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경찰 없어야 시대 고증? '수사반장 1958' 둘러싼 오해와 진실

이진민 2024. 5. 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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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MBC <수사반장 1958> ... "반장님, 전화 받으세요" 넘어설 수 있을까

[이진민 기자]

  MBC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
ⓒ MBC
 
시대물이라면 차별적인 과거까지 고증해야 할까? 딜레마에 빠진 <수사반장 1958>, 그래도 묘수는 있었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돼 전 국민적 인기를 누린 <수사반장>이 30년 만에 프리퀄(본편보다 앞선 속편)로 돌아왔다. '수사반장' 박영한(이제훈 분)이 고향 황천에서 서울 종로 경찰서에 부임한 1958년이 배경이다. 김성훈 감독은 "그 당시에 있었던 사회적 사건과 박영한 형사의 연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50년대"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새로워진 '수사반장'이지만, 여전히 한 가지는 같았다. 그건 여성 캐릭터의 실종. 메인 포스터부터 여성은 찾아볼 수 없고 주요 캐릭터는 모두 남성이다. 어쩌면 1950년대, 그것도 수사물인데 여자가 없어야 제대로 된 고증 아닐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언제나 여성은 현장에 있었다. 사라진 여성 캐릭터를 찾아서 <수사반장> 시리즈를 파헤쳤다.

과거 <수사반장>... "반장님, 전화 받으세요"가 전부?
 
  MBC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
ⓒ MBC
 
<수사반장>에는 '여순경' 역할로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김영애, 염복순, 이금복, 노경주 등이 출연했고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였기에 '여순경' 역은 스타 등용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대사는 "반장님, 전화 받으세요"가 전부였다. 2년 동안 <수사반장>에 출연한 오미희는 "캐스팅 때 대사도 없고 순경복만 입고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왜 내가 하냐고 거절했다. 내게 '원더우먼을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2년 동안 '반장님, 전화 받으세요'만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여순경' 캐릭터가 형사답게 수사에 참여하거나 사건을 도맡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일부 에피소드 속 몇 장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장르적 특성과 시대상이 겹쳐 <수사반장>에선 좀처럼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2024년, <수사반장 1958>는 달라졌을까. 총 10부작인 드라마에서 중반부인 4화까지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경기도 소 절도범 검거율 1위를 기록한 박영한을 칭찬하거나(1화) 남성 경찰에게 커피를 따라주는 것(2화)이 여성 경찰이 등장한 전부였다. 그나마 시장 장면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지만, 모두 중요도가 낮은 상인 역할이었다. 가장 비중이 큰 캐릭터는 '혜주(서은수 분)'지만, 그는 훗날 영한의 아내가 되는 인물이기에 독자적인 스토리를 구축하기보단 연인관계 속 여주인공의 전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4화에는 여성 빌런이 등장하기도 한다. 친일파 출신인 보육원 원장 '오드리(김수진 분)'는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악당이다. 하지만 해당 에피소드의 중점은 '오드리'라는 인물이 아닌 그의 악행을 밝히는 형사들이다. 또한 '오드리'는 권선징악을 보여주기 위한 악녀일 뿐, 시청자로부터 복잡한 감정을 끌어내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이와 같은 <수사반장 1958>의 여성 캐릭터 활용법에 시청자 반응은 엇갈렸다. "각색하면서 세련되게 바뀌었는데 왜 여성 캐릭터가 없는 것만 똑같냐", "그 당시에도 여성 경찰이 존재했다" 등 비판적인 시선이 있지만, "여성 형사가 없었다는 건 사실", "무리하게 여성 캐릭터를 넣으면 시대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1958년에 여성 경찰은 있었다
 
 1956년도에 촬영된 서울여자경찰서 단체 사진
ⓒ 경찰박물관
 
여성 경찰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 시작한다. 당시 여성의 권익 보호와 청소년 업무를 위해 1946년 7월 1일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었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인천에도 여성 경찰서가 세워졌다. 그곳에선 서장부터 말단 순경까지 모두 여성이었다. 황현숙, 안맥결, 양한나, 전창신 등 독립운동가 출신 쟁쟁한 여성 경찰들이 즐비했고 그들은 현장에서, 앞선에서 맹활약했다.

당시 여성 경찰의 업무는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건을 처리하거나 풍기 문란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여성 범죄를 맡았고 성매매 단속 또한 앞장서서 해결했다. 여성 경찰의 등장으로 수사 절차 과정에서 젠더 의식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1957년 대통령령 제1298호 '경찰서 직제령'에 의해 전국 4개 여성경찰서가 일제히 폐지되었다.

여성 경찰들이 뿔뿔이 흩어졌던 1958년, <수사반장 1958>는 이후의 현실을 포착했다. 6화 속 남성 경찰은 신입 여성 경찰을 향해 "너 같은 기지배가 무슨 업무"냐며 "식모 일이나 하라"고 비아냥댄다. <수사반장 1958>은 남성 형사를 메인 캐릭터로 삼으며 부차적으로 여성 경찰이 겪는 차별을 다뤘다. 만일 여성 경찰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했다 해도 오류가 아니다. 드라마에는 없어도 '여걸', '장군'이라 불리던 여성들이 거리를 누볐던 것이 진짜 현실이다.

맹렬한 <수사반장>표 여성들, 정작 활용은
 
  MBC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
ⓒ MBC
 
후반부에 도입한 <수사반장 1958>는 분위기를 바꿨다. 4·19혁명 실제 모습을 송출하며 시대가 변화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바로 다음 장면으로 여경 공채 채용 현장을 보여줬다. 그렇게 뽑힌 신입은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소녀 '난실(정수빈 분)'. 그의 등장으로 드라마 내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점차 늘어갔지만, 활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아쉽다.

난실은 "구두를 왜 안 닦냐"는 상관의 지시에 "그런 게 규정에 있는 거냐. 그러다가 중요한 사건을 놓치면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당당한 여성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향한 성차별적인 발언과 손찌검에 막아서는 건 그가 아닌 또 다른 남성 캐릭터 '상순'이다. 여성 경찰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정작 난실은 남성 경찰에 의해 구출되다니. 다가올 난실의 성장을 위한 빌드업일까, 아니면 그저 애매한 연출인 걸까.

영한의 아내 '혜주' 또한 외유내강이란 캐릭터 설명에 비해 활약이 미미하다. 혜주가 현명함을 발휘한 순간은 깡패에 쫓기는 영한을 숨겨줄 때, 영한의 고민을 들어줄 때, 영한을 돕기 위해 다친 반장을 경찰서로 데려왔을 때다. 태몽이 호랑이를 물어 죽인 강아지라면서, 그의 남다른 기지는 왜 아내로서 남편을 도울 때만 쓰이는가. 태조 왕건이 마신 바가지에 버들잎 띄어준 장화황후처럼 혜주는 자애롭고, 지혜로운 '아녀자'에 멈춰있다.

어쩌면 난실과 혜주가 차별적인 과거에 맞선 <수사반장 1958>의 한 수일지 모른다. 평범한 수가 아닌 '신의 한 수'가 되기 위해선 더 과감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선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고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졌다. 과연 <수사반장 1958>은 <수사반장> 속 '여순경' 그 이상을 선보일 수 있을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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