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인 인간…경제학 한계를 뚫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2024. 5.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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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넛지

저자 리처드 탈러는 ‘행동경제학’ 분야를 창시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행동경제학은 기존 경제학과 궤를 살짝 달리한다. 기존의 전통적 경제학은 경제 행위가 이뤄질 때, 합리적인 경제 주체의 합리적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고 가정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심리학 개념을 도입,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명제로 가설을 세운다. 실제 현실에서 사람 그리고 사회가 보여주는 비합리성을 중점적으로 관찰·분석한다. 행동경제학의 등장으로 경제학은 더 정확히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거듭났다. 경제학과 심리학을 연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리처드 탈러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리처드 탈러
경제학은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 또는 경제 주체가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빠르게 모아 의사 결정 과정에 완전히 반영한다고 정의한다. 이것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본인이 경제적 의사 결정을 내렸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이 합리적일까. 내가 모았던 정보가 내가 모을 수 있었던 모든 정보인지,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정보를 모두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렇다. 현실 세계에서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분명 나는 며칠 전에도 충동적으로 밤 11시에 치킨을 시켜 먹었다. 과다한 내장 지방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 중임에도 말이다. 배달 앱을 켜는 순간 이미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할 것을 알았으나 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2만8000원을 결제한 것이다. 현실 세계의 나는 경제학에서의 나와는 다르게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그리고 나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이런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은 1950년대 중반부터 제기돼왔다. 그 시작에는 미국 사회과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있다. 사이먼은 정치학 박사면서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경제학자였다. 그는 경제 조직 내부에서의 의사 결정 과정을 심리학과 접목시켜 행동학으로 풀어내어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심리학자 출신 대니얼 카너먼과 같은 심리학 배경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 ‘경제 주체는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거세게 도전받는다.

이처럼 개별 경제 주체는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중심이 되는 가정에 대한 도전으로 행동경제학이 탄생했다. 물론 행동경제학도 경제학의 한 분야다 보니 인간의 합리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은 ‘적당히’ 합리적이라 주장한다. 즉 인간의 합리성에는 한계가 있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시작점이다.

흥미로운 사례들을 제시해 깨달음을 유도

행동경제학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을 하면서 인기를 얻게 됐고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많은 학자들이 경제학과 심리학 그리고 경영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고 리처드 탈러의 ‘넛지’ 역시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리처드 탈러는 저서 ‘넛지’를 통해 경제학과 심리학을 융합,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단어다. 윙크 또는 눈치를 주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넛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기존 경제학에서 인정하지 않던 현실적인 심리학적 요인을 도입하고 그 영향을 흥미로운 사례들로 풀어냈다는 사실이다.

책의 1부는 어떨 때 넛지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는 경제적 가상의 존재 ‘이콘’을 만든다. 그리고 합리적인 이콘에 반해 실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비합리적인 편향들을 제시한다.

다양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편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합리적 이콘과는 다르게 집단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무시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 사회 구성원의 압력과 사회 집단의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넛지를 이용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처드 탈러는 “그저 다른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만 해도 된다”고 설명한다. 즉,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작은 장애물만 제거하면 된다는 것. 결국 사회에 이익을 많이 가져다주면서 해를 입힐 위험이 낮은 넛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의 2부와 3부 그리고 4부에서는 다양한 넛지의 사례를 제시하며 경제에 있어 심리의 역할을 설명한다. 심리학과 경제학 이론을 재미있는 여러 사례를 제시하는 사이사이에 넣어 전달한다. 넛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시는 남자 화장실 소변기 중앙부에 있는 파리 그림이다. 파리 그림이 없는 일반적인 소변기를 이용할 때 사람들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파리 그림이 있는 소변기에서는 파리 모양에 집중해 변기 가운데를 향해 소변을 보게 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처음 시도된 파리 아이디어로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을 80%나 감소시켰다고 한다.

다양한 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접목시키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 대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 ‘넛지’는 우리에게 행동경제학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최고의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당신의 의사 결정 능력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재밌으면서도 중요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깊이 있다”고 추천했다.

‘넛지’는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켜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경제학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또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모아 정리하고 분석해서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사례를 바탕으로 경제학적 교훈을 이끌어내며 사회와 정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런 가치를 알아본 영국 정부는 2010년 ‘넛지’에 쓰인 행동경제학적 측면을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정부부서를 신설했다. 일례로 영국 정부는 자동차 등록세 고지서에 자동차 사진이 있으면 글자만 적힌 고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등록세를 더 잘 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지서에 자동차 사진을 싣기 시작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또한 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넛지’의 영향을 받았다. 강요나 복잡한 정책을 통하지 않고 미국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오바마는 ‘넛지’의 저자 중 한 명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규제정보국 책임자로 임명했다. 내려야 할 결정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 적은 비용으로도 강요 없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긍정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 ‘넛지’는 좋은 궁합을 보여줬다.

“21세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글로벌 밀리언셀러”라는 평을 받은 ‘넛지’는 첫 출판 13년 후 기후 변화, 코로나19 극복 그리고 연금 설계까지 최신 경제 상황을 반영한 개정판이 다시 출판될 만큼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7호 (2024.05.01~2024.05.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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