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모두를 위한 것일까?

김소연 2024. 5.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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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모델들만 오르던 런웨이에 옆집 할머니가 나오고, 신체적 다양성을 가진 이들을 위한 옷은 한층 패셔너블해졌다. 패션 다양성 시대, 청신호가 켜졌다.

1, 8 스타일리시한 의족을 선보이는 주얼리 브랜드 위민.

2, 9 타미힐피거의 어댑티드 컬렉션. 입고 벗기 편하도록 벨크로를 부착했다.

3 내추럴 뷰티! 뉴 비전을 담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캠페인 화보.

4 최초의 장애인 트랜스젠더 모델인 아론 로즈 필립.

5 화합의 장을 방불케 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1990 S/S 컬렉션.

6 손을 쓰지 않고 착용 가능한 나이키 플라이이즈.

7 미우미우 2024 F/W 런웨이에 오른 70세 의사, 친 후이란.

어릴 적 아버지는 늘 패션쇼가 나오는 TV 채널을 틀어놓았다. 그때인 것 같다. 패션을 흠모하게 된 것이. 하지만 자라면서 패션은 소수자의 편에 가깝다고 느끼게 되었다. 깡마른 몸, 럭셔리,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등 패션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현실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였다.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를 알게 됐고, 그의 컬렉션을 찾아보던 중 1990 S/S 컬렉션을 발견하게 됐다. 파리 외곽의 황무지에서 열린 이 쇼는 누구나 와서 보고 즐길 수 있었고, 선착순으로 자리에 앉도록 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과 프레스, 바이어들이 관객석에 뒤섞여 있었다. 이런 방식의 쇼는 당시 이례적인 것이었고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마르지엘라가 꿈꾼 그날의 정신은 인터넷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실시간으로 쇼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글렌 마틴스는 디젤 2024 S/S 컬렉션을 통해 오픈형 메가 패션쇼를 선보였고, 쇼장에는 무려 7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2024 F/W 컬렉션 역시 1천 명의 사람과 대규모 줌 미팅을 여는 참신한 쇼를 선보였다. 벽면을 채운 거대한 스크린에 1천 명의 사람이 디젤 쇼를 생중계로 관람하고, 런웨이를 구경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쇼장 벽에 라이브로 송출했다. 쇼가 시작되기 72시간 전부터 준비하는 과정을 SNS를 통해 공개하기도. 미우미우 2024 F/W 컬렉션은 또 어떤가. 미우치아 프라다는 미우미우가 ‘모든 여성을 위한 옷’이라고 천명하듯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들을 캐스팅했다.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아이콘이자 모델인 28세의 지지 하디드와 미우치아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한 70세의 의사이자 인플루언서인 친 후이란까지 모두 한 무대에 올랐다. 젊은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미우미우를 우리 할머니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처럼 모델이 아닌 일반인이 런웨이에 오르는 일은 최근 들어 부쩍 늘었고,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디자이너 힐러리 테이무어는 신체적 다양성을 고려한 모델 캐스팅과 사회적인 메시지, 특히 소외되는 커뮤니티의 투쟁을 담으며 패션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모스키노 2022 S/S 컬렉션을 통해 데뷔하고, 매 시즌 콜리나 스트라다의 런웨이에 서는 아론 로즈 필립(런웨이에 오른 최초의 흑인 트랜스젠더이자 장애인 모델이다)은 데뷔 전인 2017년,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솔직히 내가 모델 에이전시 눈에 띄면 모두 끝이야! 너희 전 세계 말이야! 진정한 다양성의 시간이 왔다! 애들아, 가자!” 아론의 말을 증명하듯 마른 몸의 백인 여성 모델만 런웨이에 올리기로 유명했던 빅토리아 시크릿도 다운증후군이 있는 모델이나 다양한 신체 사이즈를 가진 이들을 모델로 기용하며 새로운 비전을 선언했다. 단순히 다인종 모델과 소수자를 런웨이에 등장시키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지만, 소수자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드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런웨이 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이키가 출시한 플라이이즈 스니커즈는 뇌성마비를 앓는 한 소년이 보낸 한 통의 편지로부터 탄생했다. 나이키는 소년의 바람을 담아 타인의 도움 없이 손을 전혀 쓰지 않고도 신발을 신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타미힐피거의 어댑티브 컬렉션 또한 단추 대신 벨크로나 자석을 사용하고, 한 손으로 열 수 있는 지퍼를 다는 등 편의성을 고려한 의류를 선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만 착용하는 옷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옷이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모두를 위한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바로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론칭한 장애인을 위한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 하티스트(Heartist)와 베터베이직(Better Basic)이 그것이다. 두 브랜드 모두 ‘누구든’ 입을 수 있는 쉬운 패션을 제안하지만, 아쉽게도 선택할 수 있는 스타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시각장애인의 편리성을 고려한 패션 액세서리와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아인투아인(Ayintoayin). 뉴진스와 우원재 같은 뮤지션이 착용하기도 하고, 코페르니와 오토링거, 바라간 등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다루는 국내 편집숍 샘플라스에 입점돼 있기도 하다. 아인투아인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브랜드의 제품은 예쁘지 않을 거란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장애인을 여전히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스타일을 즐길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패션 시장이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만큼, 국내 어댑티드 패션 또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옷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선물한 가브리엘 샤넬은 말한다. “패션은 드레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길거리에도 있으며 우리의 생각, 삶의 방식,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계를 맺고 있다.” 샤넬이 남긴 이 말처럼 패션은 특정한 어떤 것에 제한돼 있지 않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수용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패션의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이 선도하는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를 무너뜨린 젠더플루이드 트렌드 또한 무척 반가운 일이다. 물론 ‘퀴어 베이팅’처럼 다양성이 트렌드란 이름 아래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소비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띠지 않는가. 결국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에디터는 믿는다. 기억하는가? 지금 봐도 파격적인 베네통의 1990년대 광고 비주얼도 그렇지 않았나.

LGBTQ+, 다양한 인종의 심장 사진, 이명박과 김정일이 키스하는 모습의 사진들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소리 높여 표현해야 한다. 베네통의 캠페인처럼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반감을 살 수 있을지언정. 앞서 말한 ‘좋은 사례들’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될 때까지 패션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그게 패션의 역할이며 패션은 모두에게 평등하기에, 성별과 인종,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인을 특정 부류로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트렌스젠더 모델’, ‘게이’, ‘여성 디자이너’ 등의 이름으로 ‘라벨링’하며 상호 존중과 포용성을 저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지속 가능성과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말을 남긴다. “패션은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분, 경제적 상황, 몸의 형태, 심지어 우리의 정체성과 믿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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