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에 새긴 '라스트 댄스'…태극마크 되찾은 쇼트트랙 이정수 "포기는 없다, 목표는 2026 올림픽" [인터뷰]

최원영 기자 2024. 5. 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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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목동, 최원영 기자) '밴쿠버 스타'로 이름을 떨쳤던 남자 쇼트트랙 이정수(35·서울시청)가 다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정수는 지난 12일 막을 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종 5위를 차지했다. 이후 엑스포츠뉴스와 만난 그는 "선수 생활을 25년 정도 한 것 같다. 마무리를 잘 지어야 후회가 남지 않을 듯했다"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선발전까지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힘줘 말했다.

쇼트트랙 차기 시즌 국가대표는 1, 2차 선발전 랭킹 포인트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정한다. 남자부는 상위 8명이 대표팀에 승선한다. 1~3위는 차기 시즌 국제대회 개인전 우선 출전 자격을 얻는다. 4~5위는 단체전 우선 출전 자격을 획득한다. 6~8위는 국가대표 후보가 된다.

이정수는 1차 선발전에서 랭킹 포인트 39점으로 3위에 올랐다. 남자 500m에서 41초181로 1위를 거머쥔 게 결정적이었다. 2차 선발전에선 랭킹 포인트 8점으로 10위를 기록했다. 최종 총점 47점으로 선발전 5위에 안착했다. 박지원(92점·서울시청), 장성우(84점·고려대), 김건우(73점·스포츠토토), 김태성(73점·서울시청)에 이어 이름을 올렸다.

2008년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합류한 이정수는 2년 만에 올림픽 정상을 밟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쇼트트랙 남자 1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5000m 계주에선 은메달을 수확했다. 당시 이호석, 성시백, 곽윤기 등과 함께 국위선양에 앞장섰다.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다. 밴쿠버 올림픽 2관왕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지만 부상과 부진 등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소치 올림픽 출전을 노렸으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큰 성과 없이 쇼트트랙으로 돌아왔다. 2014-2015시즌 쇼트트랙 대표팀에 복귀했다.

특히 2016-2017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서 종합 1위로 부활탄을 쐈다. 이정수는 2016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3차, 4차 대회서 각각 남자 1500m 금메달을 따내는 등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서는 남자 1500m 동메달,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을 추가했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목표로 삼았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서 8위에 그쳐 최종 명단에 드는 데 실패했다. 한 번 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태극마크에 닿을 수 없었다. 대신 해설위원으로 평창에 입성했다. 이후 쇼트트랙으로 돌아온 이정수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 낙마한 뒤 다시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이정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2년 3월 서울시청의 러브콜을 받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2022-2023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7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태극마크를 되찾았다. 다만 7위라 후보에 머물러야 했다. 이정수는 2024-2025시즌 선발전 5위로 건재함을 알렸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엑스포츠뉴스와 마주한 이정수는 "사실 내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훈련하다 보면 2012년생도, 2014년생도 있다. 현실이 와닿을 때도 있더라"며 "그래도 앞으로 2년 정도 선수 생활을 더 해보려 한다. 2026 동계올림픽을 목표로 준비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은 어땠을까. 이정수는 "준비를 잘했다. 하지만 그만큼 긴장이 됐다"며 "처음 국가대표에 뽑히기 전으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런 긴장감이 신기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임했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3위 안에 들었다면 개인전에도 나설 수 있었다. 아쉬움은 없을까. 이정수는 "선발전 시작 전엔 대표팀에 뽑히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런데 1차 선발전 500m에서 1위를 한 뒤 상위권에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확실히 2차 선발전에선 몸이 잘 안 따라주더라. 최대한 버티고 버텨 운 좋게 종합 5위에 올랐다. 꿈꿨던 대로 딱 순위가 정해져 만족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주위 반응은 뜨거웠다. 이정수는 "몇 년 동안 가족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갑자기 잘하니 다들 너무 좋아했다. 마침 500m 1위한 날 아내와 아들이 처음으로 내 경기를 같이 봤다"며 "물론 아들은 낮잠 시간이라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이 내겐 행운의 열쇠였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의 외부 정원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어 "(밴쿠버 멤버인) 곽윤기에게도 연락이 왔다. 또래의 현역이기도 하고 빙상 발전을 위해 유튜브도 하는 친구다"며 "오랫동안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내가 이번에 대표팀에 발탁되니 자극을 받은 듯했다. 내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정수는 "(곽)윤기에게 유튜브 조금 줄이고 스케이트에 더 집중해 보라고, 너도 나처럼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말해줬다"고 덧붙였다.

이정수는 "현역 때 같이 뛰었던 외국 선수들이 지금은 각국의 감독, 코치로 일하고 있다. 축하하고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 선수가 제일 먼저 연락해 왔다. '경쟁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을 것'이라고 말해주더라"고 귀띔했다.

선수들의 현역 생활이 길어지는 추세다. 이정수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의 경험을 통해 동기부여를 얻었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을 해보니 쇼트트랙만큼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종목이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의 밥 데 용 같은 외국 선수들이 거의 마흔 살까지 뛰는 것을 봤다"며 "쇼트트랙도 부상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절실함도 컸다. 올림픽 해설을 맡고 축구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찬다'에 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정수는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벌이가 없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제의 들어온 것은 다 했다. 출연료를 받아야 장비를 마련하고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며 "무적 신세였다가 서울시청에서 손을 내밀어 주셔서 새 팀에 정착하게 됐다. 소속감을 갖고 훈련에 매진했다"고 돌아봤다.

이정수는 "그동안의 경험과 아픔, 시련 등이 내겐 큰 원동력이 됐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인드가 잘 잡힌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 중이다. 이정수는 "여전히 배울 게 많다. 선수들의 스케이팅에 점차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며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나 장비 등이 발전하고 있다. 나도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마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바로 관련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밝혔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가 엑스포츠뉴스와 인터뷰를 앞두고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촬영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이어 "서울시청 소속이라는 환경도 정말 좋다. 동료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다"며 "올해 선발전을 한 달 앞두고 일본 노베야마로 장성우, 김태성과 함께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현 대표팀이자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니 동생들의 뒤만 따라가도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듯했다. 열심히 훈련한 덕에 선발전에서 내게 운이 따른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번 시즌 국가대표로서 목표는 무엇일까. 이정수는 "우선 월드컵에서 색깔과 관계없이 개인전 메달을 따고 싶다. 결승에 올라 젊은 선수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무척 설렌다"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선 계주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후배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잘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올림픽은 다시 참가만 해도 큰 영광일 듯하다. 진짜 행복할 것 같다"고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이정수는 "올림픽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라 이번 선발전이 무척 중요했다. 두 달 정도 앞두고 아내에게 선수들과 숙소에서 합숙 훈련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흔쾌히 수락해 줬다"며 "아내와 장모님이 4살인 아들을 같이 보며 많이 배려해 줬다. 잔인한 선택이지만, 선발전을 위해 (육아 등은) 잠시 잊고 훈련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정수는 "가족의 응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감사하다"며 "선수 생활이 2년 정도 남았다. 은퇴 후엔 정말, 진짜 잘하겠다. 아내에게도 늘 이 말을 한다"고 웃었다.

스케이트에 의미 있는 단어를 새겼다. 왼쪽엔 마지막 활약을 뜻하는 '라스트 댄스(Last dance)', 오른쪽엔 아빠를 의미하는 '대디(Daddy)'를 수놓았다. 가운데엔 이름의 이니셜을 따 'JS'를 적었다.

이정수는 "'라스트 댄스'는 말 그대로 마지막을 불태우자는 뜻이다. 후회 없이, 아주 무릎이 탈골될 때까지 모든 걸 쏟아붓자는 각오를 담았다. '대디'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며 "지난해 서울시청에서 맞춰주신 스케이트다. 역대 스케이트 중 가장 내 발에 잘 맞는다. 서울시청에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정수의 스케이트. Last Dance라는 문구를 새겼다. 박지영 기자

사진=박지영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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