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쟁·기아로 고통받는 지구촌 어린이들

2024. 5. 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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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오는 5일은 102주년 ‘어린이 날’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이자 어른의 거울이다. 어린이가 가난·기아·전쟁의 위협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그런데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300여만 명이 희생됐다. 그 와중에 많은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5만여 명의 전쟁고아가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해외로 입양됐다. 화제의 영화 ‘독립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의 다른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보면 북한에서도 전후에 1만 명의 전쟁고아가 동유럽으로 집단 이주됐다.

「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 장기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 희생 커
절망을 딛고 희망 갖도록 도와야

북한의 핵 개발로 다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불길이 어린이들을 위협한다. 지진 등 자연재난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만든 전쟁이라는 인적 재난 와중에 희생되는 어린이들의 비극이 외신을 타고 계속 보도된다.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스라엘과 무장 단체 하마스 간의 전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팔레스타인 난민 어린이들이 남부 가자 지구의 라파에 있는 한 정부 학교에 있는 음식을 받기 위해 모인다. AFP=연합뉴스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해온 가자지구에서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죽어가는 엄마의 뱃속에서 가까스로 태어난 아기가 결국 나흘 만에 숨졌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6개월을 넘기는 동안 가자지구에서 최소 1만4000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다친 어린이도 1만 명을 넘는다. 1만9000명의 어린이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 살아남은 아이들도 전쟁 트라우마와 굶주림·질병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부족한 식량과 의약품, 식수난과 열악한 의료 시설 등으로 가자지구 어린이들은 말 그대로 생지옥에 놓여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2만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무장세력들로 무법천지가 된 아이티에서는 영양실조와 콜레라 등으로 300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인도주의적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수단에서는 400만 명의 어린이가 집을 잃고 길 위에서 살아간다.

어른들의 분노가 일으킨 전쟁과 분쟁의 대가는 이처럼 지구촌 어린이의 삶을 파괴한다. 부모와 형제를 앗아가고 집과 학교는 물론 병원·상하수도 등 주요 사회 인프라를 파괴해 영양과 보건, 식수위생, 교육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는 더 심각하다. 세상을 향한 신뢰를 쌓아야 할 유년기에 아이들은 상실과 분노를 먼저 배운다. 어른들의 싸움으로 어린이들의 삶 전체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2023년 3월 4일, 9살인 살툭 아르슬란(Saltuk Arslan)은 튀르키예 누르다기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지진으로 인해 부모님과 두 명의 여동생이 구출될 때까지 5일 동안 갇혀 있었던 집의 잔해를 찾아 앉아 있다. REUTERS=연합뉴스

어린이의 삶에 깊은 상처를 입히기는 자연재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월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대지진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월 필자가 방문한 지진 피해 현장에서 마주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현장에 머무는 내내 “한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란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어린이들의 상처와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마음이 먹먹했다.

문득 한국전쟁의 한 복판에 놓여있던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떠올랐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구호 물품을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온정의 손길을 보내며 그 구호의 현장에 와있다는 사실에 새삼 벅찬 감정이 솟구쳤다.

가뭄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말라위를 방문한 배우 안성기가 현지 어린이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지구촌의 어려운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지 30년. 올해는 마침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지 30주년을 맞는다. 전 세계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시 지구촌에 돌려준 지 30년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줬던 그때 그 시절 좋은 어른들의 온정이 보은의 30년을 맞게 했다.

70여년전 한국 어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선의와 관심이 세상을 다시 아름답게 만들고, 아픈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다시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지속되길 바란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어린이가 절망을 딛고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행복한 5월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미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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