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선생님, 임영웅 선생님… 그곳에서도 연극 하실 거죠?

장지영 2024. 5. 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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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한국 연극의 대부’ 고 임영웅 연출가 영결식
배우 박정자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고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의 대한민국연극인장 영결식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연극의 대부’ 고(故) 임영웅 연출가의 영결식이 7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전 7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뒤 그의 연극 터전이었던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을 거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치러진 영결식에는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과 후배 연극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성열 연출가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뒤 고인이 자신이 세운 극단 산울림과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해 이야기하는 육성이 흘러나왔다. 특히 그는 “60년 넘게 계속해서 연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이라는 예술이 남아있는 한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고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의 대한민국연극인장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결식에서 후배 연극인들은 한결같이 연극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기렸다. 배우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임영웅 선생님은 한국 소극장 연극의 역사를 열어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소극장(유 씨어터)를 만들기도 했었지만,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산울림 소극장을 지켜온 것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인과 여성연극 붐을 일으켰던 박정자 배우는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생으로 당시 드라마 프로듀서였던 임영웅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 선생님을 통해 배우의 자질을 다질 수 있었다”면서 “1986년 산울림 소극장 건립 1주년 기념작으로 선생님이 ‘위기의 여자’를 초연할 때 작품에 어울릴만한 여배우를 추천해달라고 하시길래 나 자신을 추천했다. 선생님은 처음엔 극 중 역할과 내가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마음을 바꾸셨고,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 선생님이 내게 인생 첫 ‘여자’를 선물해 주셨다”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바로 목소리가 떨린 박정자 배우는 “1991년 내가 50살 때 산울림 소극장에서 ‘위기의 여자’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선생님이 처음부터 나를 염두에 두셨었다”면서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두 평 남짓한 분장실에서 이번 공연을 마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곳이 그리워졌다”며 울먹였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고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의 대한민국연극인장 영결식에서 배우 전무송이 추도사를 하며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디디를 연기한 전무송 배우는 추모사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전무송 배우는 “선생님은 우리 연극계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다. 선생님이 산울림 소극장을 처음 세울 때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 때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또 배우 손숙은 “선생님은 저를 배우로 만들어주신 분이자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저를 연극으로 다시 일으켜주신 분”이라면서 “선생님은 생전에 연극밖에 모르는 외골수셨다. 소극장 운영이 힘들 때 폭파하고 싶다고도 하셨지만, 생전에 하시고 싶은 연극 마음껏 하셨다. 저세상에서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멤버들이 연극 하자며 선생님을 기다릴 것 같다”고 추모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고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의 대한민국연극인장 영결식에서 배우 손숙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새벽 노환으로 89세에 별세한 임 연출가는 한국 연극계에서 오랫동안 스승 같은 존재였다. 1934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5년 연극 ‘사육신’을 연출하면서 연극계에 데뷔했다. 1969년 부인인 오증자가 번역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한 이래 다양한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고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력은 극단 산울림과 산울림 소극장이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한 고인은 1985년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한 이후 한국 연극사에 남은 작품들을 올렸다. 산울림 소극장은 대학로의 대표적인 소극장으로 최근 폐관한 김민기의 학전과 더불어 한국 소극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특히 고인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1969년부터 50년간 1500회 이상 공연하며 22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만나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연극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해 ‘꽃님이!꽃님이!’ ‘지붕위의 바이올린’ ‘키스 미 케이트’ ‘갬블러’ 등을 연출하는 등 뮤지컬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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