영향이 크다. 봄철에는 큰 일교차로 해상 안개(해무)가 평소보다 많이 발생하고 가시거리도 1㎞ 이하로 짧다. 부산과 인천 등 5대 항구에서 봄철 발생하는 평균 안개 일수는 평균 6.4일로 겨울철 2.8일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기후 변화로 예상하지 못한 기상 악화도 잦다.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해상에 강한 돌풍이 부는 경우가 많다. 기상 상태가 수시로 바뀌고, 예기치 않은 너울성 파도를 맞는 경우 작은 어선은 중심을 잃기 쉽다.

안전 불감증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나쁜 날씨에도 무리하게 출항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어선들은 먼 바다로 나가면서 GPS를 기반으로 한 ‘선박 입출항 자동 신고 장치(V-PASS)’와 ‘자동 선박 식별 장치(AIS)’ 등 어선 위치 발신 장치를 끄는 경우가 있다. 연안 조업이 금지된 일부 근해 어선들이 조업 구역을 다른 어선에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신 장치 전원을 끄는 것이다.

장치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도 특별한 제재가 없어 어민들이 장비 관리에 무신경한 경우도 있다. 신호 송수신 거리가 30㎞ 남짓이라 먼바다로 나갈수록 GPS 신호가 끊길 위험이 크다.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68㎞ 해상에서 전복한 제주 선적 20t급 선박은 V-PASS와 AIS 두 장비를 모두 갖췄음에도 사고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는 변했는데 선박 안전 기준은 40년째

어선 사고가 급증하면서 관계 당국은 선박 안전 검사를 강화하고 선주와 선원들에 대한 교육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해상 조업 상황이 악화하는 터라 이러한 검사와 교육만으론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통계가 나온 건 아닌데, 제가 최근에 본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기상특보 발효일수가 연평균 14% 이상 늘어났다. 동해는 2014년 연간 기상특보가 144건 발효됐는데, 2023년에는 600건으로 늘었다. 서해도 (같은 기간) 145건에서 564건으로 늘었다. 기상특보 발효 건수랑 선박 사고랑 비교해 보면 그래프가 거의 비슷하다. 이걸 보니 근본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김준석 KOMSA 이사장은 기후 변화로 기상특보가 잦아지는 게 현실이라면 결과적으로 그에 맞는 대응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선박 구조를 기상 이변 상황에 맞도록 바꾸는 거다. 김 이사장은 “기후 변화로 근해 어업 자원이 고갈된다. 그러면 어민들은 자꾸 먼 바다로 나가게 된다. 다른 어선과 경쟁도 해야 한다. 그런데 먼 바다 상황에 맞는 어선 안전이나 조업 기준 같은 게 없다. 땜질 방식이 아닌 근본적으로 어선 규제를 ‘안전’ 위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이 바꿔야 한다고 꼽은 대표적인 어선 구조는 바로 배를 조종하는 공간, 즉 조타실(操舵室) 위치다. 우리나라 어선 조타실은 대부분 배 뒤쪽에 있다. 조타실이 선미(船尾)에 있는 이유는 엔진에서 발생한 동력을 전달하기 편한 것도 있지만, 조업 공간이 넓어지고 더 많은 어획물을 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유럽쪽 어선은 조타실이 배 앞머리에 있다. 조타실이 뱃머리에 있으면 시야 확보가 수월해 그만큼 안전하다. 여객선 조타실이 뱃머리에 있는 이유다. 정찰이나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군함의 조타실이 선미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럽에 있는 어선을 보면 소위 말하는 조타실이 앞쪽에 있는데 우리는 다 뒤쪽에 있다. 뒤쪽에 (조타실을) 놓는 게 작업물을 싣기 편하다. 대신 시야 확보가 안 돼서 안전에는 엄청 안 좋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어선 구조 자체가 안전보다는 조업 편의에 맞춰져 있다. 작은 선박이라도 우리와는 시각이 다른 거다.”

김종욱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3월 9일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방 37해리 해상에서 전복된 선박 구조 현장을 찾아 상황 지휘하고 있다. ⓒ뉴시스

“어선감척 끝나면 안전·효율·생산성 고민해야”

치열한 경쟁도 완화해야 사고 예방이 가능하다. 근해 자원 고갈로 작은 배를 몰고 계속 먼 바다로 나가는 게 어부들의 현실이다. 한 번 출항하면 최대한 많은 자원을 가득 싣고 와야 한다. 정부가 정해 놓은 조업 범위를 벗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쟁이 심화하면 어떤 대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가 지금 어선 감축 사업을 하는 데, 이게 어느 정도 완료되면 남은 어선에 대해서는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물론 돈이 많이 들거다. 그래서 별도 기금을 조성한다거나 특단의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배(어선)를 줄이는 것 뿐만아니라 하드웨어 쪽으로도 투자를 대대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면서도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은 어선 선대로 바꿔야 한다.”

김 이사장은 어선 감축이 1차 과제라면 2차 과제는 효율·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구조적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수산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을 거친 전문가로서의 조언이다.

“이제 기후도 바뀌고 어종도 달라진다. 그런데 지금 3~40년 전에 어선 기준과 자원 규제 틀을 가지고 정책을 이어가서야 되겠나? 어려운 과제지만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있어 KOMSA도 해양 교통·안전 전문가로서 역할을 많이 하려고 한다.”

KOMSA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해양안전사고는 모두 899건이다. 사고로 발행한 인명피해는 330명이다.

인명피해자 가운데 37.8%는 작업 중 안전사고로 발생했다. 어구나 밧줄(로프)에 의한 사고 21.2%, 해상 추락 20.2%, 나홀로 조업 중 사고 19.2% 등이다.

조업 중 그물을 끌어 올리다가 신체가 기계에 끼이는 양망기 사고가 많았다. 던지던 그물에 발이 감겨 바다에 빠지거나 조업 중 당기는 힘이 큰 어구나 로프 등에 맞아 바다로 추락해 사망 혹은 실종되는 경우도 다수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KOMSA는 선박의 구조 기준만 놓고 주로 역할을 해 왔는데, 이제는 소위 산업안전보건 분야까지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박의 작업 매뉴얼(지침)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전문적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선박 구조나 이런 부분은 중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할 문제이고, 선원 안전 관리 측면은 2~3년 이내 단계적인 효과를 내는 형태로 가면 바다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바다 위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급변하는 바다 환경을 걱정했다. 안전 조업에 있어 어민들의 자발적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구조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과거 방식이 아닌, 달라진 바다 사정에 맞는 방법을 다시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수부 등 관계 기관과 손발을 맞춰야 함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법 개정도 해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장이 구조적인 개선, 근간으로부터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그게 바로 KOMSA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떤 기관보다 그런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것도 KOMSA라는 사실이다.

김 이사장은 “예전에는 학교 교육을 보면 (육상의) 교통안전 교육만 해 왔는데, 해수부와 우리를 비롯해 많은 기관이 노력해 올해부터는 해양 안전도 정식 교육 과정으로 들어갔다”며 “특히 안전 불감증으로 발생하는 사고가 많은 만큼 국민이 더 많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면 좋겠다. 우리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인력을 투입해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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