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결심한 뒤 사직서 제출... 참 어리석었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하다 아픈 여자들> 독후감 공모전에서 당선된 총 다섯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학교, 병원, 콜센터, 배달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일하다 아팠던 혹은 지금도 아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김혜정(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 수술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남성의 몸이 기준인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불안정한 자세로 일을 반복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려 아픈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몸에 맞지 않게 설계된 일터는 여성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위험한 공간이 된다. 표준에서 벗어난 남성, '남자답지 못한'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 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몸에 맞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관점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오른쪽 팔에는 10cm 이상 되는 수술 자국이 있다. 목에도 경추협착으로 인한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결혼 이후 경력 단절의 시간을 끝내고 희망으로 시작한 일터에서 16년간 노력한 흔적이라고 하면 조금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에게 새로운 직장은 의미가 크다. 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깊이 알게 되고, 주부로서 가사 노동과 돌봄 수행을 열심히 하였음에도 왠지 자신이 사회에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치열하게 주부이자 직장인으로 일하던 중 갑자기 오른쪽 손에 힘이 없고 두통이 심해져 병원을 찾게 됐다. 내과에서는 편두통이라고 약을 처방해 주었고, 약을 먹어도 목에 통증과 팔에 힘이 없는 증상은 지속됐다. 새롭게 시작한 일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통증을 참아내지 못할 즈음, 병원에서 받은 진단
초등학교 돌봄 교실 개관을 위해 공사 진행 과정을 살피고 교실 안에 배치할 가구와 집기, 교재·교구 등을 구입해야 했고, 교구장이나 책상 배치를 위해 직접 이리저리 옮기고 나르고를 반복하며 근무했다. 그리고 아프면 주말을 이용해 병원에서 치료하고 약을 먹어가며 견뎠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아프다고 하면 왠지 나의 잘못인 것 같고,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될 것만 같았다. 결국 통증을 참아내지 못할 즈음, 대학 병원을 찾았고 '경추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신경 손상이 우려된다고 가능한 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내 걱정보다 '돌봄 교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학생들은 누가 돌보고 내 업무는 당장 누가 대신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가능한 한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괜찮다는 정형외과를 찾아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아 봤지만, 어디를 가든 하루라도 빨리 수술받기를 권했다.
▲ 2011년, 경추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후 |
ⓒ 김혜정 |
내가 겪은 증상은 손을 많이 쓰는 노동자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특히 손에 힘을 주는 일,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걸레를 짜는 거처럼 손목을 비틀 때 통증이 나타난다. 돌봄노동의 경우 교실 청소, 간식 준비와 식기세척, 컴퓨터를 활용한 사무업무로 손목을 많이 쓰게 된다.
세 번의 큰 수술을 겪는 사이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 사이 내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간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수술 때와 다르게 두 번째 수술에는 먼저 병⋅휴직을 신청하고 회복 기간도 가질 수 있었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자신의 권리를 알게 하고 노동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기회를 부여해 주는 것 같다.
일하다 아픈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노동자들도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것이 마자기 잘못인양 느꼈다. 나로 인한 업무 공백으로 동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가 먼저였다. 나처럼 말이다. 비교적 안전한 사무업무나 돌봄을 하는 학교에서도 이러한데 건설 현장이나 다른 노동 현장은 어떠할까?
▲ 김혜정 조합원(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
ⓒ 김혜정 |
이 책은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성 산재가 더 많이 승인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지금의 산업재해 예방, 보상 제도와 정책 전반, 그것의 근간이 되는 산재 관련 통계가 모든 노동하는 몸을 담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존 제도와 정책이 담아 내지 못하는 노동자를 찾고, 노동현장에서 취약한 노동자가 겪는 위험과 차별을 수면 위로 올려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네 잘못이 아니고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이제 우리, 노동이 희망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시작이 될 수 있는 그날을 당당하게 만들어 보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소속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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