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 감탄사를 외친 이유

기고자/정현채 서울대의대 명예교수 2024. 5. 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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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홀가분한 죽음>

몇 년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난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가 임종하기 직전의 모습이 그의 전기에 잘 묘사돼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 로렌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그들의 어깨 너머 아무도 없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고 “오, 와우(Oh, wow)”하는 감탄사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과연 무엇을 봤기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요?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진 ‘삶의 종말체험’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추청해 볼 수는 있습니다.

삶의 종말체험은 근사체험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현상입니다. 근사체험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으나 내용은 조금 다른데,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환영을 보는 현상을 말합니다. 대체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하는 사람을 마중 나오는데,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들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이라고도 부릅니다. 한편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거리상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지인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보고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로서 우주 현상에 대해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집단인 ‘과학 의학 네트워크(Scientific and Medical Network)’의 회장을 맡은 바 있는 피터 펜윅 박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체험담을 수집해 ‘죽음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펜윅 박사는 이 책의 출간 당시에 영국 방송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죽음은 스위치가 툭 하고 꺼져 버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여러 단계의 일이 발생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어 가는 사람이 임종에 임박해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지의 방문을 받게 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 지금까지 연구된 삶의 종말체험 사례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의 마중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승 너머 피안의 세계를 봤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임종 때 보는 환영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복용중인 약물의 영향을 받아 환자가 헛것을 보는 것으로 폄하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펜윅 박사는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얘기합니다. 임종 때의 환영은 전혀 혼돈스럽지 않으며, 대부분 의식이 활짝 깨어 있을 때 발생하고, 때로는 장기간 혼수상태로 있던 환자가 죽기 전 잠깐 맑은 의식을 회복할 때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이때 임종자를 방문하는 죽은 지인의 영혼은 생전의 신체적 결함에서 완전히 회복돼 삶의 절정기 때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호스피스 활동을 한 최화숙 간호사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책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에도 비슷한 체험이 소개돼 있습니다. 대부분 임종 과정이 시작되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에게는 보이는 어떤 대상이나 존재의 마중을 받는 것으로 보이고, 현재의 세상과 죽음 이후의 세상을 함께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병상 옆의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면서 누군가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럴 때는 방금 전 이야기가 끊어진 그 부분부터 정확하게 다시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삶의 종말 체험을 할 때 임종기 환자들은 펜윅 박사가 지적한 대로 명료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가 직접 확인한 체험을 소개합니다. 현재 건국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 근무하는 윤소영 교수가 전공의 수련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동료 내과 전공의가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해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병실에 담당의사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도 환자가 자꾸만 “누군가가 방에 와 있다”라고 하자, 담당의사는 섬망으로 보고 정신과에 의뢰했습니다. 연락을 받고 온 정신과 전공의 역시 의대 졸업 동기였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보고는 “섬망이 아니고 정신도 멀쩡하다. 자꾸 이런 소리를 하니 이상하다”며 당황했습니다. 얼마 후 악성림프종을 앓던 그 동료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의 종말체험 같은 현상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런 체험을 하는 임종기 환자들에게 더 세심한 배려를 하게 됐다는 윤 교수는, 20여 년 전 임종을 앞두고 삶의 종말체험을 하고 있는 동료를 위로해주지 못한 데 대해 회한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한편, 죽기 직전이나 죽는 바로 그 시각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잠시 임종자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역시 삶의 종말체험입니다. 이런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어서, 베트남전 때 전사한 군인이 사망한 바로 그 시각에 미국 고향 집의 가족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수 년 전 직접 들은 비슷한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필자가 잘 아는 내과 교수 한 분이 오래 전에 경험한 일인데,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가 저에게 비로소 털어놓는 거라고 했습니다.

콩팥병을 앓는 환자는 몸에 쌓인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해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에 두 달 간의 단기 연수를 갔을 때인데, 새벽 2시경 숙소의 문밖에 인기척이 있어 문을 열었더니 자신에게 복막투석과 심부전증으로 오랫동안 진료를 받아 온 환자가 서 있더랍니다. 이 환자는 “이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얘기했고, 교수는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밤이 깊었으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그냥 인사하러 왔어요, 선생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 갈게요”라고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단기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이 환자의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그사이 환자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고, 사망 시각은 미국의 숙소로 환자가 찾아왔던 바로 그 때였습니다.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진료해주던 의사를 영혼의 형태로 만나보러 온 것이죠.

삶의 종말체험은 인종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임종에 임박해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공통적인 일이므로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이 관찰됐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근사체험과 더불어 삶의 종말체험은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 감’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그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다 더 높고 큰 차원에 걸쳐져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현상에 대해 알고 있으면, 가족을 떠나보낼 때 임종자를 위축시키지 않고 격려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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