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대폭 키우는 HMM…藥일까 毒일까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5.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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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중장기 전략 들여다보니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2030년까지 선복량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덩치를 키워 향후 인수합병(M&A)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글로벌 해운 업황 침체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만만찮다.

HMM, 2030년 중장기 전략 발표

컨테이너·벌크선 사업 규모 늘리기로

HMM이 최근 내놓은 ‘2030년 중장기 전략’에 따르면 현재 36척, 630만DWT(재화중량t수,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최대 중량)인 벌크선 사업 규모를 2030년 110척, 1228만DWT로 늘리기로 했다. 경쟁력 있는 선대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한편 국내외 전략 화주를 기반으로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컨테이너선 사업도 2030년까지 130척, 15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로 확대한다. HMM은 현재 84척, 92만TEU의 컨테이너선을 운용한다.

갈수록 강화되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넷제로(탄소중립)’ 목표 달성 시기도 기존 2050년에서 204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너지 효율 개선, 친환경 선박 신조 발주, 친환경 연료 공급망 확보 등으로 ‘탄소중립 시계’를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HMM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벌크, 통합물류 사업을 키워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HMM이 지금 시점에서 선복량을 키우는 배경은 뭘까.

일단 벌크선 사업을 키우는 것은 실적 회복을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벌크선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화물 전용선으로 철광석, 유연탄 등 원자재를 주로 실어 나른다. 벌크선은 장기 운송 계약 비중이 높다. 경기에 민감한 컨테이너선과 달리 해운업 불황에도 안정적인 이익을 내며 실적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HMM의 컨테이너와 벌크선 사업 비중은 6 대 4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컨테이너선에 주력해온 HMM은 글로벌 해운 업황이 악화되자 벌크선 사업을 잇따라 매각했다. 지난해 HMM 매출 8조4010억원 중 벌크선 사업 비중은 14.7%(1조2430억원)에 그쳤다. 대신 컨테이너선 사업 의존도가 80%를 넘어설 정도로 사업 편중이 심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동안 호황을 보이던 해운 업황이 꺾이면서 HMM 실적이 불안해진 만큼, 수익성 좋은 벌크선 사업을 다시 키워 실적 개선에 나서려는 조치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한편에서는 HMM이 벌크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요 벌크선 업체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인수 후보로는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현대LNG해운 등이 거론된다.

앞서 HMM은 현대LNG해운 인수에 뛰어들었지만 몸값을 두고 이견이 커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IMM인베스트먼트, IMM프라이빗에쿼티 등 IMM컨소시엄은 2014년 당시 5000억원을 투자해 HMM의 LNG운송사업부인 현대LNG해운 지분 79.2%를 인수했다. HMM은 지난해 현대LNG해운을 다시 가져오려 했지만 매각 금액 이견이 큰 탓에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HMM이 제시한 금액은 3000억원대로 IMM이 예상한 가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HMM이 벌크선뿐 아니라 컨테이너선 사업 덩치를 키우는 데도 이유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 특수가 끝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 지각변동이 나타나자 HMM 입지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선복량 기준 세계 2위 컨테이너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5위 독일 하팍로이드는 내년 2월부터 ‘제미니 협력(Gemini Cooperation)’이라는 새로운 해운 동맹을 맺기로 했다. 머스크는 당초 1위 해운사 MSC와 ‘2M’ 동맹을 맺었지만 최근 이 동맹을 전격 해체하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의 운송 호황이 끝나고 해운업계가 선박 공급 과잉, 급격한 운임 하락에 내몰리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당시 302억달러, 우리 돈으로 41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해운업 불황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내몰리면서 지난해 말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1만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럼에도 경영난 타개가 쉽지 않자 독일 하팍로이드와 손잡고 다시 해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한다는 분석이다. 해운 동맹은 선사에 허용된 일종의 ‘카르텔’이다. 동맹을 맺은 기업끼리 노선, 선박, 항만 터미널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화주 상대 영업도 확대할 수 있다.

당초 하팍로이드는 HMM과 싱가포르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 대만 양밍이 참여 중인 ‘디얼라이언스’ 회원사 중 가장 큰 선복량을 자랑했지만, 머지않아 이 동맹에서 탈퇴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해운 동맹이 잇따라 재편되면서 다른 해운사들도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쓰는 중이다. 세계 6위 해운사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는 2030년까지 선복량을 기존 구상보다 70만TEU 더 늘려 300만TEU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이 속한 디얼라이언스에서 독일 하팍로이드가 탈퇴하면서 해운 동맹이 와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생존 경쟁에 돌입한 HMM 입장에서는 독자 생존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 투자 베팅에 나선 듯 보인다”고 귀띔했다.

HMM이 선복량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HMM 선박과 김경배 HMM 사장. (HMM 제공)
우려의 목소리도

신규 선박 수요 확보 쉽지 않을 듯

HMM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조치는 반길 만하지만 이번 투자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일단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조선소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 국내 조선 ‘빅3’인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은 글로벌 조선업 호황에 이미 2027년 인도분까지 계약을 마쳤다. 벌써부터 2028년 인도분을 하나둘씩 계약 중이다. HMM이 당장 선박 발주에 나서도 빨라야 2028년 이후에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HMM이 중국 조선소와 건조 계약을 맺거나 다른 해운사 중고선을 매입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되지만 국적 해운사로서 쉽지 않은 선택지다.

새로운 선박 수요를 확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정부는 신규 선박을 지중해나 남미 노선 등 최근 성장하는 노선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이미 지중해나 대서양은 유럽 선사가 장악하고 있어 점유율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다.

이런 가운데 HMM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는 점도 변수다. HMM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8조4010억원, 영업이익 584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5%, 94% 감소했다.

앞날도 녹록지 않다. 중국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충돌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예멘 후티 반군 공격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한 수에즈운하 통행이 제한되면서 항해 기간이 길어지는 등 해운 운임 변동성이 큰 상황이다. 명지운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선복량의 10%에 달하는 신조선이 인도되며 글로벌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 독일 하팍로이드의 해운 동맹 탈퇴에 대한 대응 방안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미 한차례 무산된 HMM 인수합병이 다시 재개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우려다. HMM 덩치가 워낙 큰 데다 해운업 성격상 정부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는 만큼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운 시황, 얼라이언스 재편을 비롯한 주요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HMM 재매각 여부, 시기, 방법을 관계 기관과 충분히 협의한 후 결정할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7호 (2024.05.01~2024.05.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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