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루터의 종교개혁·히틀러의 나치…세계사 뒤바꾼 맥주 한잔

김철현 2024. 5. 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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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미쓰루의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

봄인가 싶다가 어느새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는 날이 이어지면 ‘이제 맥주의 계절이 돌아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5월의 이른 더위는 갈증을 애써 참다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즐거움을 앞당긴다. 무라카미 미쓰루가 쓴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는 그 한 잔에 곁들이기에 맞춤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의 주류 회사 산토리에서 일했다. 독일 뮌헨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배웠고 산토리에서 2003년 퇴임 전까지 맥주 제조와 연구를 담당했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맥주 제조’ 기술을 지도하기도 했다. 맥주 전문가인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즐기는 맥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다. 맥주가 무려 세계사를 바꿨을 수도 있다고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앞머리에 내세운, 맥주가 세계사를 바꾼 한 장면은 1521년 4월 17일의 ‘보름스 제국회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맞서 그 유명한 ‘95개 논제’를 쓴 마르틴 루터를 소환한 자리다. 황제 앞에서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설명해야 하는 루터는 맥주 1ℓ를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술기운을 빌려 담대하게 격정적인 연설을 한 루터, 이 연설이 이미 시작된 종교개혁의 불길에 또다시 기름을 끼얹어 유럽 종교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루터가 이 자리에서 맥주를 들이켜지 않았다고 도도한 역사의 흐름인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만, 신학자인 그의 인생 곳곳에 맥주 등장하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마르틴 루터 심문 사건 당시 그가 마셨다는 맥주는 아인베크 맥주, 북독일의 작은 마을 아인베크에서 만들었다. 수출을 위해 도수를 높이고 다량의 홉을 첨가한 맥주였다고 한다. 이런 맥주는 당시 이른바 ‘강한 맥주(strong beer)’, 체력을 키우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한 영주가 제국회의에 소환된 루터에게 맥주 한 통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저자는 썼다. 루터는 맥주를 마시고 황제에 맞설 힘을 얻은 셈이다. 게다가 루터는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학을 배우고 양조 기술자 자격증을 딴 카타리나 본 보라와 결혼해, 아내가 만든 맥주를 평생 즐겼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맥주가 세계사를 바꾼 장면으로 든 다른 예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연 대규모 나치스 집회다. 지금도 독일에 가서 맥주를 마시자면 으레 먼저 떠올리는 명소인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5세가 설립했다. 1589년의 일이다. 히틀러는 이 유서 깊은 맥주홀에서의 집회 성공을 그의 책 ‘나의 투쟁’(1925)에 생생하게 기록했다. "나는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으로 들어섰다. 7시 15분쯤이었다.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기쁨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당시만 해도 내 눈에는 엄청나게 커 보였던 그 방은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집회 이후 히틀러는 뮌헨 폭동을 일으켰는데, 장소는 다른 맥주홀 뷔르거브로이켈러였다. 나치스의 시발점이 된 집회가 열린 장소가 맥주홀인 까닭은 당시 유럽 도시에서 이곳들이 지역 집회 장소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맥주홀들이 극우 파시즘 정당의 교활한 정치 폭동의 도구이자 무대로 전락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의미로 그만큼 맥주가 중세 시대엔 왕이나 귀족, 성직자 등 상류 계층이 마셨던 것과 달리 이후 대중과 친숙한 술로 발전해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갈증을 해소해 줄,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술 맥주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현장은 18세기 영국이다. 이 시대를 풍미한 맥주 ‘포터’는 항구에서 짐을 운반하는 짐꾼(porter)이 즐겨 마셔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가 널리 알려져 있다. 항구의 짐꾼뿐만 아니라 당시 런던에 거주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저소득층이 대부분 이 맥주를 좋아했다고 한다. 저자는 양조장에서 맥주 통을 잔뜩 싣고 에일 하우스를 찾아온 짐꾼이 도착해서 맥주가 왔다는 의미로 ‘포터’라고 외친 것이 이 명칭의 유래라는 설명도 내놓는다. 포터는 이제 다른 술에 밀려 자취를 감췄지만, 전통적인 수작업에서 기계로 만드는 산업의 영역으로 맥주를 이끌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이 밖에도 맥주의 발상지인 남부 메소포타미아부터 시작해 맥주 생산 및 판매와 관련해 부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반역죄와 맞먹는 형벌로 다스린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로 이어진다. 또 맥주에 물을 타서 양을 속이다가 들켜 화형에 처해진 에일 와이프, 맥주 양조에 유독 열을 올린 파울라너 수도원 수도사, 영국 에일의 위상을 추락시킨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를 언급한다. 이후 맥주의 주류가 에일, 필젠을 거쳐 라거로 변화하는 것은 맥주가 세계 곳곳에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술이 되는 과정을 함축한다. 유럽에서 발전한 맥주는 20세기 라거 맥주에 와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양조할 수 있게 됐다. 냉동 기술의 발달은 적도 부근의 열대 지역에서도 라거 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맥주의 역사를 관통하며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한 잔에도 여전히 담긴다. 많은 이들이 천천히 음미하며 맥주를 마시기보다는 땀 흘린 뒤 누구나 어울려 시원하게 들이켜는 데서 맛을 찾는다. 책을 덮으면 그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무라카미 미쓰루 지음·김수경 옮김/사람과나무사이/2만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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