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총선 지나고 보니 맞는 얘기들

손병호 2024. 5. 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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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논설위원

빨간색은 선거를 너무 못하고
파란색은 선거 때면 똘똘 뭉쳐

개혁신당·새로운미래 실패로
‘집 나가면 시베리아’ 증명

공약은 대개 공약(空約)이고
떠들썩한 악재도 금방 잊혀져

선거 풍경 달라지지 않는 건
유권자가 만만해 보인 탓도

4·10 총선을 지나고 보니 총선 전에 나오던 얘기들 중 진짜 들어맞는 것들이 꽤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있어 왔던 얘기들이고 사전에 경고된 것들도 있는데 희한하게도 언제나 그렇듯 번번이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대표적인 게 ‘빨간 쪽(국민의힘)은 선거를 너무 못하고, 파란 쪽(더불어민주당)은 싸우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뭉친다’는 얘기다. 여당은 이번에 눈에 띄는 선거 전략도, 판세를 바꿀 만한 ‘비단 주머니’도, 그렇다고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비상한 각오도 없어 보였다. 후보의 각개전투와 ‘정치 초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샤우팅 연설에만 의존해 선거를 치르려 했다. “정말 이 정도로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을 줄은 몰랐다”는 게 낙선한 후보들이 당 토론회에 와서 쏟아낸 말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고공전은 물론, 중진과 원로의 지원사격, 유튜브와 SNS에서 활약하는 진보 논객들까지 똘똘 뭉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를 이끌었다. 거기에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잘 뽑은 슬로건으로 협공까지 펼쳐주니 여당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당장은 시끄럽지만 시간 지나면 잊힌다’는 말도 맞는 얘기였다. 민주당은 2월 말에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자칫 120석도 못 얻고, 100석 밑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선거상황실장인 김민석 의원이 당시 담담하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민주당이 앞서가다 공천 파동 뒤 판이 뒤집히고 있는데 대책이 뭐냐’는 취재진 질문엔 “(일시적으로) 조정받고 있지만 지나면 여론은 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장은 비난받고 있지만 금방 또 잊혀질 것이란 얘기였는데 진짜 그의 말대로 이뤄졌다. 여권발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과 ‘황상무 회칼 테러’ 발언이 금세 민주당 공천 파동을 잊게 해줬다. 그 이후 터진 ‘김준혁·양문석’ 사태는 더 큰일 같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일 있었느냐는 듯 잊혀지고 있다.

‘집 나가면 시베리아’라는 말 역시 정치판 명언임이 재차 입증됐다. 민주당에 있다가 탈당한 이낙연 전 대표, 이상민 의원, 김영주 의원이 줄줄이 낙선했다. 세종시에서 김종민 의원이 당선된 건 민주당이 자당 후보 공천을 취소한 덕이었다. 집 나가서 창당한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모두 실패했다. 양당 모두 애초 목표 의석이 30석이라고 했으나 각각 3석과 1석에 그쳤다. 김 의원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제외하곤 득표율도 대부분 3~5%의 졸전을 면치 못했다. 두 당의 실패로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신당 창당이나 제3지대 세력화는 더욱 꿈꾸기 어려워졌다.

‘민생토론회는 선거지원용이 아니다’는 대통령실 주장도 맞는 말이었다. 실제 선거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2024년 대한민국에서 관권선거 시비 속에 무려 24차례나 그런 행사가 강행됐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너무 노골적으로 여당을 지원하는 것처럼 비쳐 정권심판론을 더 키운 꼴이 됐다. 특히 민생토론회에서 거론된 1000조원 넘는 사업들 때문에 민주당의 13조원 민생회복지원금은 껌값처럼 보이게 했다.

‘총선 공약 대부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전국 곳곳에 금방이라도 들어설 것 같았던 장밋빛 메가시티는 선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신기루 같이 사라져가고 있다. 전국 철도 도심구간 259㎞ 지하화, 경부선 철도 지하화, 올림픽대로 지하화,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 등이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여야 후보들이 내놓은 2200여개 개발공약의 3분의 2가량은 실현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큰 선거가 치러질 때 우리 현실을 둘러보고 지향해야 할 미래를 토론하면서 정치인이나 정당, 유권자가 함께 변하고 업그레이드돼야 정치도, 나라도 발전하고 국민 삶도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정당도 후보도 공약 수준도, 심지어 대통령실과 유권자까지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게 이번 총선이 확인시켜준 우리 자화상이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막말과 네거티브가 넘치고, 자질 떨어지는 후보와 뜬구름 잡는 공약이 난무했을 것이다. 총선이 이랬는데 ‘원조 개발공약 대잔치’인 2년 뒤 지방선거는 어떤 풍경일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게 다 유권자들이 그간 정치권에 아주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 아닐까.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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