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얇은 곳

2024. 5.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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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 특별한 사물을 통해 현실과 일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보이는 세계 너머 하나님의 세계, 시련 너머 환희를 이어주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겠거니 하고 상상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불완전하기에 이런 특별함을 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본성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와 교회 문화는 특별한 것을 추구하는 행위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여러 예로 보여줍니다.

이야기 하나 해보지요. 유럽 대륙은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진 곳으로 그중에서도 켈트족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켈트족이 기독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5세기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에 그들만의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킨 후 ‘켈틱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는 물론 영국 문학과 예술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켈트족 사이에서는 ‘얇은 곳(Thin Places)’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신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나 사람 또는 사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켈트족 말을 빌리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최소 두 개 이상의 차원이 겹쳐 공존한다고 합니다. 이 세계들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도록 가림막이 존재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그 가림막이 너무 얇아 서로의 세계를 엿보고 심지어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얇은 곳’입니다.

낯설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얇은 곳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곳은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마법사에게만 열리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마법의 세계와 일반 세계 사이를 오가는 통로로서 주인공들이 이곳을 통해 두 세계를 넘나듭니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바꿔볼 만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얇은 곳’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하늘과 땅 사이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과 교감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과 공간이 됩니다. 이러한 장소에 서거나 이런 사람을 만나면 우리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경외심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모세의 불붙은 떨기나무 사건이나 바울의 셋째 하늘 환상 등이 얇은 곳의 경험일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모든 장소와 경험이 얇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따르면 우리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 얇은 곳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에겐 매일 아침 걸어가는 길모퉁이가 얇은 곳일 수도 있고 매일 앉아 글을 쓰는 책상일 수도 있습니다.

얇은 곳의 경험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산책길에서 곱게 자라나는 노란 꽃을 보면서, 그림 한 장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마음이 깨지고 열리는 경험이 일어날 수 있고 쌔근쌔근 잠든 아이를 보고 있다가, 때로는 심각한 질병과 고통 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얇은 곳의 경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세계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숨결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얇은 곳이란 어떤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했다는 그 어려운 신학 용어도 이런 뜻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사소하고 하찮고 반복되는 우리 일상 가운데 계신다!’ 여기서 우리 마음을 한 폭 더 넓혀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얇은 곳이 되면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입니다.

가림막이 점점 두터워지는 각박하고 혼란한 시대입니다. 적어도 교회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서로의 형편을 돌아보고 마음을 넘나드는 이 땅의 ‘얇은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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