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짐승인가, 신의 대리자인가…1세기 ‘어린이 잔혹사’

양민경 2024. 5. 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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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 제국이 공화정 말기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권 이후부터 꾸준히 펼친 정책이 있다.

독신자를 처벌하고 결혼·출산을 장려하며 다자녀 가장을 우대하는 이 정책의 배경엔 로마 시민, 특히 집권층의 출산율 저하가 있다.

무엇보다 '신약성경 세계에서 어린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초대교회는 어떻게 어린이를 대했는지' 등을 파헤쳤다.

복음서와 초대교회 문헌, 당대 철학가 등이 남긴 기록에서 복원한 당대 어린이의 특징은 부모의 '가혹하고도 확고한 사랑' 아래 성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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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탄생/WA 스트레인지 지음/유재덕 옮김/브니엘
3세기 석관에 조각된 로마 어린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 브니엘 제공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 제국이 공화정 말기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권 이후부터 꾸준히 펼친 정책이 있다. 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 장려 정책’이다. 독신자를 처벌하고 결혼·출산을 장려하며 다자녀 가장을 우대하는 이 정책의 배경엔 로마 시민, 특히 집권층의 출산율 저하가 있다. 영아사망률도 높았지만 인위적으로 식구 수를 제한한 ‘영아 살해’가 제국 안팎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로마의 가장에겐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 불리는 가장권(家長權)이 인정됐다. 자녀 생사여탈권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 때문에 1세기 로마인 아버지는 원치 않는 신생아를 유기해도 처벌받지 않았다. 아기가 기형이 있거나 여자일 경우 쓰레기 더미나 배설물 더미에 버려질 가능성이 컸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숨을 거뒀지만 일부는 구조돼 노예나 매춘부가 됐다.

로마 시대엔 기대하지 않는 아기를 유기하는 영아 살해가 암묵적으로 용인됐다. 2세기 어린이용 석관에 새겨진 로마 가정의 모습. 브니엘 제공

제국의 살벌한 분위기와 달리 유대인 사회는 이런 관행을 혐오했다. 1세기 유대인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면서도 갓난아기를 비정하게 버리는 이들을 ‘살인자’로 불렀다. 영아 유기와 살해를 비판한 건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도 마찬가지다. 초기 기독교 문서 ‘디다케’에는 “태중에 있거나 태어난 아이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2세기 순교자 유스티누스도 “신생아 유기를 하지 않는 게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고 했다.

영국 웨일스 카마던 트리니티칼리지 신학과 종교학 학과장을 지낸 저자는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신약성경 세계에서 어린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초대교회는 어떻게 어린이를 대했는지’ 등을 파헤쳤다.

복음서와 초대교회 문헌, 당대 철학가 등이 남긴 기록에서 복원한 당대 어린이의 특징은 부모의 ‘가혹하고도 확고한 사랑’ 아래 성장했다는 것이다. 자녀를 향한 애끓는 사랑이 담긴 내용도 있지만 어린이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므로 정기적으로 체벌해야 한다는 기록도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 “모든 짐승 가운데 아이가 가장 다루기 힘들다”며 “이성의 원천을 가진 어린이는 교활하고 무례한 존재이므로 여러 굴레로 묶어둬야 한다”고 했다. 유대인 사회는 그리스·로마보다 영·유아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였지만 한편으론 가혹한 체벌도 옹호했다.

4~5세기로 추정하는 초대교회 어린이 세례와 입교 의식 장면. 왼편에서 흐르는 물로 유아가 세례를 받자 천사가 축복하고 있다. 오른편에는 주교가 어린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입교를 확인하고 있다. 브니엘 제공

이런 가운데서 예수는 대중 설교에 어린이와 이들의 놀이문화(마 11:16~19)를 인용할 정도로 어린이를 중시했다. 복음서 속 예수는 어린이를 ‘하나님 나라에서의 전범(典範)’으로 소개한다. 이들은 편견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지위가 낮아 겸손히 자신을 낮췄다. 이런 태도는 예수가 지도자를 꿈꾸는 제자에게 강조해온 것이다. ‘어린이의 모범은 성인’이란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선택한 대리자’가 된 어린이를 초대교회가 홀대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초대교회는 이들을 정식 회중으로 인정하고 어른과 동일하게 가르침과 격려를 전했다.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기록대로 부모와 자녀 관계를 서로 존경하고 배려하는 상호적 관계로 바라본 것도 특징이다.

저자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어린이와 대화할 때 반드시 부모를 거쳤다는 점을 들어 “이때나 지금이나 부모는 여전히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자녀를 예수의 제자로 세우는 부모의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울신학대 교수인 역자가 쓴 후기엔 다음세대 실종을 놓고 고민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지점이 담겼다. “아동기가 사라진 사회를 맞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인이 어린이가 속한 가정, 교회에 한층 더 세심한 관심을 두고 이들을 위해 행동하라”는 조언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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