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귀한 함양 "여러 일 해봤는데, 이게 제 천직입니다"

주간함양 최학수 2024. 5. 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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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소포배달원 차슬기씨

[주간함양 최학수]

경남 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 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 

"잘 모르더라도 열심히, 그래도 성실하게"
 
 농어촌소포배달원 차슬기씨
ⓒ 주간함양
 
우체국 택배를 전달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청년이 있다. 바로 27살 차슬기씨. 우체국 소속 농어촌소포배달원이다. 택배물류업을 생각하면 매번 고객의 민원도 많을 것 같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나르는 일이 고될 것 같다. 그래도 "보람차다"며 일을 만족하는 청년 차슬기씨. 차슬기씨는 어떻게 함양우체국에서 농어촌소포배달원이 됐을까?

함양초등학교, 함양중학교, 함양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군대를 간 차슬기씨는 제대 후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당시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차슬기씨는 스타벅스 취직을 알아보던 중 사람을 구하던 목포시 스타벅스에 향한다.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차슬기씨는 300만원만 들고 목포시에 도착했다. 300만원을 원룸 보증금으로 주고 나니까 첫 번째 월세 낼 돈도 없어서 집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납부를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집주인이 경상도 아줌마여서 양해를 구하고 다음 달에 두 달 치 월세를 주겠다고 했어요."

월세는 해결했지만 가진 돈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포에 사는 사촌형에게 부탁하기도, 그리고 같이 일하는 누나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차슬기씨는 목포에서 하루에 라면 한 개 먹고 살며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2년을 근무했지만 스타벅스에서는 진급이 어려웠다.

"저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진급하고, 그러면서 직급이 낮은 제가 일을 다 하고 그래서 일을 정리하려고 했어요. 그때 마침 대전에서 청과물가게를 하던 친구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동창의 아버지까지 친하게 인사드리며 지내던 차슬기씨에게 찾아온 다음 기회는 대전이었다. 과일가게를 확장하면서 성실한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차슬기씨를 떠올렸다. 좋은 기회를 잡은 차슬기씨는 목포의 스타벅스 일을 정리하면서 바로 대전으로 향한다.

"대전 노은역 바로 앞에 있는 청과물 가게였는데 보통 과일가게와 다르게 박리다매로 장사를 하는 가게였어요. 매일 새벽에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받아왔고 가져온 물건은 당일 소진을 원칙으로 했어요. 그래서 매일 가격이 달라졌어요. 새벽에 가져온 신선한 과일을 싸게 팔면서 인기가 많았어요. 참외 철에는 다른 과일과 채소를 팔면서 참외만 80박스를 팔았어요."

정신없이 바쁘던 청과물가게. 일요일 단 하루만 쉬던 일정을 8개월 지속했다. 8개월까지만 했던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지하철역 상권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폐업하게 됐다. 그렇게 차슬기씨는 2020년 9월 고향인 함양으로 내려오게 됐다.

뭐라도 하는 삶

차슬기씨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비관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함양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25살에 함양에 왔는데 저는 그 나이도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요. 일용직 노가다, 축협에서 정육도 하고, 수동 육묘장에서 일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일 해보고, LS농기계에서 농기계를 고치는 일도 해보고요. 돈벌이가 되는 건 뭐든 해봤어요."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우체국 일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차슬기씨는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아는 분이 우체국에 농어촌소포배달원 자리가 있다는 걸 알려줘서 신청을 했는데 첫 번째는 떨어졌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당시 LS농기계에 근무하고 있던 시기라서 안 했고 세 번째 넣어서 붙었어요."

우체부 차슬기씨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친구가 소중한 물건을 보내주기도 하는 등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택배 없이 생활하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택배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살면서 택배를 기다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배송현황을 계속 새로고침 해보기도 하고 찍혀오는 전화번호에 문자나 전화를 해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만 떠올려도 택배물류업은 굉장히 고된 일이다. 차슬기씨는 이런 상황에 동의하면서도 별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일 자체가 힘든 것도 있겠지만 성격에 잘 맞아요. 전화나 문자가 오는 게 처음엔 스트레스였지만 점점 괜찮아졌어요. 일단 혼자서 일을 하니까 누구와 크게 부딪힐 일도 없고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도 아니라서 저에게 잘 맞아요."

일을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는 차슬기씨. 택배를 배달하다 보면 느껴지는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매력이 있다.

"일반화를 하긴 어렵지만, 시골은 마실 걸 엄청 많이 주셔요. 택배가 올 걸 알고 문 앞에 음료수를 두기도 하시고요. 보통 비대면 배달을 많이 하니까 집 앞에 택배를 배달하고 배송 완료 문자를 보내면 기다리다가 대문 밖으로 나오셔서 마실 거 먹고 가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함양고등학교 앞 주유소는 그냥 아예 택배배달원들 쉬고 가라고 해주기도 하시고 김장철에 배송하다 보면 고기를 구워서 입에 넣어주기도 해요. 수동에서는 사과 한 박스를 그냥 받기도 하고 봉투에 막 담아서 챙겨주기도 하고 이 모든 게 보람이에요."

목포의 스타벅스와 대전의 청과물가게에서 일 할 때도 사람의 정은 느낄 수 있었다.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나눠주는 손님들이 도시에도 있었지만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정을 분명히 느낀다는 차슬기씨. 혼자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막상 혼자 일을 하다 보면 이야기 할 대상이 없는 게 단점이다. 차슬기씨는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힘을 얻는다. 물량이 조금 여유롭다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함양은 청년이 정말 없는 곳이다. 식당에도 가게에도 시장에도 청년을 보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정밀한 톱니바퀴가 들어있는 기계에 비유하자면 작은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톱니바퀴 하나하나에 기름칠이 필요하다. 함양의 다양한 직종에 청년들이 모두 있을 때 비로소 함양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읍보다는 면이, 면소재지보다는 마을 단위가 그 현상은 훨씬 심하다.

청년이 필요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청년은 사회에서 활력을 담당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미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차슬기씨 이야기는 더 반갑다. 이 지역의 다양한 곳에서 진솔한 땀을 흘리는 청년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빛나면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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