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25만명…'3D 업종' 일꾼? 이제는 사장님 됐다 [외노자 52만명, 공존의 시대]

김윤호, 최종권, 김민주 2024. 5.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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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 모습. 사진 HD현대중공업

#태국에서 온 디암다우(55·여)는 충북 진천군에서 식자재 판매점을 운영한다. 그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2004년 E-9(비전문 취업) 비자로 한국에 왔다. 청주 등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공장 근처 텃밭에 채소를 길러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0년 공장을 그만두고 식자재 판매점을 차렸다. 지금은 직원 2명을 둔 '사장님'이다. 그는 일정 금액을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머무는 D-9 비자를 얻어 한국에 살고 있다.

#지난 3월 5일 베트남 응예안 '지아오테' 호텔. 'HD현대' 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한 행사장에 베트남인 200여명이 모였다.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등 HD현대 조선 계열사 등에서 일하는 베트남 국적 외국인 근로자 2400여명의 현지 가족이다. HD현대 그룹사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 외국인 근로자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초청 가수 공연을 즐겼다. 또 가족이 한국에서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봤다. HD현대그룹 측은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사실상 공장을 가동할 수 없다"라며 "이들 복지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로 외국인 고용허가제(2004년) 시행 20년을 맞은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 산업 현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농어촌이나 제조업체 등 이른바 '3D업종' 분야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조선업계는 외국인 노동자가 2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조선업 종사자 가운데 16%가 외국인 노동자인 셈이다. 울산ㆍ거제 조선소에 취업하려는 국내 젊은 노동자가 감소하면서, 그 빈자리를 외국인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충북 진천 디암다우처럼 자립한 외국인 근로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불법체류·임금체불, 폭력 등 이른바 '싸장님 나빠요' '가난한 나라 일꾼'으로 바라보던 외국인 근로자를 보는 눈길도 달라졌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04년 8월 저출산과 3D업종 기피로 인한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도입했다. 이 제도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는 산재 보험·최저임금·노동 3권 등을 보장받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 중구 노보텔앰배서더 동대문에서 열린 고용허가제(EPS) 귀국근로자 초청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저출생과 농촌 사업장 기피 등을 이유로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이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뉴스1

국내에 합법적으로 머무는 외국인 근로자(비자발급 기준)는 50만명이 넘는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연보에 따르면 E-9(비전문취업), E-8(계절근로), C-4(단기취업), H-2(방문취업) 등 '취업자격 체류 비자'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는 지난해 말 52만2000여명으로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5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회복했다.

외국인 근로자 증가는 거리 풍경도 바꿨다. 외국인을 고용한 제조업체 비율이 87.1%에 달하는 김해시는 시청에 외국인 전용 창구를 열었다. 김해시 동상동 인근 전통시장엔 아시아권 채소·향신료 가게가 즐비하다. 행정사·변호사 사무실은 출입국업무대행이 주 수입원이다. 음성군 대소면 부동산중개업은 기숙사 없는 외국인 근로자가 주요 고객이다. 식당·편의점 등 중심 상권도 외국인 거주 영향을 받는다. 대소면은 외국인 근로자가 주민의 20% 정도 차지한다.

지난해 11월 제주도 감귤밭에서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현장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농·어촌에선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귀한 손님 모시듯 한다. 충남 논산에선 아파트를 빌린 뒤 냉장고·TV·가스레인지·세탁기 등 집기류를 넣어 숙소로 제공한다. '알바 시장'에서도 K드림 '외노자' 열풍이 드세다. 이미 식당·편의점·카페 등에서 청년 외국인 근로자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 구인공고 중 '외국인 가능' 조건을 내건 공고는 2020년 4.95%에서 2021년 6.32%, 2022년 7.23%, 지난해 8.54%로 증가 추세다.

신재민 기자

조선소 등 업체에서는 할랄식 등 글로벌 식단을 운영하고, 라마단 기간엔 간식 주머니까지 제공할 정도로 외국인 근로자를 배려한다. 지자체는 너도나도 외국어 가이드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마약 같은 각종 범죄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입국 후 일하는 척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외국인 근로자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가사와 육아를 돕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앞두고 있다. 정부 역시 외국인 근로자 규모를 늘리고, 취업 가능 업종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민청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인제대 장수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제 외국인 근로자가 단순 ‘인력’이 아닌 중요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며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이민제도 문제와도 연관해 외국인 근로자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호·최종권·김민주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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