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의 '진짜 원인'을 찾아서

이서영 2024. 5. 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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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취약지 방치한 정부... '의사 2천 명 증원' 관철한다 해도 무슨 소용

[이서영]

 의료 기관의 모습
ⓒ ⓒGraham Ruttan, Unsplash
언제부터인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불안함이 앞선다. 구급차는 있는 힘을 다해 혼잡한 교통을 뚫고 달려가지만, 응급 환자가 실제 치료를 '허락'받고 병원에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 불안해서다. 땀에 젖은 구급대 노동자들 덕에 가까스로 도착한 응급실에서 치료할 수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떠나라 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일상이 되었다. 소방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2~23년 사이 '119 구급대 재이송' 사례는 총 9414건이었다. 거의 만 명의 환자가 생사의 '골든타임'을 길바닥에서 보낸 것이다.

환자 탓이 아니다

의사 중 일부는 응급실 뺑뺑이가 환자 탓이라고 한다. 경증 환자들이 무분별하게 응급실부터 내원하여 응급 병상을 포화시키는 탓에 응급실 진료가 마비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환자 스스로 증상을 현명하게 판단해서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될 경우를 잘 가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경증 환자의 응급실 방문은 구조가 강요하는 것이지 개인의 판단 미숙이 아니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정규 진료 시간 이후에 '1차 진료의'를 만날 수 없는 한국의 시민들은 야간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플 경우 응급실을 찾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나마 공공 야간 약국이나 달빛어린이병원 등이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범위도 제한적인데다 24시간 운영도 아니고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의 숫자도 부족하다. 이것이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놓인 현실이다.
 
1차 진료의?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의료법 제3조에 의해 의원, 병원, 전문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구분하며 모든 의료기관은 조건에 따라 1차, 2차, 3차 의료기관으로 분류한다.

1차 의료기관은 병상수가 30개 미만으로 단일 과목을 다루며, 감기나 경증질환이 있을 때 주로 방문하는 의원, 보건소, 치과의원, 한의원, 조산원 등이 해당한다. 2차 의료기관은 30개 이상의 병상수를 갖춘 병원급과 100개 이상 병상수와 7개 이상 필수진료과목과 전문의를 갖춘 종합병원이 해당한다. 3차 의료기관은 5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추고 20개 이상의 전문 진료과목과 각 진료과에 해당하는 전문이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해당한다.
그럼 일부 의사들 말대로 시민들의 건강 염려증과 호들갑 때문에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넘쳐나고, 그에 따라 중증 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 피해가 발생하는 걸까? 아니다. 응급실에서는 중증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경증 환자는 미루고 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한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뭘까.

문제는 의사 수 부족?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전문의 부재'가 36.5%로 가장 높았다. 이송된 응급환자의 처치를 위해서는 응급실 의사뿐만 아니라 입원 치료를 이어갈 전문의가 필요하다. 심혈관 응급 질환을 처치할 수 있는 내과 의사가 없어서 심정지 환자가 사망했다는 기사,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가 불가해서 응급실에 방문했던 어린이가 사망했다는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희귀 질환도 아닌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들조차 대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에 편승해 윤석열 정부는 의사 증원안을 내놨다. 한국에 단위 인구당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므로 의사 인력 증원은 필요하고, 시민들도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증원안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앞서 살펴본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인, 이른바 '필수진료' 과목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순을 정부는 외면하거나 감추면서 숫자만 늘리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등 수입이 다른 과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소위 '비인기과'로 전락한 필수과목에 대한 '수련 수당'을 마련하고, '필수의료' 영역에 수가를 인상해 의사 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흉부외과, 외과 등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수련 수당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전공의 확보에 실패했다. 즉 '인기과'를 결정하는 것은 수련 수당이 아니다. 개원할 때 경제적으로 유리한 과들에 전공의 지원이 몰린다. 이 고수익은 멋대로 가격을 높일 수 있는 비급여 진료에 매진하는 방식으로 달성된다. 정부는 모르는 척하지만 시민들은 모두 다 아는 비급여 중심 시장 의료 체계의 운영 방식이다.

소아청소년과 등의 기피 진료과에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준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급여 진료 등 영리적 의료 영역이 올려놓은 수익 수준에 맞춰 공공 수가를 인상하는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영역을 따라잡는 데 건강보험을 퍼주는 것 자체가 공보험의 역할을 벗어난 것이며,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도 산부인과 분만 수가를 늘려놨지만, 오히려 봉직의(의원이나 병원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월급을 받는 의사)들이 개원가(각종 병원이 모여 있는 거리)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해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시장의 실패, 응급의료취약지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김승현·신한수·허은정·임도희·김의정, 국립중앙의료원, 2022, p.106.
ⓒ 국립중앙의료원
결국 의사를 어떻게 늘려, 어디서 일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 증원안의 문제점이다. 이미 고장났거나 애초에 작동하지 않는 시장 조절 기능에 의사 인력의 양성과 배치를 내맡겨 놓았으니, 정부가 응급실 대란을 오히려 더 키우고 있는 꼴이다.

의사 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결 조건은 날로 심각해지는 지역의료의 공백을 책임질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지역의 응급의료기관은 매우 부족하다.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는 권역응급의료센터로 1시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한 곳, 지역응급의료센터로 30분 이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사는 인구가 전체의 30%가 넘는 곳을 '응급의료취약지'로 분류한다.

취약지가 아닌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로 응급의료기관은 심각하게 부족하다. 한국의 시장방임적 의료 체계는 '빅5병원(서울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신촌, 서울성모병원)' 중심의 의료 자본을 주축으로 수도권에 자원이 집중·흡수되도록 만들었다.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이 서울의 빅5병원을 찾는 것은 왜곡된 의료 자원 편중 구조가 일정 부분 강요하고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의료 자원과 환자가 모두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 결과, 경쟁에서 밀려난 2차 의료기관들은 수도권은 물론 지역에서도 점차 고사해 폐원 물결에 휩쓸렸다. 동네 의원에서는 해소할 수 없는 의료 요구를 지역 내에서 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중소규모의 병원들이 몰락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사용 가능한 응급실 수는 더 줄어들고 있다.

'응급의료취약지'는 왜 취약지가 되었을까? 수익 중심의 경쟁 구조로 운영되는 민간의료가 작동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구조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민간 주체의 시장 논리에 따라 병원이 세워지거나 사라지도록 방치한 정부다. 윤석열 정부가 2천 명 의사 증원을 완수한다 해도, 늘어난 의사들이 일할 의료기관이 어떤 곳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응급의료취약지의 유일한 대안은 정부가 책임지고 공적으로 지원하는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말대로 '지역 필수의료에 의사를 충원한다'는 논리가 최소한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증원된 의사들이 취약지를 메우도록 공공의료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의료'라는 미래 대안

요컨대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사 인력과 치료 병상이라는 두 가지 의료 자원의 공공성 부족에 있다. 정부는 의료 대란 이전에도 헛다리를 짚어 왔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22년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보면 응급의료기관 지정기준을 일부 수정하고, 의료기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계획이 발표된 2022년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자. 코로나19로 응급실 대란이 불거지면서 공공의료 강화를 통해 죽어가는 응급의료를 '심폐소생'시킬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 계획에는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대책인 공공병원과 공공보건의료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계획은 없었고, 미봉책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쳤다. 공공보건의료 자원 확충 없이 기존 시스템의 '효율화'만 이야기한다면, 부족한 자원으로 최대한 쥐어짜라는 궁여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응급실 뺑뺑이를 일상으로 만든 의사 인력 배치의 공공성 부재, 자본간 경쟁에 취약한 병상 수급 문제, 공공병원의 절대 부족 문제는 근래의 의료 대란을 통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대형병원들이 마비되자 정부는 공공병원에 응급의료 '땜빵'을 요구했지만, 이미 열악한 상황의 공공병원들은 그럴 역량도 인력도 부족하다. 위기에 처한 한국 의료를 고치지 않고 오히려 더 시장으로, 경쟁으로, 돈벌이로 내몰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정부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꼴이다.

한국 의료는 더는 늦기 전에 수많은 응급실 뺑뺑이 피해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의료 인력이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일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 인력으로 정원을 늘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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