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 건설 현장 위험 위에 선 이주 노동자 [일할권리①]

임지혜 2024. 5. 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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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0명 중 1명 외국인...중소 건설사 안전 관리 교육 미흡
사고 위험 높지만 산재 집계 안 되는 경우도 많아
이주 노동자들,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개선 바라
이주 노동자들, 사업장 변경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개선 바라
건설현장. 기사내용과 무관. 쿠키뉴스 자료사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는 이주 노동자 규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 청년층이 건설 현장 취업을 기피하면서 인력난을 겪는 건설업계에 이주 노동자는 이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일꾼이 됐다. 귀한 일꾼이지만, 건설 현장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외국인이다. 크고 작은 사고로 다치는 이주 노동자, 미등록 이주 노동자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다. 외국 인력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한 중견 건설기업 관계자 김모(41)씨는 30일 쿠키뉴스를 통해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첫째로 근로자 몸을 다쳐서 문제이고, 둘째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공사 진행이 어려워진다”며 “의사소통도 쉽지 않아 미숙련된 이주 노동자와 최대한 계약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실은 이주 노동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령화된 건설 현장에 젊은 인력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다. 또 다른 중견 건설기업 현장소장 임모(62)씨도 “큰 규모 현장은 비자를 전부 확인한다. 사고가 발생해 이주 노동자가 다치면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산재 처리가 가능하다”면서도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많은 작은 규모 현장은 상황이 좀 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인력사무소 보유 인력 절반이 이주 노동자일 정도로 외국 인력이 많다. 이중 10~20%가량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보고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가 고령화되고 인력난을 겪으면서 취업 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이주 노동자, 숙련 기술을 보유한 이주 노동자들은 대형 건설현장으로 흡수된다. 나머지 인력은 비교적 열악한 환경의 건설현장으로 흡수된다고 한다.

자체적으로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안전 관리 교육 등을 실시하는 대기업 건설사와 비교해 중소규모 업체의 안전 관리 교육은 미흡하다. 규모가 작은 현장일수록 미등록, 미숙련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는 만큼 사고 대비 방안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테리어 개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김모(63)씨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현장에서 다쳐도 병원을 제대로 가지 못한다”며 “소규모 현장은 하청의 하청인 경우가 많다. 용역을 통해 일용직으로 근무한다.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사망이나 큰 장애 요인이 아니라면 사측이 산재 처리를 꺼리고 치료비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한 외주 노동자는 “월급 지급이 밀리는 것은 물론, 다치면 산재 처리보다 치료비만 대신 주는 식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주 노동자 산재가 끊이지 않는 현실은, 많은 연구와 뉴스 보도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8월7일 경남 합천 한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신호수로 근무하던 하청 외주 노동자 A(25)씨가 공사장 내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같은 달에만 보도된 외주 노동자 사망사고는 4건 이상이다. 3일 인천 검단 아파트 공사장에서 하청 이주 노동자 B(32)는 철근 운반 작업 중 벽제 철근에 허벅지를 찔려 병원에서 치료 중 숨졌다. 9일에는 베트남 국적의 20대 30대 형제는 경기 안성시 한 근린생활시설 신축 공사에서 타설 작업 중 매몰사고로 숨졌다. 24일에는 충남 아산시 한 오피스텔 신축 현장에서 하청직원인 50대 중국인 노동자가 21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한국보건사회학회의 ‘이주노동자 산업안전보건 현황과 정책 과제(2022)’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사고 사망자 수는 증가세이다. 특히 건설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망만인율(사망자수의 1만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값)이 5.97로 다른 업종에 비해 현격히 높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건설업 사고 사망자 수는 총 402명으로, 이 중 47명(11.7%)이 외국인이었다. 건설업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가 열렸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주 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개선을 바란다. 현행 제도상 횟수와 허용범위가 제한돼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가 발생해도 복잡한 절차, 분쟁 중 체류자격 만료 문제, 추방 등이 이주 노동자들을 피해 이후에도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위원장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약 130만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여러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한국경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며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가사·돌봄 노동자, 브로커 중간 착취·신분증과 통장 압류·불법파견 노동에 고통받는 계절 노동자. 고액 송출수수료와 관리업체 횡포에 시달리는 선원 이주 노동자 등 정부와 사업주들은 이주 노동자를 사업주 이익, 경제 발전의 희생자로만 삼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쿠키뉴스를 통해 “이주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 많이 유입되면서 산재 위험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끼리 일을 하다보니 긴급한 대응이나 위험 작업에 대한 숙지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산재 사고에 집계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추방 위험 때문에 다쳐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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