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하다 만난, 강남에서만 보이는 장면들

김지영 2024. 5. 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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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택시 운전사] '강남바리'는 택시 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욕망

[김지영 기자]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업계 용어로 '강남바리'라는 단어가 있다. 택시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은어다. 운행이 강남권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택시 기사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강남은 길이 넓고 평평한 데다 직선이라 (정체 시간만 아니라면) 운전이 까다롭지 않다. 게다가 손님이 끊김 없이 이어진다.

생활권이 너무 다른 이물감 때문에 강남을 일부러 피하는 택시 기사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돈이 되기 때문에 몇 시간씩의 강남바리를 기대하며 운행한다. 그러다 강북이나 강서나 강동으로 가자는 손님이 탑승하면 강남바리가 끝나는데, 이어서 강북바리나 강서 혹은 강동바리를 했다는 말을 들을 일은 별로 없다.

이유는 손님이 강남처럼 계속 이어지지 않고 드문드문한 데다, 길이 좁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골목과 언덕길도 많아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운전은 힘들고 돈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해서 강남바리는 자연스럽게 입에 붙지만 강북이나 강서 혹은 강동바리란 단어는 왠지 어색하고 적절치 못한 용어라는 느낌마저 든다. 부인할 수 없이 택시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길은 강남을 향한다.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 강남에서만 보이는 장면들이 또 있다. 강남 신사 논현역을 중심으로는 얼굴이 비슷해 보이는 성형미인들이 흔하다. 늦은 밤 신사에서 청담 방향 대로변 빌딩 앞에 빨갛거나 파랗게 불을 밝힌 작은 천막은 대리주차를 하거나 입구를 지키는 룸살롱 직원들의 대기 장소다.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이 방학하는 시즌이면 압구정 로데오 밤거리를 유학생들이 활보한다. 어떻게 아냐면 공부보다는 유학이 더 중요해 보이는 이 부잣집 젊은이들의 대화는 한국말이 섞인 영어다. 영어가 섞인 한국말이 아니다.

낮에 청담동에서 대치동 학원으로 가는 아이 손을 잡고 택시를 타는 사람은 보모인 조선족 이모들이고, 저녁 10시 무렵 대치동 학원가 인도는 금요일 퇴근 시간 지하철 환승역처럼 이동하는 학생들 머리로 빽빽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 평짜리 좁은 차 안이지만 길을 누비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몰랐던 세상이 보여진다. 30년 전에도 그랬다. 그땐 좁은 차가 아니고 우람한 건물이었다. 

식은땀 나는 광경
 
 재벌 가족 조찬 며칠 전부터 양복 입은 회사원들이 테이블 위치와 호텔 내 동선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을 보고 재벌은 아침 식사법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사진.
ⓒ 픽사베이
 
1993년부터 호텔리어로 2년을 살았다. 군 제대 후 일 년이 지나 스물여덟이었다. 운동권의 원심력 안에 있었고 복학을 미루고 있을 때였다. 1987년 민주화의 열기가 식지 않은,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다.

커피숍, 연회장, 룸서비스 등을 몇 개월 단위로 순환근무 하는 식음료부 소속이었다. 지역에서 유일한 오성급 호텔이었고 지하에는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지역의 지하 세계는 몇 개의 폭력조직이 분할하여 서로 견제하며 지배하고 있었고 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목은 감옥에 있다 했고 부두목이 커피숍에 자주 나타났다. 그가 앉아 있으면 가끔 한눈에 봐도 '깡패'처럼 보이는 '어깨'들이 입구에서 달려와 허리를 90도로 꺾는 형님인사를 했다. 그가 있으면 작은 조폭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호텔에서 보호비로 당시 돈으로 매달 50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어느 날은 밑에 지방 폭력조직과 연합 엠티를 한다고 호텔 객실 한층을 모두 전세내어 하룻밤을 놀다 가기도 했다. 하필이면 나는 그때 야간 룸서비스였다. 한숨도 못 자고 날을 꼬박 새우면서 한 일이 팬티만 입고 문신 가득한 몸을 드러낸 채 카드 도박을 하는 그들 방에 오므라이스를 배달하는 일이었다.

왜 오므라이스였냐 하면 마침 배가 출출했던 조폭 한 명이 오므라이스 하나를 시켜서 가져갔더니 옆에 조폭이 보니까 먹고 싶다고 주문하고, 주문하는 걸 보던 다른 조폭들도 그럼 나도 먹겠다며 연달아 시켰고, 기어이 그게 방에서 방으로 연기처럼 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현금이 주로 오가던 시절이라 부가세 포함 7700원짜리 보통 사람은 억 소리 나는 호텔 밥값으로 만 원을 주면서 처음 주문을 시작했던 스무 살 갓 넘어 보이는 어린 '깡패'의 고생했다 잔돈은 팁이다, 라는 '가오 넘치던' 격려의 말도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덕분에 오므라이스 한 개당 2300원이던 팁이 밤을 새우고 나니 10만 원이 넘어 우악스러운 분위기에 반말 찌꺼기로 무너졌던 자존심이 겨우 돈이나 세면서 치유되던 나를 지금도 기억한다.      

연회장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는 재벌 가족 조찬을 서빙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양복 입은 영락없는 회사원들이 조명부터 테이블 위치와 호텔 내 동선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을 보고 재벌은 아침 식사법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끼 먹는데 그렇게까지 긴장되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 아랫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겨우 서빙이나 하는 내가 측은지심이 들 정도였다. 식은땀을 안 흘렸을 뿐 내겐 식은땀 나는 광경이었다.

호텔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세상
 
 30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호텔에서 목격한 세상은 부조리했다. 자료사진.
ⓒ 픽사베이
호텔에서 본 세상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유일한 오성급 호텔이다 보니 사업하는 사람들과 고위공무원과 선출직 권력자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그 작은 지방에 조찬모임을 포함한 각종 모임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검찰이나 경찰 혹은 시군구 등에 적을 둔 각종 민간위원회뿐만 아니다.

성공한 시니어들이 사회에 봉사한다는 굵직한 클럽 두 개가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호텔에서 정기모임을 했다. 그의 아들딸들은 주니어 모임을 호텔에서 열었고 국제 교류를 위해 외국 회원들을 초대해 호텔에서 환영했다.

대를 잇고 국적을 초월하는 네트워크였다. 경찰 검찰 이름을 단 민간위원회 조찬모임 때 서빙하면서 봤던 사람들이 낮에 커피숍에서 사업 미팅을 하고 저녁 클럽 모임에도 얼굴을 보였다.

어느 날 낮에는 룸서비스로 불려 올라간 객실에서 건설사 사장과 고위 공무원 등 이미 호텔에서 익숙해진 얼굴들이 옆에 벽돌처럼 현금을 쌓아 두고 화투장을 돌리고 있었다. 명예와 권위와 품격으로 치장됐던 그들의 민낯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돌리고 있는 것이 화투장만이 아니라는 것쯤 짐작하고도 남았다.

어떤 날은 머리가 허연 일본 노인들이 호텔에서 가장 큰 연회장을 빌려 행사를 했다. 몇 사람이 나와 마이크를 잡고 회상 어린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을 하고 마지막에는 다 함께 눈물 젖은 합창곡을 부르는 거였다.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 초등학교를 다녔던 일본인들이 바다 건너와서 하는 동창 모임이었고 그들이 부른 합창곡은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면서 불렀던 교가였다.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현장이 그들에게는 그저 유년 시절 추억이 깊이 배인 향수 어린 고장이었다. 그때 연회장 한 구석에서 나비넥타이 차림의 (아직은 원동권이었던) 나는 한때 제국주의 국가의 신민이었고 어린 학동이었던 그들의 동창회를 만감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각종 경비 목록이 적힌 문서에 병에 남은 술의 찰랑거리는 지점까지를 기록하는 노인의 침착함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남은 술은 응당 버리는 게 자연스러운데 노인의 기록을 보면서 그래서 우리에게서 버려지는 것들이 과연 남은 술 뿐일까라는 반성 어린 의문이 들었었다.

30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호텔에서 목격한 세상은 부조리했다. 당시 지역을 주름잡던 지방 토호와 세력가들은 보통 사람들은 쉽게 드나들 수 없는 호텔 안에서 조찬을 즐기고 도박을 하고 이익을 나누었다. 지하 세계를 주름잡던 조폭들도 호텔 안에서 온갖 야사를 만들어냈다. 한때 침략국의 어린이였던 노인들은 식민지 호텔에서 동창회를 열었다.

먹고 사는 것도 힘에 겨운 보통 사람들이 발 들일 일 없는 호텔에서는 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절대로 그럴 일 없는 장면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탐욕은 변하지 않았다
 
 신학기가 되면 연회장에는 사립 중고등학교 학부모회에서 주최하는 사은회가 열렸다. 자료사진.
ⓒ 픽사베이
신학기가 되면 연회장에는 사립 중고등학교 학부모회에서 주최하는 사은회가 열렸다. 대기업 초봉이 60만 원이던 당시 돈으로 인당 몇만 원짜리 뷔페를 차려 놓은 한 편에 노래방 기기가 놓이거나 밴드가 불려 오기도 했다.

학부모회 임원과 선생님들은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래하면서 새로운 학기를 축하하고 선생님들의 노고를 미리 치하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선생님들 손에 귀한 선물과 하얀 봉투가 든 커다란 쇼핑백을 들려 보냈다.

학부모회 임원들이 학기 초에 미리 감사하며 베풀었던 사은회에 대해 선생님들은 학기 말에 어떻게 보답했을지 역시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았다. 학기 때마다 돈봉투가 예사였던 당시 학교문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학부모들에게 사은을 받은 선생님들은 다시 제자들에게 사은했다. 그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랬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23년 9월 연합뉴스가 전한 소식은 다음과 같다. "입시학원-수능출제 교사 '검은 카르텔'…최고 5억 받았다". 사교육 업체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교사들에게 접근해 돈을 주고 모의고사 문항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은 2024년 3월 11일 <매일경제> 사회면 기사 제목이다. "학원에 문제 넘긴 현직교사 8명, 7억 챙겨…말로만 듣던 '입시카르텔' 진짜였네".

기사 내용을 보면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관계자는 총 56명이다. 현직 교사 27명, 사교육 종사자 23명, 대학교수 1명, 평가원 직원 4명, 전직 입학사정관 1명 등이 포함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런 분들이 문제를 만들어 (사교육 시장에) 공급하면 수능 경향이 반영된 문제들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사교육시장은 킬러문항을 사들여 일타강사를 만들었고 부자 학부모는 억 소리 나는 돈을 주고 그들에게 자식들 수능시험을 맡겼다. 30년 전에는 그래도 사은회라는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내세웠는데, 이제는 아예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사고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자식을 위한 그릇된 부자들의 탐욕은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전국 의대 정시 신입생 5명 중 1명은 강남 출신". 2023년 5월 9일 자 연합뉴스 소식이다. 오늘도 모든 길은 강남을 향한다. '강남바리'는 택시만이 아닌 지금 세상을 사는 모두의 욕망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신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 서문에 이렇게 썼다.

"세계화에서 비롯된 승패와 정치 분열 등의 문제는 더 이상 '좌냐 우냐'의 구분으로 따질 수 없게 되었다. 그보다는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로 따져야 할 것이다. 열린 세계에서의 성공은 교육에, 즉 세계 경제 환경에서 경쟁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달려 있다. 그것은 각국 정부가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교육 기회를 반드시 균등하게 관리해야 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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