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의 애널리스트, 장민영은 정도를 걷는다

이예지 2024. 5. 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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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장민영 Risk Operation Market Analyst
메타의 아시아 본사에서 마켓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장민영은 “타인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 것”, “목표를 향해 전진하되 타인을 이용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길로 가지 말 것”이란 두 가지 신념을 품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Q :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자랐나?

A : 나는 ‘서드 컬처 키드(TCK)’다. TCK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전 해외 여러 국가에서 자란 사람을 말한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중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상하이에서 중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녔는데, 한국의 주입식 목표 지향적 교육, 유행을 좇는 문화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 해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정치, 특히 중동 정치에 관심이 많아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에 있는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중동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해 국내 기업에서 일했는데, 역시 한국 문화와 나는 맞지 않더라. 나이, 성별,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으로 인정받고 다양성을 존중받는 곳에서 살고 싶어 다시 한국을 나왔고, 홍콩에 지사를 둔 미국계 테크 회사에서 일하다가 메타로 이직했다. 지금은 조지아 공대에서 컴퓨팅 분석 석사 과정을 밟으며 업무를 병행하는 중이다.

Q : 한국 문화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 느낀 건 왜였나?

A : 보여지는 것들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문화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 얼굴에 여드름이 많다고 하더라.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에 코멘트하는 건 옳지 않다고 느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어디를 가든 나이를 묻고 나이 서열에 따라 대우가 달라졌다. 나는 패션도 유행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상대의 외모, 옷차림, 헤어스타일, 한국에서 유행중인 MBTI 등을 고려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 것도 내 철칙이다. 대신 내게 중요한 건 대화를 통해 오고 가는 서로의 생각과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다. 이를 통해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 어떤 비자로 일하고 있나?

A : 싱가포르 취업 비자인 고용 비자를 가지고 있고, 영주권을 신청할 예정이다.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며 내게 맞는 나라의 조건을 정리해봤다. 첫째, 단일민족, 단일문화가 아닌 여러 문화권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양성을 갖출 것. 둘째, 어디든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후와 도로 인프라. 마지막으로 테크 중심의 국가. 이 조건을 충족하는 싱가포르가 가장 살기 좋더라. 하지만 영주권을 받지 못하면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다.

Q : 싱가포르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 세 가지는?

A : 우선 영어 및 중국어 능력.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다. 많은 싱가포르인이 중국계라 중국어를 할 줄 알면 더 좋다. 그리고 덥고 습한 날씨 적응력. 싱가포르는 일년 내내 열대성 기후라 출근길부터 땀범벅이 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이해심. 한국식의 빨리빨리 사고방식으로는 이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면 눈치를 받는 반면, 싱가포르에서는 기사님이 먼저 차 밖으로 나가 손님을 도와주고 탑승객들도 자리를 양보한다. 매일 출퇴근길에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조금 느리더라도 양보하려는 문화가 가진 힘을 느낀다.

Q : 다인종이 거주하는 다문화 국가인데, 다양성 사이에서 차별은 없을지 궁금하다.

A : 집주인이 특정 국적의 세입자를 받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있다. 여성의 경우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구권에서 온 이들이 많기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덜하다. 이슬람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에도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한국보다 편견이 없는 편이다.

Q : 메타에 입사하기까지 커리어 패스가 궁금하다.

A : 메타 입사 전에는 5년간 테크 회사에서 제품 마케팅을 하며 엔지니어링과 데이터 분석에 흥미를 느꼈고, 독학과 부트캠프를 통해 파이선과 SQL을 배웠다.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며 지원 사업에 합격한 시점에 메타 인사팀에서 링크드인을 통해 포지션 제안이 들어와 인터뷰를 봤고, 창업과 이직 사이에서 고민하다 메타를 택했다.

Q : 어떤 스타트업을 구상했나?

A : 환경과 식자재에 관심이 많아 농업테크 스타트업을 준비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식량 부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중이어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최근엔 국내에서 해외로 진출하거나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분들을 위한 커리어 멘토십 플랫폼을 만들 생각도 있다.

Q : 메타에서 어떤 직무를 하고 있나?

A : 메타는 실리콘밸리 본사를 비롯해 더블린에 유럽과 중동 본사,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사를 두고 있다. 난 싱가포르 오피스의 리스크 오퍼레이션 마켓 애널리스트다. 메타 내 사용자와 플랫폼의 안정을 보장 할 수 있도록 데이터 분석과 오퍼레이션 업무를 하고있다.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커리어를 쌓고 싶었는데, 현재 메타에서 하는 일은 두 스킬을 모두 활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Q : 일하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궁금하다.

A :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세계 각국의 똑똑한 직원과 함께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 가장 뿌듯했다.

Q : 메타의 특징적인 기업 문화가 있나?

A : 위에서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없다. 메타는 모든 직원이 각자 맡은 프로젝트의 오너가 돼야 하는 스타트업 문화다. 한국 기업은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거나 가이드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메타는 입사하면 가이드 없이 혼자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문제점에 맞는 프로젝트 스콥을 만들고, 솔루션을 생각해내며, 프로젝트 팀을 꾸려 성과를 내야 한다. 또 다른 특징적인 기업 문화는 어느 누구와도 자유롭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Q : 비혼인지, 결혼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A :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살면서 외롭거나 심심해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로 나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책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세상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을 꿈꿨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석사 과정을 병행할 정도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성장과 배움, 성취다.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지만, 결혼해서 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면 후회할 거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계획도 전혀 없는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미래 사회의 구성원을 양육하는 건 개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일이니까.

Q : 이 일의 기쁨과 슬픔은?

A :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소셜 플랫폼에서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다양하고 유능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그러나 메타는 회사와 경제 위기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환경이기에, 항상 다음 행보를 준비해야 한다. 2022년은 코로나19 이후 빅테크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였고,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해고를 단행했다. 전 세계 수천 명의 메타 직원이 하루아침에 해고됐고, 지난해 5월에는 전체 직원의 13%, 즉 1만 명이 해고됐다.

Q : 어릴 때 무엇을 꿈꿨나? 지금, 그 꿈과 가까이 있나?

A : 내 꿈은 많이 변했지만,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같았다. 10대에는 국제정치, 특히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아 UN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싶었다. 대학 때는 구글에서 인턴을 하며 자본과 기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깨달았다. 구글은 시가총액이 전 세계 3위에 달하는 대기업이지만, 구글 덕분에 수억 명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으니까. 구글의 프로젝트들이 기업의 수익 창출뿐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나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꿈을 꿨다. 아직 꿈을 이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닌,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크고 작은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에서 근무하며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중이다.

Q :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고 싶나?

A : 어느 한 국가에 정착해 살고 싶지는 않다. 성장의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하러 떠날 거다. 두바이에서 구글 인턴부터 시작해 서울, 홍콩을 거쳐 현재 싱가포르까지, 네 곳의 도시를 거쳤다. 앞으로는 내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는 최적화된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Q : 한국을 떠나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A : 한국이 싫어서보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떠나라.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등대 같은 목적을 갖고 나왔으면 한다. 또 하나,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 남들보다 늦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난 20대 후반이 돼서야 프로그래밍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기반으로 메타에 입사했다. 90세의 일본 여성 와카미야 마사키는 인터넷도 사용할 줄 몰랐지만 60세의 나이에 코딩을 배워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 앱 개발자로 초청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생각보다 한국 밖의 세상은 정말 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Q : ‘Fun Fearless Female’ 캠페인을 메타와 함께 기획한다면, 어떤 협업을 해보고 싶나?

A : 메타는 기업 내 여성의 역할을 굉장히 중요시하고, 사내 여성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그 커뮤니티와 코스모에서 다양한 여성 직원들의 이야기를 연재해보면 어떨까?

Q : 개인적으로 가진 신념은?

A : 하나는 ‘온 진심을 다해 일하자’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 다른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큰 성공이라도, 누군가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짓밟아 얻은 것이라면 가치가 없다. 욕심이 많은 만큼 더 쉽고 빠른 지름길을 찾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정직한 길로만 가서는 빠르게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말들도 듣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경쟁 사회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승리할 수 있다고 배우니까.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상처 주거나 이용하면서 어디로든 가고 싶지 않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가를 바라고 싶지도 않다. 어떤 일을 하든 정당한 방식으로 대가를 받고자 한다. 내가 마주하고 만들어갈 조직에서 이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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