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불온한 단어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윤솔지 2024. 5. 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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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May day, 5월 1일, 노동절).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를 공부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김사이 시인을 만났다.

오늘 같은 날, 노동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그녀는 최근 출간한 시집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 담겨있는 '그만 퇴직하세요'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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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절, 시인 김사이가 건네는 따뜻한 두 편의 시

[윤솔지 기자]

▲ 그만 퇴직하세요 김사이 시인
ⓒ 아시아
메이데이(May day, 5월 1일, 노동절).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를 공부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김사이 시인을 만났다. 오늘 같은 날, 노동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그녀는 최근 출간한 시집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에 담겨있는 '그만 퇴직하세요'를 내밀었다.
 
그만 퇴직하세요
 
하루치 거리만큼 무방비로 줄 서 있다가
느닷없이 진실 너머로 사라진 그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대 떠난 자리에 내가 투입된다
뺏고 빼앗기는 밥줄의 공식이니까
 
온전한 고용보다 안전한 일터보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돌려 막고 축적한 곳간에서
풍요를 걸친 자들이
법쩐을 구들장 삼아 밥을 먹는다
 
젊은 노동자가 십수 년 복직 투쟁하다
정년을 일주일 앞두고도 거리였다
복직 투쟁하면서 반쪽이 된 늙은 노동자는
정년퇴직하는 날까지 복직하지 못했다
 
가난한 밥이 선한 것만은 아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에게
밥과 법이 평등했던 적이 없듯이
법은 쩐의 기술자가 되었다
 
정체성을 상실했으나
쩐의 힘으로 버티고 있으니
수평을 잃은 저울
무딘 칼
낡은 법전
 
"물론 시에서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아직 저의 시에서는 노동현장에 대해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아요. 아마도. 현실이 여전하니까. 아직 희망은 멀었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여성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에 골몰해 온 '가리봉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김사이 시인, 그가 유독 노동자 시를 많이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 김사이시인을 만나다 노동절, 김사이 시인이 건네는 따뜻한 시 두편
ⓒ 윤솔지
  
"함께한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그들의 삶과 함께 한다는 생각. 그 느낌만으로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저는 노동자들이 제 시를 일상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시집이라면 라면 받침대로 쓰여도 좋고, 화장실에서 읽혀도 좋아요. 그들의 곁에 함께 한다는 마음, 그 마음이 닿는 것, 그게 지금은 제가 생각하는 희망사항입니다."
일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이 잘 담긴 '퇴근에서 출근 사이'에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들의 삶에 대한 따뜻하고 현실적인 시선이 잘 담겨있다.
  
퇴근에서 출근 사이
 
사람들과 차들이 북적북적한 네거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르르 얽혔다가 풀리는
퇴근길 풍경을 바라보았던
퇴근 시간 버스에 앉아 있는 내가
뿌듯했던 날들
 
숙취에 어기적거리며
터질 것 같은 지하철에 구겨지고
일 분 지각하지 않기 위해 뛰어서
내 자리에 앉아 성실한 노동을 시작하는
보람찬 날들이었지
 
상사의 억압이나 꼰대질에도
동료를 가장한 얼굴의 뒷담화에도
일은 재미있다고 나를 다독이며
어쩌다 약속 없는 상사가 나를 위한답시고
술 먹자고 할 때고
어정쩡하게 마주 앉아 술주정 들으면서
월급날을 기다리는 것이었지
 
드럽다고 여기저기 하소연 흘리며
출근할 땐 때려치우리라 마음먹고
퇴근할 땐 내일 야근해야겠네 하는데
저기 직원은 더 힘들겠구나 하는 날들이 늘면
월급날이었지
 
사원증 목에 걸지 않아도 닮아 있는
점심시간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삼삼오오 불안을 공유하며 안간힘 쓰는
꿈일까? 꿈이었지
 
너에게 소속되기 위해 생을 걸지만
너에게 버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법적으로는 근로자의 날인 오늘, 근로자라는 단어가 불편하다는 김사이 시인은 오늘은 노동절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고 말한다.

"근로자의 날? 아니죠. 노동절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근로자란 어원 자체가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의 상황이 반영된 단어거든요. 일제에서 위안부를 근로정신대라고 칭했잖아요?

심지어 근로자와 노동자는 뜻에도 큰 차이가 있어요. 근로자는 타인의 지시에 따라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노동자는 주체성 있게 동등한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려지거든요. 그렇다면 5월 1일을 어떻게 부를지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노동자'는 불온한 단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 김사이책들 시집들
ⓒ 김사이
  
시인 김사이는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를 공부했다. 2002년 '시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걷는사람),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창비),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아시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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