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난타 당한 '선관위원장' 노태악…이번엔 월성원전 감사 심판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가 9일 ‘월성 1호기 원전 자료 삭제 사건’ 최종 판결을 내리는 가운데 1부 소속 노태악 대법관의 존재가 주목받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며 감사원의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 감사에 시달려 온 노 대법관이 이번엔 전직 산업부 공무원들을 겨냥한 감사원의 ‘월성원전 조기폐쇄’ 감사가 적법했는지를 직접 심판하게 됐기 때문이다. 법원 안팎에선 “노 대법관의 처지가 반전됐다”는 말이 나온다.
노태악과 감사원의 질긴 악연
그럼에도 노 대법관은 한 달 뒤 감사원이 진행 중인 선관위 감사 정당성을 따져 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선관위 내부에선 “수세에 몰렸는데도 노 대법관이 선관위의 헌법적 위상을 지키려 버텨주고 있다”(선관위 관계자)는 말이 나왔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간 권한 다툼이 있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노 대법관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여권의 표적이 됐다. ‘책임지고 사퇴하라’ 등 여권 공세 속에 노 대법관은 “위원장으로서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29일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를 대대적으로 요청하며 감사를 마무리했다.
감사원, 대법원에 “항소심 무죄 판결 파기해달라” 읍소
그러나 2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감사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디지털 포렌식 또한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대법원이 이런 원심 판단을 유지하면 감사원이 입을 정치적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1월 2심 무죄 판단 직후 “전 정부 통계 논란과 관련해 윤성원 전 차관, 이문기 전 청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다시 한번 감사원이 보복 감사를 했음이 증명됐다”(최민석 대변인), “국민의힘과 감사원이 한 몸이 되어, 4년 넘게 문재인 정부를 공격해 댄 사안이 결국 '표적 감사'이자 '정치감사'였던 것으로 드러난 것”(민주당 법제사법위원 일동) 등 공세를 폈다.
야권 압박 속에 감사원은 3월 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자료를 대량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상황이다. 감사원은 “감사 방해 처벌 조항은 강제 조사권이 없는 감사원이 실효성 있는 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그리고 최소한의 장치”라며 “이번 사건에서 감사 방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특히 권력자의 지시로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일수록 관련자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삭제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에서 주심은 서경환 대법관이지만, 노 대법관 등 나머지 1부 소속 대법관들 간 합의를 거쳐 선고가 확정된다. 법원 관계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노 대법관은 당연히 치우친 판단을 하실 분이 아니지만, 그간 감사원에 당한게 있는 만큼 9일 선고는 흥미로운 장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노 대법관은 2020년 1월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야권이었던 국민의힘으로부터도 “각각의 이슈마다 굉장히 균형감각이 있는 분”(장제원 의원)이란 극찬을 받은 인물이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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