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춘 "공개된 자료까지 압수수색, 왜 EBS를 정쟁에 몰아넣나"

신상호 2024. 5.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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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BS 이사장 "방통위 해임 청문에선 5000원짜리 커피도 문제 삼아"

[신상호, 이정민 기자]

 유시춘 EBS 이사장이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BS를 이 가파르고 험악한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EBS 이사장이자 유시민 작가의 누나인 유시춘 이사장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몰아내기' 작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가권익위원회의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 위반 수사의뢰에서 시작된 일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해임 절차로 이어졌다. 급기야 검찰은 지난 4월 30일 EBS 사옥에 있는 유 이사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해 법인카드 영수증, 이사장 일정표, 자체 감사 자료 등을 가져갔다. 유 이사장은 "공개된 자료이고, 요청하면 줄 수도 있는 자료"라면서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공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지난 3월 방통위 해임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은 유 이사장에게 '휴게소에서 김밥 두 줄(1만2000원 지출)', '연희동 카페에서 커피 한 잔(5000원 지출)'의 사용처까지 물었다. 국가기관이 법인카드 영수증을 하나하나 모두 들여다보면서 유 이사장의 흠집을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유 이사장은 "(영수증 사용을) 더 세부적으로 소명하기 위해 만난 사람 실명을 거론했고, 그분들이 확인서까지 써줬다. 너무나도 모욕적이었다"라고 했다.

범정부 차원의 압박 속에서도 유 이사장은 'EBS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TV수신료 2500원 중 EBS 몫으로 70원이 나오는데, 질 좋은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EBS가 있어서 팬데믹 속에서도 교육을 멈추지 않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됐다"며 "EBS는 너무나도 중요한 교육 공적 자산이자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의 임기는 올해 9월까지다. 

아래는 3일 유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검찰 압수대상, 공개된 자료... 이게 압수수색까지 할 일인가"
 
 유시춘 EBS 이사장이 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나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이정민
 
- E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유 이사장의 법인카드 사적유용 혐의로 지난 4월 30일 압수수색을 단행한 건데 어떤 심경인가. 

"EBS는 보도국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격랑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EBS 주업무는 공교육을 보완하고 청소년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과 '세계테마기행' 등 문화 교양 콘텐츠 생산이다. 나는 민주화운동을 하기 전, 15년간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지난 2018년 이사장을 맡은 뒤, 교사의 마음으로 한국의 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EBS 교육 콘텐츠를 고민해왔다.

특히 '지역에 소외된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까', 오직 이 일념으로 일했다. 그래서 폴 크루그먼, 유발 하라리 등 세계적 석학들의 강의 콘텐츠인 '그레이트 마인즈' 등을 기획했고, 부족한 콘텐츠 제작 예산 확보를 위해서도 백방으로 뛰면서 노력해왔다. 이념적 활동이나 그런 콘텐츠를 생산한 적도 없고 그런 마음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런 나를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공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압수수색 당시 상황은 어땠나?

"그날 출근하려고 준비하는데 고양지청 검사로부터 '압수수색을 나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너무 놀랐다. 사무실에 가서 영장을 살펴보니까 압수수색 목록 1번부터 나열이 돼 있는데, 법인카드 영수증, 이사장의 일정표, 자체 감사 자료가 압수대상 목록이었다.

그런데 이건 공개된 자료이고, 자료를 요청하면 그냥 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압수수색 영장에서 X표된 목록을 보면서 더 놀랐다. 검찰이 압수수색 대상으로 올렸다가 판사가 반려한 목록인데 휴대전화, 자택, 개인PC, 내 다이어리 등이었다." 

- 검찰이 수사하는 것은 법인카드 사적유용 혐의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나.

"주로 백화점에서 물품 구입한 것들을 문제삼고 있다. 방송 출연자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샀던 물품들이다. EBS는 다른 방송국에 비해 출연료가 낮은데, 그럼에도 출연해주신 분들에게 드릴 선물용으로 구매했다. 와인, 농수산물, 육포 등이었고 백화점에서 배달해주니까 구입했던 거다.

그런데 그게 전부 사적 유용으로 몰린 것 같더라. 가령 와인 10병을 구매했다고 하면, 그걸 내가 다 마시겠나. 전화로라도 물어볼 수 있는 건데 (조사 과정에서) 일체 얘기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들도 보면 알거다. 이게 압수수색까지 할 건인가."  

"밥값 2000원 초과, 5000원짜리 커피까지 문제 삼아"

- 이와 별개로 방통위에서도 해임 청문이 진행되는 등 해임 절차에 착수했다. 

"방통위에서 문제삼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이다. 법인카드를 쓰면 영수증과 함께 '교육계 관계자 00명' 이렇게 적어서 낸다. 교육계는 교사는 물론 학부모나 학생들, 전직 교사들도 있다. 온라인 클래스 수업과 관련해서 학부모와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그 사람들을 모두 '교육계'로 통칭해서 적었는데, 교육계로 적은 영수증은 일률적으로 문제 삼은 것 같더라.

그래서 (김영란법은 교사 등 공직자 1인당 식사 비용이 3만 원 이하여서) 교육계 5명을 만나서 15만 2000원을 썼다고 하면, 2000원 초과된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6년간 1700만 원을 쓴 것이 김영란법 위반과 사적유용으로 문제가 된다는 건데, 한 달에 평균 30만 원꼴이다. 그것도 초과한 금액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사용금액) 전체를 모두 넣은 거다. 결국 그런 거 하나하나를 모두 모은게1700만 원이고, 그 만큼 EBS에 손해를 끼쳤다는 거다."

- 지난 3월 방통위에서 해임 청문도 있었는데 청문위원들은 뭐라고 하던가. 

"청문위원이 했던 질문 2개만 말씀드리면, 하나는 2022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쓴 영수증이 있었는데, 5000원짜리 커피 왜 먹었냐고 물어보더라. 연희동에서 연극배우들 미팅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 배우들이 찻값을 계산했다. 그래서 '왜 너네가 냈나'라고 하는 와중에, 직원이 '한 잔 덜 계산됐다'고 했다. 그래서 경황이 없는 와중에 법인카드를 썼다.

또 하나는 '금산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만2000원을 썼는데, 왜 금산에 갔냐'고 하더라. 문재인 정부 당시 동료 이사가 상을 당해 조문을 다녀오는 길에 김밥 두 줄 먹은 거였다. 코미디였다. 더 세부적으로 소명하기 위해 만난 사람 실명을 거론했고 그분들이 확인서도 써줬다. 'O월 O일 유 이사장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라는 내용의 확인서. 그 과정이 너무나도 모욕적이었다."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 부사장,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던 그 부사장이 오게 되면 EBS는 원하지 않아도 정쟁의 장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공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데 무슨 이념이 들어갈 수 있나"
ⓒ 이정민
 
- 오늘(3일)은 <월간조선> 편집국장 출신 인사(김성동)가 부사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이다(이날 김 부사장의 출근은 EBS노조 반발로 무산됐다). EBS의 앞날도 걱정인데. 

"<월간조선> 재직 당시 그분이 쓴 글을 보시라. 신천지 이만희를 띄워주면서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운운하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할 당시에는 '취임식장 하늘에 무지개가 떠올랐다'고 썼다. 보수를 존중하지만, 그분이 쓴 글을 보면 존중하고 토론할 수 있는 보수주의자로 보이지 않는다.

방송공사법에 보면 부사장은 사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김유열 사장은 이 분을 모를 거다. 민감한 인사 문제여서 김 사장에게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단언컨대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라고 본다.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월간조선> 편집장이 EBS에 오는 거다."

- 보수 정부에서 MBC나 KBS는 장악 대상이 됐지만, EBS까지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한다고 보나. 

"MBC나 KBS는 정치적 유불리나 갈등이나 대립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으나, EBS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근데 왜 이럴까. (알면 내게) 가르쳐달라. 관련 댓글들을 보면 '유시민(유 이사장의 동생) 어떻게 하기 어려우니까, 유시춘 넣는구나'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다." 

"유시민 어떻게 못하니까 유시춘 넣는다고들 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요구하는 KBS, MBC, EBS 이사들이 지난해 8월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맨 왼쪽이 EBS 유시춘 이사장.
ⓒ 권우성
 
- EBS 교육 콘텐츠에 뉴라이트 사관을 심을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 합리적 의심도 있다. 허나 EBS를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EBS는 철저하게 제작과 편집이 독립돼 있다. 그 누구도 PD의 콘텐츠 생산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

- EBS에 대해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코로나 사태 당시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만난 적이 있었다. EBS '온라인 클래스'로 코로나 때 공부를 하니까 학교보다 훨씬 좋다는 거였다. 엄마가 가정교사처럼 지도를 해주니까 그게 좋았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온라인 클래스'를 정말 잘했구나 생각했다.

EBS가 있어서 팬데믹 속에서도 교육을 멈추지 않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됐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우리가 50년만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동력은 '교육'이었다. EBS는 너무나도 중요한 교육 공적 자산이자 공공재다."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BS 이사장으로 오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EBS를 무척 사랑한다.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서울과 지역이 이렇게 차별적인 나라는 별로 없다. 그래서 지역 청소년들에게 중앙과 버금가는 동일한 온라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저에게는 소중했다. 지역 격차를 해소해 줄 수 있는 교육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관이 EBS다.

그런 EBS가 수신료 70원(TV수신료 2500원 중 EBS 몫은 70원)을 받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이걸 고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더 좋은 교육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EBS 예산 확충과 좋은 콘텐츠 생산에 전력을 다해왔다는 얘기는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제발 EBS를 이 가파르고 험악한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말라.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던 그 부사장이 오게 되면 EBS는 원하지 않아도 정쟁의 장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공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데 무슨 이념이 들어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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