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없는 엔저의 역습…"송금 못해요" 日 취업 한국인 한숨

이찬규, 이영근, 박종서 2024. 5. 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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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1달러당 엔화값이 지난달 29일 한때 160.245엔까지 바닥을 치면서,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들이 ‘싼 엔화’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지난달 28일 한 환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3월부터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서모(27)씨는 엔화 가치 폭락에 울상이 됐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보내왔던 용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씨가 첫 월급을 탄 지난해 4월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70~1000원을 기록했지만, 1년 만에 870원대까지 하락했다. 서씨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매달 원화 60만원을 맞춰 보내드렸다”며 “지난해보다 엔화를 10% 더 환전해야 60만원을 맞출 수 있다. 부모님께 드리는 돈을 줄일 수도 없어 일본 내 생활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현지에서 취업한 한국인들이 ‘바닥없는 엔저’의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엔화를 환전하면서 얻는 원화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1달러당 엔화 환율은 한때 34년만 최저치인 160.245엔을 기록했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4월 28일(29, 30일 주말로 인한 미개장) 100엔당 977.51원에서 지난달 30일 882.04원으로 9.8% 하락했다.

일본 취업 한국인들은 국내 송금과 원화 환전을 꺼리면서도 원화 환전 시점을 노려보고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현지 한국인들은 국내 송금이나 원화 환전을 아예 중단하기도 한다. 일본 홋카이도 한 호텔에서 일하는 A씨(25)는 “엔저 현상에 원화로 환전하거나 한국으로 송금한 적이 없다”며 “일본에 체류하는 올해까지 환전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원·엔 환율이 더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이들 사이엔 “당분간 한국에 가지 않겠다” “수입은 오로지 일본 내에서 소비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엔저 현상에 항공료 상승까지 겹치면서 귀국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 저축도 타격…日기업 한국인 이탈 우려


저축과 투자도 일본 취업 한국인들의 고민거리다. 기준금리가 0%인 상황에서 일본에선 이자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원화로 환전하면 더 적은 원화를 받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난달부터 일본 교토의 한 기업에 다니는 김동욱(26)씨는 “일본 시중은행에 맡기면 예‧적금 금리가 1%도 안 된다. 한국 시중은행에 맡기려면 원화로 환전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손실이 크다”며 “주변에서 닛케이지수가 오르니 일본 주식에 투자하라고 하지만, 주식 가격이 올라도 원·엔 환율이 떨어지면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엔저 영향으로 일본 기업들은 한국인 직원 이탈을 우려하고 있다. 도쿄 소재 IT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김모(24)씨는 “연봉이 인상돼도 환전을 하면 실질 소득이 별로 는 게 없다”고 말했다. 서씨도 “엔저로 실질 소득이 줄었고 일본도 오랜 기간 저성장 국면이라 걱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밝혔다.

도쿄의 한 헤드헌팅 기업에서 일하는 30대 조모씨는 “최근 엔저 현상이 심해져 한국에서 고연봉을 받던 이들을 스카우트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일본이 엔저인 만큼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하고 회사 복지도 늘리고 있다는 식으로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 역이용’도…재한 일본인 “한국 고물가에 한끼 걱정”


반면 엔저 효과를 역이용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원화 기준으로 결제가 가능한 일본카드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만약 해당 카드로 30일 기준 1000엔짜리 물건을 구매한다면 별도 환전 수수료 없이 원화로 8814원이 결제된다. IT 컨설팅 회사원 김씨는 “원화 기준으로 결제하면 일본 내에서 더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카드 결제 수수료도 없다 보니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
재한 일본인들은 한국의 고물가 때문에 엔저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다. 일본인 B씨는 “엔화 가치가 얼마나 떨어질지 보다,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의 한끼 가격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한 서울의 한 식당가 모습. 뉴스1


반면에 재한 일본인들은 엔저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다. 한국의 고물가 현상 때문이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고마츠 사리(29)씨는 “일본에 계시는 부모님께 40만원을 엔화로 환전해 보내드렸는데, 앞으로는 35만원만 송금하기로 했다”며 “고물가에 살림살이가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크게 떨어져서 부모님이 받는 실제 금액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국내 일식당에서 일하는 일본인 B씨는 “엔화 가치가 얼마나 떨어질지 보다, 현재 사는 한국의 한끼 가격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찬규·이영근·박종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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