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참아" 듣고 큰 한국 중년들…너무 착해서 우울증 걸린다 [마흔공부⑦]

김연지 2024. 5.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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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 심리상담가를 서울 서초구 '힐링캠퍼스 더공감'에서 만났다. 책장에는 그의 저서와 23만 구독자를 보유한 '박상미 라디오' 채널의 유튜브 실버 버튼이 보인다. 김경록 기자

" 지금 한국의 40대는 어렸을 때 '네가 참아라' '네가 잘못했겠지'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감정을 참고 살다 버릇하니 '화병'이 생기는거죠. "
박상미(47) 심리상담가는 우리나라 중년이 우울한 이유는 '감정 난독증'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감정을 잘 모르고 묵혀두기만 하면 언젠가 공격적인 방식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요. 흔들리는 40대를 위한 '마흔 공부' 시리즈 일곱번째 이야기는 40대의 '마음 건강'입니다.

어떻게 하면 진짜 감정을 알 수 있을까요. 우울·불안·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특별한서재) 『모든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북스톤) 등을 썼고 심리치료 교육기관 '힐링 캠퍼스 더 공감'을 운영하며 각종 매체에서 '마음 멘토'로 활약하는 박상미 심리상담가를 만나 질문을 던졌습니다.


✅Part 1. 너무 착하게 살면 우울증 걸려요

Q :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수가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40대 우울증 내담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A : 많은 40대가 우울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문제는 우울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해요. 우울해서 상담센터나 병원에 왔는데도 “우울증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힘들어서 한 번 와 봤어요”라고 하죠. 왜 힘드냐 물으면 “제가 너무 예민해서요”라고 답하고요.

Q : 질병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탓’이라 생각하는 거군요.
A : 맞아요. 그래서 한국인의 우울증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아요. 내 안의 감정이 해소되지 못해서 오는 우울증이에요. 일종의 ‘화병’이죠. 특히 지금의 40대는 어렸을 때 ‘네가 참아라’ ‘더 노력해라’ ‘네가 잘못했겠지’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그러니까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해요. 그냥 참고 살아요. 요즘 40대에 ‘감정 난독증’이 많은 이유에요.

Q : ‘감정 난독증’이요?
A :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건강하게 해소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문제는 억누른 감정은 언젠가 폭발한다는 거죠. 나도 모르게 작은 자극에 화내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공격적으로 변하죠.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요. 참고 살아온 사람들이 40대 이후에 화가 많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우울·불안·무기력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너무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후유증인 셈이죠. 그래서 40대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꼭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Q : 내 감정을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요?
A :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어요. 예를 들면 갑자기 화가 훅 올라와요. 그러면 왜 화가 나는지 들여다보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무시당했다고 느껴서인지, 어릴 때 엄마가 항상 화를 냈던 상황이 겹쳐지며 화가 난건지, 아니면 아무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아 느끼는 외로움인 건지 말이죠. 직접 종이에 적어보는 것도 추천해요.

Q :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면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A : 내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주인이 되면 나와 주변 사람을 지킬 수 있어요. 제 사례를 들면, 저는 불안을 자주 느끼거든요. 불안이 덮치면 가족에게 화를 내요. 화가 날 때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이유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상미야, 멈춰. 화낼 일이 아니야. 넌 지금 불안한 거야.’ 그러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어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해요.
'힐링캠퍼스 더공감' 복도 벽면에 우울증 내담자들이 상담 과정에서 그린 꽃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김경록 기자


✅Part 2. 불평 많은 친구 멀리하세요

Q :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40대에 관계 맺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관계도 생명처럼 수명이 있어요. 어떤 관계는 내가 최선을 다해도 6개월 만에 끝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관계는 공들이지 않았는데도 10년이 가는 걸 40대에 알게 되죠. 관계의 수명에 대해서 초연해질 필요가 있어요.
사적인 관계는 점점 좁아져서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A : 관계가 좁아졌다고 ‘잘못 살고 있나’ 오해 하지 마세요. 40대는 관계를 가지치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거든요. 또 내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걸 알게 돼요. 오히려 진짜 중요한 관계가 생긴 거죠. ‘외롭다’는 생각이 올라오면 저는 얼른 인터넷 강의를 켜요. 외로움은 타인으로 채울 수 없거든요. 내 성장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하면 외롭지 않아요. 우리 뇌는 공부할 때 쾌감을 느끼고 살아나거든요.

Q : 관계를 통해서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소할 수 없군요.
A : 내담자 중에 40대 후반 전문직 여성 분이 계셨어요. 다섯 번째 결혼을 준비 중인데 ‘결혼 할까, 말까’ 정해 달라고 오셨어요. 저는 이 분이 왜 결혼에 집착하는지 궁금했어요. 4명의 전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왜 헤어졌을까’ 계속 질문했죠. 사실 이 분 안에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결혼을 하면 공허함과 외로움이 채워지고, 상대방이 내 마음을 100% 알아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자신의 환상을 깨닫게 되자 펑펑 우시더라고요. 40대는 환상과 이별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해요. 타인으로 외로움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직시해야 해요.

Q : 그래도 친구는 필요해요. 좋은 친구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A :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만났을 때 기운이 나고, 마음에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요. ‘자주 만나는 5명이 누구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해요. 불평, 불만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 인생도 그렇게 돼요.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당장 멀어지세요. 40대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나이에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세요. 꼭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제가 40대에 가장 가까이 한 사람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썼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1905~1997)이에요. 좋은 강연, 좋은 책과 관계를 맺으세요.

Q : 회사에서 맺는 관계는 통제가 어렵잖아요. 싫다고 ‘손절’할 수도 없고요.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만약 직장 상사가 다른 팀원들 앞에서 ‘보고서 다시 정리해’라며 화를 냈다고 가정해봅시다. 기분이 좋지 않겠죠. 일단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살펴보세요. 수치심인지 좌절감인지 느껴보세요. 내 감정을 알아챘다면 다음 단계는 용기를 내보는 겁니다. 나를 위한 행동을 하세요. 상사에게 5분 면담을 요청해서 “부장님, 아까 후배들 앞에서 ‘다시 써와!’ 하셔서 수치심을 느꼈어요. 다음엔 1대 1로 말씀해 주시면 부장님 마음에 쏙 들게 고쳐오겠습니다.” 정중히 말하는 거죠. 감정을 해소할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꺼내보세요. 처음은 어렵지만 10번 하고 나면 특기가 될 겁니다.
박상미 심리상담가의 연구실에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사진이 걸려있다. 한양대 일반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그는 독일에서 빅터 프랭클의 '의미 치료'를 공부했다. 김경록 기자


✅ Part 3. ‘실패 일기’는 나의 힘

Q :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하는데, 본인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나요?
A : 제 30대는 너무 불안했어요. 우울, 공황장애로 오랫동안 힘들었고요. 국문학을 공부하다가 34세에 심리학 석사를 시작했는데요.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다 보니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불안의 연속이었죠. 죽도록 노력하는데 이룬 게 없었어요. 심지어 빌려주고 못 받은 돈도 많았고요. (웃음) 그러다 첫 책을 40세에 내고, 방송 출연과 강의를 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열심히 내 것을 쌓고 있으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준다고 느꼈죠.

Q : 40대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A : 기록을 남기세요. 제가 40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4권의 책을 썼는데요. 이렇게 많이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저만의 기록을 쌓아왔기 때문이에요. 40대는 온갖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폭풍의 시간이에요. 믿는 사람에게 배신 당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경험하죠. 그때마다 느끼고 배운 것을 기록하세요. 그래야 진짜 삶의 지혜로 남아요. 내 경험과 기록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교과서가 되어줍니다.

Q : 어떤 기록을 남기면 좋을까요?
A : 매일 ‘실패 일기’를 써보세요. 실수나 실패를 하면 우리는 자책하고 스스로를 벌해요. 그럴 때 일기를 쓰는 거예요. 내가 왜 실패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그러면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Q : 어떤 의미를 발견하게 될까요?
A : 저는 페이스북에 ‘나만 보기’로 매일 일기를 쓰는데요. 어느 날 12년 전에 쓴 일기가 다시 떴어요. 그 날 스스로를 욕하고 짓밟는 일기를 썼더라고요. ‘논문도 제대로 못 쓰고 난 이미 끝났어. 난 못할 거야.’ 일기를 읽으며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고난의 과정을 견뎠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12년 동안 정말 고생했어.' 기록은 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줍니다.

Q : 일기가 나와의 깊은 대화로 느껴져요.
A : 맞아요. 실패 일기를 쓰다 보면 숨은 감정도 발견하게 돼요. 최근에 투자에 실패해서 엄청 마음 아팠는데요. 그날도 저는 실패 일기를 썼어요. 쓰다 보니 제 안에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50대, 60대가 되어도 강사로 불러줄까? 대중들이 내 책을 읽어줄까? 내 생각이 늙어가는 건 아닐까?’ 불안감 때문에 투자도 잘 모르면서 덜컥 돈을 넣었더라고요. ‘내가 잘하는 방송, 강연, 책 쓰는 일에 더 집중하자.’ 일기를 쓰며 다짐했어요. 돈은 잃었지만 일기를 쓰며 인생의 교훈을 발견하게 됐죠. 기록은 나를 인생의 주인이 되게 해줄 거에요. 분명 모든 경험은 의미가 있어요. 고통이 내게 주는 의미를 발견해 보세요.

박 교수는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꼽았다. 블로그, SNS, 일기장 등 매일 쓸 수 있다면 어디든 기록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김경록 기자

■ 📌 '마흔 공부' 인터뷰 시리즈

40대는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고, 후반전을 준비할 나이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시기를 잘 통과할 수 있을까요? 중앙일보 '더, 마음'에서 그 답을 찾는 '마흔 공부'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매주 금요일 '더, 마음' 뉴스레터로 기사를 받아보세요! [구독] https://www.joongang.co.kr/newsletter/the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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