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어느 사장의 반성

김혜원,산업1부 2024. 5. 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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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는 취재 목적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현장이다.

삼성전자 주총은 물론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수백만 주주 앞에서 경영 실패를 시인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딱히 없었던 터라 경 사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더 주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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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산업1부 차장


매년 3월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는 취재 목적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현장이다. 지인 중에 ‘삼성전자 7층’에 사는 ‘동학 개미’가 적지 않다. 그들을 대신해 올해 주총에도 참석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이 쓴 통렬한 반성문이다. 경 사장의 진솔한 답변 덕분에 이날 삼성전자가 주총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주주와의 대화’ 시간은 의미가 있었다. 한 주주가 ‘삼성전자 반도체가 적자를 지속하고 주가가 오래 지지부진한 이유가 무엇이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따져 묻자 경 사장은 “업황이 하강국면인 점도 있었지만 사실 사업을 잘못한 부분이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몸을 한껏 낮췄다. 삼성전자 주총은 물론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수백만 주주 앞에서 경영 실패를 시인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딱히 없었던 터라 경 사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더 주목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경 사장의 입을 통해서야 비로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의 실기(失期)를 인정했다. 물론 경 사장이 고개만 숙이지는 않았다. 자체 인공지능(AI) 가속기 ‘마하-1’을 개발 중인 사실을 처음 알렸고, HBM을 잇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와 지능형 반도체(PIM)는 실제 적용을 놓고 고객사와 협의 단계라며 주주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 주총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초격차’가 아니라 ‘추격자’ 입장이 된 삼성전자가 HBM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올해 얼마나 줄일지가 관심일 정도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HBM 출하량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2.5%로 1위를 유지하고 삼성전자가 42.4%로 뒤따를 것으로 봤다. 점유율 10% 포인트 이상 차이는 삼성전자엔 뼈아프다. 경 사장은 최근 임직원 앞에서도 “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 2라운드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고 재차 반성문을 썼다.

삼성전자가 도중에 HBM 투자를 줄인 것은 경영진 오판이 크게 작용했지만 AI 반도체 육성을 외친 정부의 빗나간 정책 판단도 한몫했다. 중앙부처 고위 관료는 “범부처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HBM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갑자기 뒤엎고 PIM으로 예타 대상을 돌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고 했다. 정부가 ‘2021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미래차·바이오와 함께 시스템반도체를 ‘혁신성장 빅3’로 정하고 신개념 반도체로 PIM을 지목한 것은 지나치게 앞서간 판단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2028년까지 1조원이 넘는 PIM 예타 사업비가 HBM 기술 개발에도 쓰였다면 어땠을까. PIM은 최기영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서울대 교수 시절 연구에 매진하면서 논문을 여러 차례 쓴 주제이기도 해 불편한 시선이 있었다.

삼성전자가 현재 겪는 위기는 과거 인텔과 닮았다. 한때 PC와 서버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였던 인텔은 모바일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뒤처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후 CEO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반도체 제조 기술과 능력을 강화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으면서 재기를 도모했다. 기술력이 좋은 외부 업체와의 과감한 전략적 파트너십이나 인수·합병(M&A)도 주효했다. 실패가 곧 패배는 아니다. 기본으로 돌아가 재도전할 더 좋은 기회를 찾으려는 리더와 구성원의 태도가 중요한 순간이 삼성전자에도 왔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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