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의 소개팅

오상훈 기자 2024. 5. 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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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성]② 연애와 결혼
지난해 4월, 영등포구에서 진행된 발달장애인 대상 소개팅./사진=소소한소통 제공
지난해 4월,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첫 단체 소개팅 행사가 진행됐다. 사는 곳, 직업, 취미가 모두 다른 발달장애인들이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소한소통’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주최했는데 해당 행사 이후 발달장애인 대상 데이트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애인 복지관과 관련 기관들이 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상대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목적도 있지만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데도 의의가 있다. 소소한소통은 성원에 힘입어 오는 11일에 두 번째 소개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여전히 발달장애인들이 타인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고 인격적·성적 착취에 취약하다는 건 우리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쉽게 알려줘서 좋은데 어디다 써먹나요?” 
발달장애인들은 같은 정보라도 이해하는 데 조금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내용을 조금 더 쉽게, 반복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소소한소통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을 발달장애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을 주로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들이 배운 정보들을 실제 삶에서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도 기획한다. 연애를 주제로 책자를 만들었는데 발달장애인들이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호소해 소개팅을 기획했다는 게 백정연 대표의 설명이다.
발달장애인 대상 연애 책자 ‘쉽지’./사진=오상훈 기자
책자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부터 고백, 데이트, 다툼과 이별까지 연애의 모든 과정에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 담겨 있다.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는 “책자로 쉽게 알려주니까 좋다는 발달장애인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없는데 쉽게 알려주면 뭐하냐는 반응도 있었다”며 “다른 분야처럼 이들이 연애도 경험해볼 수 있도록 소개팅을 기획하게 됐고 그 이후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또 언제 하냐고 묻는 바람에 올해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무 명이 참가하는 두 번째 발달장애인 소개팅은 오는 11일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연애하는 발달장애인 많아” 20%는 결혼하기도…
발달장애 하면 중증 자폐성 장애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발달장애는 여러 원인질환으로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뜻할 뿐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있는 반면, 사회적인 관계에서 조금씩 문제를 보이지만 직업을 가지고 자립한 당사자들도 많다.

연애는 물론 결혼하는 발달장애인들도 많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발달장애인 5만3676명(21.3%)은 ‘결혼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2만7482명은 배우자에게도 장애가 있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23 장애통계연보’를 봐도 발달장애인의 약 90%를 차지하는 지적장애인의 미혼율은 79.5%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는 “발달장애인도 연애할 수 있냐는 질문 자체에 차별적인 시선이 깔려있다고 본다”며 “비장애인들에 비해 적을 뿐 많은 발달장애인이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말했다.

◇사람 만날 기회가 너무 적어
그런데 발달장애인들은 타인을 만날 기회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고교 때까지는 특수학교에서 마칠 수 있지만 그 이후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각 구의 복지관이나 평생교육센터에 가려고 해도 대기 시간이 길고 자리가 나도 최장 5년밖에 이용하지 못한다. 이마저도 경증 발달장애인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 이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보호자들의 ‘독박 돌봄’ 문제도 심각하지만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간관계 단절’도 그에 못지않다.

발달장애인들은 일상에서 발달장애인을 마주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한다. 한국피플퍼스트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발달장애인 A씨는 “성인 발달장애인들에게 일과를 말해 달라 하면 아주 가끔 활동지원 선생님들이랑 영화관에 가는 걸 제외하고 집, 복지관, 집, 복지관을 반복하는 등 매우 제한적”이라며 “지금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도 해본 게 없으니까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는 발달장애인들이 연애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는 조금 대조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인간관계 단절은 단순히 연애 대상을 만날 기회가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사회 규범에 맞게 살아가려면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는 관계에서 성장과 실패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인데 장애 정도와 별개로 대다수 발달장애인들에겐 그럴 기회가 적다. 이는 곧 그들이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걸 뜻한다.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한 까닭이다. 

◇발달장애인 대상 범죄, 사회적 인식이 후진국이라는 뜻 
그래도 최근에는 의지가 있는 발달장애인이 인간관계를 갖도록 도와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기관이 늘었고 복지관 등에서는 발달장애인 대상 데이트 코칭 강좌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연애를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호자의 가장 큰 우려는 발달장애인 대상 범죄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악용해 인격적·성적으로 착취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발달장애인에게 1억4000여만원을 빼앗은 20대 7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공범 중 한 명을 피해자와 성관계 하도록 지시한 후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안주면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4일 동안 모텔 등에 감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발달장애인이 각종 범죄에 더 취약해졌다고 보고 있다. 앞선 사례 역시 SNS를 통한 만남이 시작이었으며 인터넷 방송 결제에 유도되거나 몸캠 피싱을 당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많다.

발달장애인 대상 범죄는 제아무리 당사자에게 예방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도 막기 어렵다. 결국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사회의 태도, 인식의 차이가 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희정 교수는 “의사소통이나 자기 옹호가 어려운 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건 사회적인 가치관과 인식과 관련이 크다”며 “발달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대상 범죄는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등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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