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래? '김해 이태원' 보라…전통시장엔 동남아 가게 140곳 [외노자 52만명, 공존의 시대]

김민주, 최종권 2024. 5.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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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김해시청 종합민원실 외국인 전용 창구에서 외국인이 민원 업무를 보고 있다. 근로자 등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자 김해시는 1, 2번 창구를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18.3%와 19.5%.
경남 김해시 동상동과 충북 음성군 대소면의 외국인 인구 비율(행정안전부)이다. OECD ‘다인종·다문화 국가’ 기준이 되는 5%보다 4배 가까이 높다. 전국 외국인 인구 비율은 3.7%다. 김해와 음성군에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몰린 건 중소 공장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많고, 서울·부산 등 대도시와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싼 집세 등 주거 비용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미 외국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김해와 음성의 행정·경제 체계에선 다가올 ‘다문화 국가 한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시청엔 외국인 전용 창구, 공장 90% 외국인 쓴다


지난달 22일 김해시청 종합민원실 ‘외국인 전용’인 1·2번 창구에선 민원 응대가 한창이었다. 김해로 전입해 체류지 변경을 신청하거나, 취업 등을 위해 외국인 사실증명원을 떼려는 외국인이 하루 20~30명씩 찾는다. 김해시는 외국인 전용 창구를 따로 두고 중국·베트남·태국·러시아 등 외국어로 된 민원서류도 갖췄다. 창구 담당자는 “전쟁 영향인지 최근엔 우크라이나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이 부쩍 늘면서 바빠졌다”고 말했다.
김해시청 종합민원실에 마련돼있는 외국어 민원 서류. 김해시는 업무 편의를 위해 한글과 외국어를 병기한 서류를 구비했다. 김민주 기자
김해 전체 외국인 인구 비율은 4%다. 하지만 동상동 등 집값이 싼 구도심을 중심으로 외국인 집단 거주지가 생긴 곳에선 20%에 육박한다. 이들이 지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김해시가 최근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지역 사업체의 30.2%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외국인 고용 사업체 비율이 87.1%에 달했다.

재래시장·법조계도 외국인이 ‘큰손’


김해 동상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러 나온 외국인 여성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김민주 기자
김해시청에서 차로 4분 거리인 동상 전통시장에서도 외국인 고객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었다. 140여개 점포를 갖춘 이 시장엔 10여년 전부터 중국·베트남·태국에서 즐겨 먹는 과일과 채소·향신료를 파는 가게가 속속 들어섰다. 이에 결혼 이주 여성 등 외국인이 들끓자 이 시장 주변으로 외국인 대상 식당과 휴대전화 가게, 여권·대부업체 등 상권이 형성되며 외국인 거리를 이뤘다. ‘경남의 이태원’이라고 불리는 동상동 로데오 거리다. 지난해 이곳에 휴대전화 매장을 낸 방글라데시 출신 니파 아크터(40)는 “주말이면 로데오 거리에 전국에서 외국인이 몰려든다. 우리 가게에선 한 달 1만원 안팎 요금제인 알뜰폰을 주로 파는데, 주말 손님 숫자는 200명이 넘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해 동상 재래시장의 한 가게 매대에 망고와 파파야, 고수, 공심채 등 외국인이 즐겨 찾는 과일과 채소가 진열돼있다. 김민주 기자
재래시장은 물론 ‘법조시장’도 외국인 덕을 톡톡히 본다. 동상 재래시장에서 부원동 방면으로 이어지는 분성로엔 행정사·변호사 사무실이 줄지어 자리잡았다. 이들 사무실마다 출입국 업무대행이나 불법체류 구제, 비자·이혼 등 업무를 본다는 안내가 한자와 베트남·러시아어 등으로 빼곡히 써있다. ‘출입국 관리 공무원 출신 행정사’를 강조한 간판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사무소를 낸 조정현 변호사는 “이 일대 행정·변호사 사무소 의뢰인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원활한 소통과 마케팅을 위해 외국인 직원을 고용하고, 외국인이 많이 찾는 주말에도 영업하는 사무소가 많다”고 했다. 이어 “근로자 등 외국인은 점차 늘고 있다. 앞으로 산업재해 등 관련 소송도 증가할 것으로 봐 별도 사무실을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해 동상 재래시장 인근 대로변의 행정사 사무실. 공무원 출신이라는 안내와 함께 출입국 및 이혼 등 업무를 본다는 안내가 외국어로 적혀있다. 김민주 기자


“기숙사 외국인은 마트, 원룸 외국인은 부동산 알짜 손님”


지난달 21일 충북 음성 대소면 한 마트에 마련된 외국인 식자재 판매대. 외국인이 즐겨 찾는 향신료 등이 진열돼있다. 최종권 기자
‘작은 아시아’라 불리는 충북 음성군도 마찬가지다. 특히 음성군 대소면은 중부고속도로와 인접한 데다 대풍·대소 등 산업단지에 400여 개 업체가 밀집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가 몰려든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대소면 한 대형마트를 찾았더니 가장 목이 좋은 곳에 베트남·태국·네팔·필리핀·몽골 등 곡물과 향신료가 진열돼있었다. 눈에 띄는 손님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마트 관계자는 “회사 기숙사에 사는 외국인은 한번 올 때 식료품과 생필품을 잔뜩 사간다. 마케팅도 이들에게 맞추고 있다”고 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소재지 인근 식당 거리에 있는 외국인 전용 식당. 최종권 기자
부동산 중개업소를 하는 박모(68)씨는 “기숙사가 없어 원룸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가 주요 고객”이라며 “이들의 원룸촌을 따라 외국 식당과 편의점·술집 등 중심상권이 형성돼있다”고 설명했다. 주말이면 이 상권으로 외국인이 몰리고, 일부 가게·술집에선 파티가 벌어진다. 한 식당 주인은 “손님을 맞으려면 휴대전화 번역 앱이 필수”라고 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영미(58) 대소새마을부녀회연합회장은 “주말에 머리를 하러 오는 손님 10명 중 7명은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 여성”이라고 했다.

외국인 돕는 센터 두고 매년 ‘화합 축제’도


음성군은 2020년 외국인지원센터를 설립해 한국어 교육과 통·번역 지원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출입국, 고용 허가 등 행정 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다문화 이주민 플러스센터’도 운영한다. 우미숙 음성군 외국인지원팀장은 “내·외국인 화합을 위한 축제를 매년 연다. 제조업체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안전을 위해 12개국 외국인 20명을 선발해 건설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를 교육하는 등 사회 통합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북 음성군은 지난해 9월 금왕금빛근린공원에서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외국인주민 화합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사진 음성군
다만 외국인이 늘면서 불법체류자 관련 범죄가 늘고 있는 점은 문제다. 술을 마시고 외국인 동료를 폭행하는 사건이나, 내국인 사업주와 마찰을 빚는 일이 잦다. 불법체류자가 많다 보니 이들을 상대로 한 협박, 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충북경찰청은 지난달 22일 음성군에 있는 불법체류 노동자 17명을 협박해 1700만원 상당 금품을 뜯어낸 일당 3명을 구속 송치했다. 청주지검이 지난해 3월 적발한 마약 밀수범 17명 가운데 상당수는 음성에 살던 불법체류자였다. 이들은 태국과 라오스·베트남 등에서 국제 우편으로 마약류를 받은 뒤 국내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되파는 수법을 썼다. 경찰 관계자는 “산업단지에서 몰래 일하고 있는 외국인은 마약을 한 번만 운반해도 많게는 월급의 10배가량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마약 밀수와 유통에 손을 뻗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음성=김민주·최종권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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