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시대 수천억 오락가락…손익계산서는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5.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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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이익 늘어…자동차·조선 ‘방긋’
달러 빚 잔뜩…배터리·항공 ‘직격탄’

고금리·고유가 상황에 원·달러 환율마저 상승세(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이어가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업종별 환율 셈법은 고차방정식이 됐다. 과거에는 항공 등 달러 비용 노출이 많은 일부 업종만 고환율이 불리하고 대부분 수출 기업은 원화 환산 실적이 개선돼 유리했다. 최근에는 고환율에 따른 손익 방향성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모호한 측면이 짙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등 해외 생산기지 구축이 급증하면서 현지 자금 조달 과정에서 외화표시부채가 크게 늘어서다. 고환율에 따른 산업계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본다.

환율 고공행진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4대 그룹도 긴장감이 감돈다. 실제 투자 집행 단계에서 기업 부담이 투자 약정 때보다 급증할 수 있어서다. (AP)
고환율 得 업종

車·조선·패션·화장품

환율이 기업 이익에 미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이다. 환율 상승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제조원가는 오르지만 달러로 벌어들인 이익을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영업이익이 상승한다. 수출 비중이 큰 제조 업종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순이익 영향이다. 순이익은 영업이익에서 이자, 세금 등을 제한 것으로 영업 활동과 무관한 손익이 반영된다. 순이익은 외화자산, 부채에 따라 환산손익(미실현)과 환차손익(실현)을 반영한다. 환산손익은 외화자산, 부채를 그대로 들고 있으면서 환율 변동만 반영한 평가손익이다. 평가손익이므로 실제 현금 유출입이 생기지는 않는다. 환차손익은 외화자산, 부채를 매각, 상환할 경우 인식하는 실현손익이다. 실제 현금 유출입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환산손익과는 구분된다. 환산손익과 환차손익 모두 당기순이익에 반영한다는 점은 같다.

쉽게 말해, A기업이 가진 달러자산이 부채보다 많다고 치자. 달러자산이 많으므로 달러 강세 땐 회계상 이익이 생긴다. 달러부채가 많을 때는 반대로 회계상 손실이 생긴다. 이때, 해당 달러자산 혹은 부채를 매각, 상환했다면 이는 평가이익을 실현한 것이므로 환산손익이 아니라 환차손익이 된다.

강달러가 대체적으로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업종은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환율 10% 상승 시 제조 업체 전반에 걸쳐 영업이익률은 평균 1.3%포인트 상승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조원가가 오르는 부작용이 있지만, 수출액 증가에 따른 이익률 개선(원화 환산 이익 증가) 효과가 더 크단 의미다.

한지영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환율은 다소 과열된 측면이 있지만 단기간에 1200원대로 정상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과거 고환율 시기와 달리 무역수지는 흑자 기조며 주요 교역국 경기 모멘텀도 양호하므로 수출 업종이 환율 효과를 누릴 것”으로 분석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다. 달러 강세로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다 원화 환산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다올투자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현대차는 연간 2000억원의 영업이익 상승효과를 누릴 것으로 분석한다. 국내 생산량 가운데 해외 수출 비중이 더 큰 기아는 환율 민감도가 높아 현대차보다 더 큰 영업이익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분석이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와 기아는 환율이 10원 상승 시 연간 각각 2000억원의 영업이익 수혜 효과가 있다”며 “환율 상승세와 완성차 주가는 동행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는 외화자산, 부채가 적지 않으므로 순이익도 영향을 받는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말보다 5% 오를 경우 법인세차감전순이익(EBT)이 1023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EBT는 세전이익으로 여러 국가에 사업장을 가진 다국적 기업이 세율 영향을 제거하고 어느 정도 이익을 내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1288원)보다 7%가량 올랐다.

다만, 달러부채를 잔뜩 깔고 앉은 신흥국 시장에선 달러 강세로 현지 법인 재무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현지 소비 둔화로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조선 업종도 마찬가지다. 수출 비중이 높은 조선 업체는 달러 강세 국면에서 원화로 환산한 수출 실적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린다. 수주 잔고도 탄탄하다. 지난 1분기 국내 조선사 선박 수주액은 13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늘었다. 이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패션, 뷰티 기업도 달러 강세를 내심 반긴다. 수출 기반 패션 ODM·OEM 업체가 대표적이다. 한세실업, 영원무역, 세아상역 등이 해당한다. 이들 업체는 면화를 비롯 원부자재를 선주문으로 미리 확보해둔 데다 달러 결제 비율이 높아 원화 환산 이익이 늘어난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한세실업은 대표적인 강달러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화장품 ODM·OEM 업체 역시 같은 이유로 강달러 땐 원화 환산 이익이 증가한다.

고환율, 순이익 악영향

SK하이닉스·2차전지

자동차나 조선처럼 똑같이 수출을 많이 해도 반도체와 2차전지업계 셈법은 더욱 고차방정식이다. 공장 증설 등으로 미국 현지 투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현지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달러자산보다 달러부채 증가로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원화 환산 이익이 늘어 영업이익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자, 세금 등을 제한 순이익 측면에선 부담 요인이다.

가령, SK하이닉스 역시 국내 대표 수출 기업으로 꼽히지만 환율 효과는 정반대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K하이닉스 달러자산은 177억달러(약 24조3000억원)인 반면, 달러부채는 219억달러(약 30조원)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 총부채(46조8264억원)에서 달러부채 비중은 약 60%(지난해 말 환율 기준)다. 달러부채가 자산보다 많으므로 달러 강세 땐 순이익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원·달러 환율이 10% 오를 경우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마이너스(-) 3321억원으로 추정됐다.

2차전지 업종 역시 이와 비슷하다. 달러자산, 부채 밸런스에 따라 실적 희비가 엇갈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보다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257억원 줄어든다. 지난해 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 달러 부채는 4조2179억원으로 2년 전(3조4119억원)보다 24% 늘었다. 2차전지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SK온 역시 달러 강세가 두렵다. 이 회사는 최근 2년 새 달러부채가 152% 늘었다. 지난해 말보다 원달러 환율 5% 상승 땐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220억원 감소한다.

반면, 국외 설비 투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삼성SDI는 원·달러 환율 5% 상승 때 ‘법인세차감후’ 순이익이 11억원 증가한다. 법인세차감전이 아닌 차감후순이익을 지표로 내세운 것은 그만큼 경쟁 업체 대비 해외 사업장이 드물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유업계도 셈법이 복잡하다. 지금처럼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달러 강세와 국제유가 상승이 동반될 땐 제품 판매가격이 올라 정제마진이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수요 감소로 정제마진 개선 효과를 상당 부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도 제한적일 전망이다. 재무제표상 재고 가치 평가는 ‘저가법’으로 이뤄진다. 저가법은 재고자산을 취득원가와 시가 가운데 낮은 쪽을 장부가액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재고자산을 시가로 평가할 경우 자산 변동성이 큰 폭 확대되므로 가장 낮게 표시되는 가액을 기록하자는 취지다. 즉, 과거 70달러에 사둔 원유 재고의 시세가 90달러로 올랐더라도 재고 가치는 더 낮은 70달러로 인식한다.

항공·철강, 고환율 비상

4대 그룹 대미 투자 부담도

항공업계와 철강업계는 초비상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10% 상승 시 철강업계와 운송서비스업계에서는 원가 부담률이 각각 4.8%, 3.4%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항공업계는 환율과 기름값 모두 예의 주시한다. 무엇보다 환율은 항공사 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스비와 유류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외화자산이 많은 항공사 특성상 환율 등락은 전체적인 자산-부채 밸런스를 좌우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보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270억원 감소할 것으로 봤다. 아시아나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4602억원 감소한다. 환율 단기 변동성 확대는 환헤지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유류비, 항공기 리스료 등을 달러로 지급하는 항공사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도 부담이다. 항공사는 유가 상승 시 거의 모든 비용 구조에 영향을 미쳐 실적에 악재로 작용한다.

철강업계는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내추럴 헤지’를 상시 운영 중이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환위험 모니터링 강화와 시나리오별 전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사업 관련 손익은 아니지만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4대 그룹도 긴장감이 감돈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실제 투자 집행 단계에서 기업 부담이 투자 약정 때보다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재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최근까지 삼성·SK·현대차·LG그룹이 밝힌 대미 투자 규모는 895억달러에 달한다. 이미 텍사스 테일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건설에 1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삼성전자는 최근 기존 투자금을 포함해 4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SK그룹은 기존 70억달러 대미 투자 계획에 22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한다. 현대차는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에 105억달러, LG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을 중심으로 100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쏟아붓는다. 4대 그룹 주요 대미 투자 계획 합산액 895억달러를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환율(1268원)로 환산하면 113조4860억원이지만, 최근 환율(1377원) 적용 땐 123조2862억원으로 불어난다. 고환율 지속 땐 4대 그룹이 10조원대를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7호 (2024.05.01~2024.05.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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