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과 문화] 직업 귀천이 ‘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그럼에도…
지난달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2023)’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매년 행해오던 ‘직업 위세’ 즉 직업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 조사가 포함됐고, 여러 언론에서 이 결과를 자세히 다뤘다.
한국인들은 15개의 직업 중에서 가장 높은 직업 위세로 국회의원을 꼽았고 가장 낮은 지위로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 일용 근로자를 말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산업 현장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이주민 노동자들이 공장, 음식점, 건설현장을 채워가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한국인들이 이러한 직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순히 월급의 많고 적음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귀천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직업 귀천 의식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직업 위세가 가장 낮은 직업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만나게 되며, 우리 사회는 직업과 국적 등으로 더욱 계층화돼 가고 있다.
직업의식 조사결과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격차’의 문제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이 된 5개국(한국, 중국, 미국, 일본, 독일) 중에서 가장 큰 직업 위세 격차를 보였다. 가장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을 때 미국, 일본, 독일보다는 2.5배, 중국보다는 1.5배 정도의 격차가 나타난 것이다. 즉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문화에 직업 귀천이 ‘강하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종교개혁의 전통에는 ‘직업소명설’이라는 것이 있다. 루터와 칼뱅을 통해 잘 알려진 것으로,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며 이를 통해 이웃과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일구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직업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며, 따라서 직업의 우열은 없다.
불안정한 노동현장 속에서 일생 동안 직업의 변화를 수차례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직업소명설’은 조금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일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이며 우리의 노동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거룩한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여전히 모든 일터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기에 일터와 직업의 귀천은 없다.
직업 귀천이 명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은 하루하루를 다시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와 희망을 주는 말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직업 귀천 있는 사회를 영속시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와 연결돼 있다. 교육제도의 문제는 언제나 직업 귀천의 문화와 연결되고, 이주민 노동자들의 하위계층화 현상 역시 직업 서열화 현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모든 직업과 일터는 하나님의 현장이다.’ 이 믿음 하나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적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직업 귀천이 없는 사회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귀중함을 인정하고 직업 자체로 사람을 낮추거나 높이지 않는 것,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우리 자녀들이 사회적 인식보다 하나님 앞에서 찾은 자신의 뜻을 따라 직업을 찾아갈 수 있는 것,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회문화이다.
김용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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