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반려동물에게

권아름 2024. 5.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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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만난 반려가족 이야기.
“버두가 맡는 흙냄새, 풀내음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자연을 즐길 줄도 알고, 여유와 쉼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죠.”
「 우리만의 보물찾기, 도예가 이혜미 + 버두 」
얼핏 봐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듯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동네. 효창공원 둘레길을 지나 하얀 건물 앞에 서니 노릇하게 익은 갈색 털의 리트리버 ‘버두’와 작업복 차림의 이혜미 작가가 마중 나온다. 반려견은 주인을 닮는다더니 환하게 웃고 있는 둘의 표정이 똑같다. 오랫동안 한남동에서 오브제와 테이블웨어를 빚어온 이혜미 작가는 지난해 효창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4층 상가주택을 작업실과 갤러리, 집으로 레너베이션했다. “13세인 노견 버두를 위해 공원이 가까운 동네로 이사했어요. 한남동은 반려동물 친화적 동네지만, 낙엽에 몸을 뒹구는 걸 좋아하는 버두에게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여름에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산책하는 일도 힘들고요.”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도심 라이프를 즐겨온 그녀가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다.

“버두는 결혼 전 남편이 키운 강아지였어요. 버두가 일곱 살 때 저희 부부 집으로 왔고, 그 후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저는 원래 워커홀릭이었어요(웃음). 작업실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버두와 함께하면서 버두가 맡는 흙냄새, 풀내음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자연을 즐길 줄도 알고, 여유와 쉼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죠.” 버두가 그에게 가져온 변화는 또 있다. ‘남편과 나’로 정해둔 가족의 외연을 확장해 준 것이다. 불규칙적인 생활도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책임감이 생겼을 뿐 아니라 스스로 체력과 건강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혜미 작가의 작품은 꾹꾹 눌러 빚은 손자국이 난 겉면에 은채를 덮어 굽고, 연마하는 반복 과정을 거친 시간의 흐름이 쌓여 있다. 정신과 육체, 시간과 노력을 열렬히 갈아넣던 그녀에게 버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쉼을 선사한 선물 같은 존재. 이혜미는 지난해 지병을 앓아온 버두가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파 마음의 준비를 했다. 모든 작업을 멈추고 일주일 동안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동안 버두는 잘 견뎌주었고, 이제 건강을 회복해 그만의 눈웃음을 되찾았다.

“당시 버두가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은 지금과 달랐어요. 마치 ‘누나, 나 이제 갈 수도 있어. 한번 연습해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슬퍼할 우리를 미리 훈련시키는 듯했어요.” 작업실과 일상의 가장 긴밀한 메이트로서 함께 교감한 시간이 길었기에 둘은 눈빛만 봐도 서로의 심정을 알았을 것이다. 그 후 이혜미 작가는 버두와 더 많이 사랑하고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부부가 팔짱을 끼고 나가는 시늉을 하면 팔짱 사이에 얼굴을 쏙 들이민다는 버두. ‘벗 우(友)’에서 따와 이름 지은 버두는 이혜미 작가 부부에게 끊임없는 우정과 사랑, 형용할 수 없는 삶의 풍요를 선물할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 둘도 없는 행복, 페인터 켈리 박 + 감자 」
스튜디오 문을 열자 하얀 털 뭉치가 쏜살같이 나와 꼬리를 힘껏 흔든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엉덩이를 내줄 정도로 살가운 이 강아지의 이름은 ‘감자’다. 다섯 살, 사람 나이로 따지자면 청년이라 에너지가 넘친다. 감자는 캔버스 위에 텍스트를 그려내는 작가 켈리 박의 반려견이다. “반려동물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말을 듣고 ‘감자’로 지었어요.” 복층으로 이뤄진 작업실은 켈리 박 작가의 집이기도 하다. 아래층은 작업하는 공간으로, 위층은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구분을 지었다. 덕분에 온종일 이곳에서 감자와 시간을 보낸다. 켈리 박은 감자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말했다. “수많은 강아지 사이에서 감자같이 생긴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어요. 쳐다보는 눈빛이 애처로워 마음이 끌렸죠. 그렇게 제 소중한 가족이 됐습니다.” 알록달록한 물감 자국이 가득한 작업실에는 감자의 흔적이 구석구석 흩어져 있다. 물통과 이젤 사이 놓인 귀여운 핑크색 스툴은 감자가 눕는 자리다. 켈리 박이 작업하는 동안 감자는 이곳에 누워 있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어요. 어느 날 한참 작업하다 뒤돌아보니 제 주위로 장난감이 가득 둘러져 있는 거예요. 감자가 놀아달라고 갖다 놓은 것이었죠. 그때부터 작업하는 시간과 감자와 보내는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켈리 박은 반려견과 함께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부지런함과 세심함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일상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감자는 잘 때 한 번씩 코도 골아요. 너무 사랑스러워 웃음이 나요. 사실 혼자 있으면 웃을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감자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죠. 긍정에너지가 차올라 최근 작업은 색도 다채롭고 주제 역시 좀 더 친숙한 일상에서 찾게 돼요. 작품은 제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동안 그녀는 ‘사랑(Love)’을 주제로 추상적인 시리즈 작품을 이어왔는데, 최근에는 일상을 주제로 한 작업에 주력한다. 감자가 없었을 땐 모르던 것들, 사소한 일상과 소중한 하루를 작품에 담아낸다. 요즘은 오는 6월, 일상의 낙관적 시선이 담겨 있는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지난 전시 오프닝에는 감자와 함께 나비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다는 켈리 박. 다가올 전시 오프닝에서 감자와 함께 보여줄 ‘케미스트리’ 또한 기대된다. 켈리 박 전시장에서 풍성한 꼬리털을 흔들며 발아래를 킁킁대는 강아지가 있다면 “감자!” 하고 인사를 건네보길!

“고양이들도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니까요. 우리 셋은 서로에게 기쁨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있어요.”
「 작업반장의 일일, 오자&제비 부부 + 제제 」
오자와 제비 그리고 제제. 은은하게 감도는 잿빛 도자 제품을 선보이는 오자크래프트의 주인장 부부와 반려묘 이름이다. 서로를 본명 대신 가명으로 부르는 이 가족의 이야기는 동화 같다. 남편 오자는 디자인과 제작을, 아내 제비는 오자크래프트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는다. 제제는 파주 작업실의 작업반장이다. “제제는 잔소리꾼이에요. 말이 아주 많아요. 특히 모두 작업에 열중하고 있으면 온 작업대에 참견하면서 왜 놀아주지 않느냐고 짜증을 내죠. 가끔 벌레들이 날아다니면 흥분해서 그릇을 깨뜨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저희는 ‘아, 제제가 검수했구나. 마음에 안 드는구나?’라고 생각해요(웃음).” 아내 제비의 설명을 들으니 두 사람이 붙인 제제의 별명이 ‘작업반장’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제는 소심한 편이었고, 사람을 무서워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제비의 어머니가 밥을 챙기던 길고양이 중 하나로, 결혼 전 아내 제비와 함께 생활했다. 제비와 오자가 처음 만나기 시작한 시절에는 세탁기 뒤에 숨고, 싫다며 소리치던 제제가 이제는 온 작업장을 누비고 다닌다. “처음에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힘들었어요. 점점 괜찮아졌죠. 집에서 함께 지내다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작업실로 데리고 왔는데 덕분에 제제의 사회성이 길러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작업실에 오가는 사람들을 접하고, 또 그분들의 예쁨을 받으면서요. 사실 작업장에는 위험한 도구가 꽤 많아 걱정했지만 제제가 본능적으로 알고 조심하더라고요.

숨을 곳도 많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장치도 많아서 놀이터처럼 즐겨요.” 남편 오자와 제제는 이제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다. 오자는 제제를 만나고 ‘Zeze Monster’ ‘Zeze with Fish’ 인센스 홀더 등 제제 시리즈를 만들었다. 오자크래프트의 작업실은 지금도 길고양이들의 휴식처다. 부부는 작업실 주위의 길냥이들을 위해 여전히 밥을 준다. 지난여름에는 유기된 새끼 고양이 자매를 구조해 집에서 키우고 있다. “고양이들이 모두 우연히 저희에게 왔어요. 저희가 원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반려묘를 인격체로 여깁니다. 고양이들도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니까요. 우리 셋은 서로에게 기쁨과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있어요.” 오자크래프트 작업실에는 이들이 만들어낸 다정함이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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