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언제나 안전한 공간일까… 사회의 민낯 비춘 ‘럭키, 아파트’

정진영 2024. 5. 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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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도 다 '영끌'로 집을 산다고 해서 무리해 장만한 집인데,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악취가 평온을 깨트렸다.

사실 평온하지 않았지만 평온한 척하고 있던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인데, 그 냄새가 두 사람 사이에 위기를 가져온다.

2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에게 공개된 영화 '럭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담담하게, 하지만 꽉 채워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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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럭키, 아파트'의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남들도 다 ‘영끌’로 집을 산다고 해서 무리해 장만한 집인데,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악취가 평온을 깨트렸다. 사실 평온하지 않았지만 평온한 척하고 있던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인데, 그 냄새가 두 사람 사이에 위기를 가져온다. 분명 일상을 뒤흔들 만큼 강렬한 악취인데 아파트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못 느끼는 걸까.

2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에게 공개된 영화 ‘럭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담담하게, 하지만 꽉 채워 눌러 담았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모든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주거 문제부터 고독사 문제, 계급 문제, 성차별 문제에 혐오 문제까지, 아파트를 중심에 놓고 이 모든 문제를 촘촘하게 쌓아올렸다.

그 시작은 1310호에 사는 화분 할머니의 죽음이다. 물리적인 형태 없이도 타인에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냄새’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지만, 다들 애써 모른척한다. 할머니에게서 자신을 겹쳐 본 선우가 할머니의 장례 및 유품 정리에 관심을 갖지만, 아파트 주민들을 이를 오지랖으로 치부하며 공격의 화살을 선우와 희서에게 돌린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어느 하나에 큰 비중을 두고 풀어내진 않는다. 숨 쉬듯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라 어느 것 하나만 특별하게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지금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인 양 평범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평온을 깨트리지 않을 때나 유효한 일이다. 내게 조금의 피해가 오거나 불편함을 준다면 “싫은 걸 싫다고 말하면 안 되냐”며 적극적으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지난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CGV 전주고사점에서 '럭키, 아파트'를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박가영, 손수현 등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강유가람 감독은 “제 친구가 겪었던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다. 친구네 집으로 냄새가 올라오면서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며 “그걸 바탕으로 사회의 혐오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애도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영화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몰인간성에 대해 지적한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버거운 나머지 여유와 배려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죽음마저 ‘빨리 처리해버려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대신 선우의 존재를 숨기고 “편하게 좀 살자”고 말하는 희서는 사회의 편견과 혐오를 온몸으로 받아내다 지쳐버린 현대인의 표상처럼 보인다. 현실과 타협해가며 마련한 집이지만 희서와 선우가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는 순간, 집은 더 이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다.

강유 감독은 “아파트란 공간은 안정을 바라고 들어가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나의 정체성을 감추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게 노출되면 안전한 공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며 “행운을 의미하는 ‘럭키’를 통해, 아파트란 공간이 이들에게 행운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럭키, 아파트’의 첫 상영을 함께 한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웃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유 감독은 “첫 상영의 순간을 (관객들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전주=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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