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삶 줄이고 줄이면… 도움 절실한 아이들 손 잡을 수 있어요”

김아영 2024. 4. 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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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한국컴패션 후원자로 활동하는 김운자씨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큰 사랑 있기에 가능”
한국컴패션 후원자 김운자씨. 신석현 포토그래퍼

푸근한 미소의 소유자인 김운자(77)씨는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흘렸다.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파노라마처럼 떠오른 추억에 대해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 이내 미소를 지은 김씨는 5개의 파일철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파일철에는 어린이양육기구 국제컴패션을 통해 연결된 양아버지 윌리엄 베이커씨와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또 2012년부터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목사) 후원자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은 후원 아동들에 대한 사진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또 다른 선교 사역이자 생명 살리는 일

김씨는 최근 서울 용산구 한국컴패션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컴패션은 제가 갈 수 없는 나라의 아이들을 모아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며 “후원 활동은 결국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자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최근 르완다의 가테테 베다스테(20)와 행복한 작별을 고했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김씨는 지난 3년간 가테테를 마음에 품고 그가 자립할 때까지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어업에 종사하며 자립하게 된 가테테는 컴패션 어린이 양육 프로그램을 수료했으며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가테테가 결혼하면서 후원자를 기다리는 두 명의 아동의 손을 잡았다. 마음으로 품은 또 다른 자녀들이 생긴 것이다.

남편 장세종 목사를 도와 지난 40여년간 목회 활동을 하다 2013년 은퇴한 그는 형편이 넉넉해 후원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김씨는 “은퇴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선교사인 자녀와 손주들까지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원 아동을 돕는 금액이 한국에선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제 삶 가운데 지출을 줄이고 줄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한국컴패션 후원자 김운자씨. 신석현 포토그래퍼

양아버지의 특별한 사랑

이런 후원 활동에는 그가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도 한몫한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김씨는 1963년 열여섯 살에 미국인 후원자 베이커씨를 만났다. 아버지의 얼굴도 사랑도 받지 못했던 김씨는 베이커씨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베이커씨로부터 오는 선물과 사랑의 편지는 성인인 대학생이 됐을 때도 지속됐다. 복음을 위한 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장로회신학대에 입학한 뒤에도 매달 100달러(당시 약 2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김씨는 1969년 9월 대학에 들어간 딸을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베이커씨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했다. “십여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빠’라고 불렀기에 처음 만났을 때 ‘아빠’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2박 3일간 함께 보냈는데 아버지가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죠.”

베이커씨와의 사랑의 교제는 계속 이어졌다. 김씨가 가정을 일군 뒤 자녀를 출산했을 때도 선물을 챙겨줄 정도로 살뜰한 아버지였다. 훗날 40대가 된 김씨는 일본에서 공군으로 복무한 베이커씨 집을 방문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20년 이상 자신을 후원한 아버지의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아버지는 낡은 목조 건물에 사셨어요.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 내가 무엇이기에 오랫동안 매달 100달러씩 보내주신 것인지 한없이 죄송했어요. 당시 미국인은 모두 잘 산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눈물로 회개 기도를 하면서 받은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죠.”

한국컴패션 후원자 김운자씨. 신석현 포토그래퍼

전 세계 아동의 어머니 되다

목회 일선에 있을 땐 목양 활동과 세 명의 자녀 양육에 분주하다 보니 나눔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목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이었던 2012년 우간다의 샤론과 케냐의 가체리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의 디아나, 가테테 등 전 세계 컴패션 어린이들의 ‘어머니’가 됐다.

그는 “어린이의 때 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에 심겨 있는 복음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허락하는 한 계속 컴패션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이라며 “어릴 적 가졌던 선교사의 꿈을 컴패션을 통해 대신 이루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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