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바다에 가스 넘쳐나도 못 쓴다, 베트남·필리핀 '중국 울화통'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갈등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경제적 고민까지 안기고 있다. 중국의 압박으로 가스전·유전 개발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 앞바다에 매장된 풍부한 자원을 두고도 해외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자원 빈국(貧國)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과 동남아의 남중국해 갈등 역사는 90년이 넘는다. 중국은 1953년부터 ‘남해 구단선’(南海 九段線)이란 자의적 해상 경계선을 긋고 남중국해의 90%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해 왔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더 강화됐다.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가 이 해역에서 벌이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엔 한술 더 떠 정부 공식 표준지도에 대만 동부 해역을 추가한 ‘10단선’을 주장 중이다.
中 방해에 13년 전 찾은 가스전 개발 막혀
동남아 국가들에겐 에너지 부국(富國)이 될 기회지만 ‘그림의 떡’이다. 중국의 압박에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베트남은 2011년 중부 해안에서 약 80㎞ 떨어진 해역에서 1500억㎥의 천연가스전을 발견했다. 당시로선 수도 하노이에 수십 년 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정도의 매장 규모였다.
베트남 정부는 곧바로 미국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을 중심으로 가스전을 개발하는 ‘블루웨일(Blue Whale)’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부터 가스 생산이 시작돼야 했다.
하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해 12월 입수한 베트남 정부 기록에 따르면 개발은 시작도 못 했으며 향후 일정도 정해진 것이 없다. 사업 지분 64%를 소유한 엑슨모빌의 철수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사업이 벽에 막힌 건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베트남과 인접한 하이난 섬에서 해양경비대(해경) 소속 1만2000t급 함정을 수시로 남중국해에 투입해 위협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에너지 자원 개발은 중국의 영해 주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다.
블랙아웃 공포에도 中 물대포 공격에 LNG수입
다급해진 필리핀은 남중국해 가스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취임 이후 남중국해를 두고 영유권과 천연자원 등 경제적 이익 방어에 힘쓰는 것을 중점 과제로 삼고 있다.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재임 당시 추진했던 중국과의 남중국해 자원 공동 탐사 계획이 결렬된 데 따른 것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구상은 그러나 중국의 무력시위로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인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에서 중국 해경 선박의 물대포 공격으로 필리핀 해경 선박 1척의 난간과 지붕이 파괴됐다. 중국 해경은 3월 5일에도 스카버러 암초 남쪽 아융인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에서 필리핀 해경에 물대포를 쏴 최소 4명의 필리핀 선원이 다쳤다.
중국 등쌀에 자원 개발 길이 막힌 두 나라는 어쩔 수 없이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필리핀이 2025년 9월까지 액화천연가스(LNG) 구매에 약 14억 달러(약 1조9400억원)를 쓰고 베트남은 같은 기간 3억 7000만 달러(약 5100억원)를 들여 LNG를 수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빌 헤이튼 연구원은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새로운 유전 개발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며 “이러한 압박을 통해 베트남과 필리핀이 에너지 자립에 실패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도와준다지만, 두려운 중국 회색지대 전략
그러나 이런 노력도 큰 소용이 없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오랫동안 남중국해에 임의로 인공섬을 건설했다. 여기에 설치된 20여 개의 전초기지엔 활주로와 레이더 등 군사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레그 폴링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 국장은 “인공섬 건설로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남중국해 움직임을 시시각각 감지해 즉각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해경과 무장 민간선박 같은 비정규 전력을 통해 벌이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도 무섭다. 미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회색지대 전략을 통해 중국은 법 집행(해경)과 군사 행동(해군)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동남아 국가들의 군사적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폴링 국장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썬 중국 위협이란 리스크가 있는 남중국해를 다른 지역의 유전과 가스전을 제쳐두고 개발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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