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모던 패밀리

이예지 2024. 4. 30. 14: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싱글맘 가정, 동성 부부 가정, 다문화 가정, 입양 가정에 이르기까지 서로 함께 하기를 선택한 모던 패밀리들의 이야기.
사유리 & 젠
“젠이 하루는 그랬어요. ‘엄마 머리는 까만색, 내 머리는 갈색, 친구 머리도 까만색.’ 그래서 제가말했죠. ‘맞아, 갈색이야. 참 예쁘지. 세상에는 더 다양한 머리 색깔이 있어.’”
(사유리)데님 재킷 Jacquemus. 팬츠 Zara. 플랫폼 슈즈 Gabriela Hearst. (젠)데님 재킷, 데님 팬츠 모두 Zara Kids. 이너 톱, 양말, 스니커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가정의 달을 맞아 젠과 함께 화보 촬영을 한 소감이 어떤가요?

A : 사유리 모든 싱글맘이 공감할 텐데, 저희는 외출해서 함께 있는 모습을 찍기가 참 어려워요. 다른 가족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텐데 저희가 함께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셀카뿐이에요. 그래서 젠이랑 저랑 몇 개월에 한 번씩 스튜디오에 사진을 찍으러 가요. 오늘 이렇게 젠과 함께 한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Q : 젠은 어땠어요?

A : 젠 좋았어!

Q : 얼마큼 좋았어요? 10만큼?

A : 젠 11만큼 좋았어!

Q : ‘가족’을 정의 내려본다면요?

A : 사유리 한국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원래는 가족은 핏줄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젠을 키우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 배 속에서 나왔고 제 핏줄이지만 갑자기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다”고 통보해도 젠은 여전히 제 자식이에요. 가족은 혈연 관계를 떠나 함께 한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Q : 젠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방식이 입양이 될 수도 있겠네요?

A : 사유리 맞아요. 그래서 둘째는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싱글맘은 제도적으로 입양을 할 수 없더라고요. 제가 벌써 마흔다섯이에요. 젠을 3년만 일찍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젠을 낳고 후회하는 건 그거 하나예요. 좀 더 일찍 가질 걸!

Q :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한국에선 정자 기증이 불법은 아니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지침이 있어 비혼 여성이 시술받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A : 사유리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시술이 불법은 아닌데 애초에 시술을 해주는 병원이 정말 없었죠. 찾아가는 산부인과마다 “불법이라 안 된다”라거나 “시술하면 처벌받는다”라며 문전박대했어요. 병원을 열 군데쯤 돌아 시술 가능한 곳을 겨우 찾았죠. 그마저도 병원에서 “우리 병원에서 시술받았다고 밝히지 말아달라”라고 하더군요.

Q : 정자 기증 출산을 결심하고도 순탄치 않았네요. 미디어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너무나 의연하게 뚝딱 출산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젠을 갖기로 결심한 그 순간도 궁금해요.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A : 사유리 오히려 그 반대예요. 아이를 포기할 용기가 없었죠. 정자 기증을 결심하기 전 정말 사랑하던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 사람과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싶었는데 그는 결혼에 뜻이 없었어요. 꽤 자주 미래에 대해 얘기하곤 했는데 제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지금은 안 된다”라고만 하니 미칠 노릇이었죠. 그래서 마흔까지만 이 남자를 기다리고 그래도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하면 아무리 사랑해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남자가 나중에 아이를 갖고 싶어 할 때 제가 그럴 수 없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은 거예요. 무엇보다 아기를 원하지 않는 남자에게 계속 결혼을 재촉하고, 제 생각을 관철하는 것도 폭력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갈 길을 가기로 결심한 거죠.

Q : 그 용기에 힘 입어 한국에서도 비혼모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 새 지평이 열렸습니다.

A : 사유리 제가 정말로 기여했다면, 감사합니다. 사실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내내 제 출연을 반대하는 시위도 열렸고요. 사람들한테 욕먹고 비판받고, 거기에 상처받고…. 사실 이런 건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아이를 갖지 못할까 봐 걱정하던 날들에 비하면요.

Q :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온전히 혼자 해내는 건 어땠나요?

A : 사유리 임신한 동안 매일이 축제 같았어요. 너무 행복해서요. 제 친구도 저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했는데,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는 모습에 사실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제겐 아기를 가지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 금방 잊었어요.

Q : 젠을 만난 건 사유리에겐 어떤 의미예요?

A : 사유리 인생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느낌. 제가 태어나서부터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그리고 칠해 하얗던 캔버스가 얼룩덜룩해졌는데 새하얀 캔버스를 다시 하나 선물받은 느낌이랄까요.

Q : 정자 기증자를 ‘기프트(Gift) 씨’라고 표현한 게 기발하다고 생각했어요.

A : 사유리 ‘정자 기증자’라는 표현은 너무 딱딱한 것 같아서 ‘기프트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웃음) 제게 선물을 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Q : 젠은 엄마랑 뭐 할 때가 가장 좋아요?

A : 젠 엄마랑 놀 때!

Q : 놀 때만 좋아요? 책 읽을 때는?

A : 젠 아니야, 놀 때가 좋아!

A : 사유리 저는 젠한테 학업에 있어 바라는 게 없어요.(웃음)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을 거고,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내고 싶은데 치열한 사교육과 입시 문화는 피하고 싶어요. 대신 팀 스포츠를 통해 배려와 인내심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네요.

Q : 젠은 벌써 일본어와 한국어가 모두 능숙하네요.

A : 사유리 제가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니, 젠에게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유산은 언어예요. 일본어와 한국어.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말을 우선적으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영어 유치원도 안 보냈죠.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어를 모른 채 영어부터 익히게 하는 게 아쉬워서요. 일본어는 저와 둘이 있을 때 한국어와 섞어서 사용하고, 영어는 젠이 호기심을 보여 개인 튜터를 통해 가르치고 있어요. 중학교까지는 한국에서 키울 생각이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영어권 국가로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젠이 원하는 어디로든 보내줄 생각이에요.

Q : 언젠가 젠이 물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내 머리 색깔은 왜 엄마와 다른지. 그럴 땐 어떤 대답을 해줄 건가요?

A : 사유리 지금도 조금씩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젠이 하루는 “엄마 머리는 까만색, 내 머리는 갈색, 친구 머리도 까만색”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맞아, 갈색이야. 참 예쁘지. 세상에는 더 다양한 머리 색깔이 있어.”

Q : 우리 가족의 형태가 평범한 가족과는 다르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나요?

A : 사유리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주제로 한 미국의 동화책을 자주 읽어줘요. 그 책에 보면 엄마가 2명인 가족, 아빠가 2명인 가족, 싱글맘, 입양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그림으로 나와 있죠. 젠한테 이 중에 우리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엄마랑 아들이랑 둘이 안고 있는 그림을 보고 “이거 우리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맞아, 우리는 아빠 없지? 근데 엄마랑 젠이 있지?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도 있고. 다 똑같은 가족이야”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Q : 열린 사고방식의 아이가 되겠어요. 젠더 교육은 어떻게 하나요?

A : 사유리 여자아이는 분홍, 남자아이는 파랑이라는 편견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해요. 젠이 분홍색을 좋아해서 자주 입혀요. 그래서 “리본도 할래?” 물었더니 그거는 아니래요.(웃음)

Q : 젠이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나요?

A : 사유리 너무 계산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 손해보더라도 그걸 손해가 아닌 양보라고 생각하고 만족할 줄 아는 아이요.

Q :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 생각도 있나요?

A : 사유리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젠 아빠 역할을 기대하진 않을 거예요. 젠에게 줘야 하는 사랑과 관심, 대학까지 보낼 금전적 여유가 부족하지 않을 때 결혼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젠은 제 힘으로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요.

Q : 주변에서 정자 기증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은?

A : 사유리 이걸 패션이고 트렌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정자 기증 출산을 하고 싶다면 옆에 헌신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생물학적인 내 아이가 갖고 싶다면, 되도록 난자는 젊을 때 냉동 보관하세요. 냉동한다고 다 유효한 게 아니더라고요. 30대부터 시작해 난자를 100개 정도 냉동 보관하면 그중에 1~2개 쓸 수 있을까 말까예요.

Q : 사유리와 젠처럼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잘 살아가려면 사회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A : 사유리 사실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주세요.

Q : 이 세상의 모든 ‘모던 패밀리’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주세요.

A : 사유리 시대마다 상식이 변해요. 지금은 특별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예의 없는 말이나 행동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아껴주세요. 결국 남들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Q : 〈코스모폴리탄〉은 ‘Fun, Fearless, Female’을 지향하는 잡지입니다. 가장 큰 두려움과 그것에 맞서는 방법은 뭔가요?

A : 사유리 두려운 순간은 늘 있죠. 전 그럴 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의 소리에 귀 기울여요.

Q : 그렇다면 가장 재밌는 것은?

A : 사유리 젠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요. 그걸 보는 게 정말 재밌어요.(웃음) (젠에게) 젠도 엄마 사랑하지? 엄마 스키(좋아)?

A : 젠 엄마 스키(좋아)!

김규진 & 김세연 & 라니
“이 사회의 모두가, 모든 가정이 다 똑같은 모습이라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을 거예요. 다들, 함께, 지금까지처럼 즐겁게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왼쪽부터, 김세연)드레스 Lemaire. (김규진)재킷 Eudon Choi. 팬츠 Zara. (라니)보디슈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소감이 어떤가요? 사랑스러운 라니를 정면에서 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공개하기 조심스러운 마음 이해합니다.

A : 규진 이렇게 사진작가님에게 찍어본 건 처음이라 즐거웠습니다. 저희도 오만 데 떼만 데 다 자랑하고 싶은데 안전 문제도 있고,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요.

Q : 두 분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A : 세연 서로 사랑하고,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이죠. 거창할 거 없이요.

A : 규진 민법상 가족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까지잖아요. 그런데 재밌는 건 후자의 경우 ‘생계를 같이 할 경우에만’이라는 단서 조항이 있어요. 함께 지내는 게 가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 저는 혈연만이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와이프가 말한 것처럼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성 소수자 부부로서 어떻게 출산할 생각을 했는지, 그 시작부터 듣고 싶습니다.

A : 규진 원래는 저도 와이프도 아이 생각이 없었어요. 와이프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저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죠. 그런데 와이프는 너무 낙천적인 사람이라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잘 기를 것 같은데?”라고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으로 얘기해서 안심이 되더라고요.(웃음) 그때 마침 제가 프랑스로 파견을 간 거예요. 정자 기증 센터와 접근성이 좋아지니 시작하기 용이했죠. 제가 프랑스 본사에 출근한 첫날, 이성애자 여성인 상사와 점심을 먹다가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라기에 제가 “와이프는 한국에 있어’라고 했는데, “그래? 애는 가질 거지?”라고 말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A : 세연 저는 규진이가 낳아준다고 해서 낳았습니다.(웃음)

A : 규진 와이프가 주변 이성애자 친구들한테 엄청 자랑했어요. “나는 와이프가 낳아준다?”면서.(웃음)

Q : 라니가 우리의 아이라고 강하게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 세연 라니의 엉덩이를 닦을 때. “엄마가 아니면 이건 못 해” 하면서요.(웃음) 어떤 분들은 제가 아기를 직접 낳은 것도 아니고 법적 부부도 아닌데 엄마라고 하는 게 맞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제가 엄마라고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요.

A : 규진 저는 그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렇게 치면 입양한 아이나 재혼 가정의 아이는 자녀가 아닌 걸까요? 전 새벽에 깬 아이를 번갈아 가며 달래 줄 때 우리의 아이라고 느끼곤 합니다.

Q :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은요?

A : 규진 아기가 까르르 웃어서 같이 웃을 때. “라니 언제 대학 가? 언니랑 데이트해야 하는데!”라고 실없는 농담을 할 때.

A : 세연 격무로 주말엔 쉬고 싶을 텐데 애기를 끌고 나가서라도 데이트를 할 때, 사랑을 느낍니다. 퇴근하고 제가 “산책 가자!” 하면 “으~” 하면서 나와줄 때도요. (웃음)

Q : 규진 님은 출산 후 언제 복귀했나요? 육아 분담한다고 해도 일과 육아의 병행은 쉽지 않죠?

A : 규진 4개월 뒤 복직했어요. 저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성취하는 걸 좋아하는데 육아에선 그게 쉽지 않아요. 물론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걸 보는 건 뿌듯하지만 혼자 집에서 아등바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A : 세연 일하는 사람 둘의 힘만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평일엔 거의 시터님이 도맡아주세요. 주말엔 같이 돌보는데, 서로 약속이 있으면 미리 허락을 구하죠. 한 사람만 육아에 몰입되지 않도록 배분하려 해요. 둘 중 한 명이라도 “나는 예전부터 현모양처가 꿈이었다”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둘 다 일을 좋아해서요.(웃음)

Q : 맘카페에 악플이 달릴 때, 결혼 소식에 악플이 달렸을 때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끼셨을 것 같다고 가늠해봤습니다. 그러나 한겨레에 연재 중인 칼럼 ‘모모일기’를 보니 거뜬히 유머러스하게 이겨 내셨던데, 그 담대한 마음과 태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 규진 맘카페 뿐 아녜요. 제 출신 학교를 밝혔는데 모교 커뮤니티에도 올라오고, 와이프가 의사인 걸 밝혔는데 의사 커뮤니티에도 올라옵니다. 자기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얼굴과 실명이 밝혀진 사람인데도 욕을 하는 거예요. 한번은 맘카페의 악성 게시글에 “저도 엄마여서 여기에 있는데요”라고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너무 죄송하다고 지우시더라고요. 그들이 저희를 실제로 만나면 절대 그런 말을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Q : 이렇게 신상을 드러내어 커밍아웃한 채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A : 규진 제 성격이 거짓말하거나 숨기거나 회피하는 걸 정말 못하고 싫어해요. 썸 탈 때도 좋으면 질질 끌기보단 바로 사귀자고 하는 성격이죠. 정면 돌파 밖에 할 줄 몰라요. 제가 대학생 무렵 홍석천님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며 여기저기 강연을 다녔고 김조광수님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던 때라, 저는 10년 안에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더라고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훌륭한 사람들이 나 대신 싸워 주기를 기다릴 수 없겠다. 나라도 나서야 하루라도 빨리 결혼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섰어요. 지금은 저희 아이가 좀 더 호의적인 환경에 살기 위해서라도 나서야죠.

A : 세연 규진이가 프랑스에 파견 갔을 때, 따라가려고 퇴직을 했거든요. 커밍아웃 하지 않았을 시점이라 두루뭉술하게 곧 결혼할 사람이 있어서 같이 간다고 했더니,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해외까지 따라가 동거한다는 걸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이래서 규진이가 그냥 다 얘기하는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갑자기 ‘광폭’ 커밍아웃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웃음)

A : 규진 남자친구와 동거한다는 게 놀라워? 더 신기한 걸 보여주지.(웃음)

A : 세연 한번 그렇게 하고 나니 괜찮더라고요. 사실 이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A : 규진 친한 교수님이 해준 말인데 좋은 소식은 가십으로서 가치가 없대요. 결혼하고 출산했다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니까요.(웃음)

Q : 언젠가 라니가 우리 가족이 전형적인 모습과 다르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이 오면, 어떤 방식으로 라니에게 우리 가정에 대해 이야기해줄 생각인가요?

A : 규진 저희가 정자 기증을 받은 벨기에 클리닉에선 필수적으로 심리 상담을 하거든요. 그때 이 질문을 받았어요. 저희가 생각해낸 답은, 일관적이고 투명하게 얘기할 것. 그때그때 답이 바뀌면 아이도 혼란스럽고, 거짓말을 하면 ‘엄마는 내가 부끄럽나?’, ‘우리 가정은 부끄러운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우리 둘은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라니를 만나고 싶어서 친절한 남성분과 과학의 도움을 통해 라니를 낳았다고 말해줄 거예요.

A : 세연 “모든 걸 네가 선택할 순 없단다. 세상은 그런 거야." (일동 웃음) 그리고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어 외국에서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을 해서 낳았기 때문에 네 머리색은 그렇고….

A : 규진 너무 의사로서 설명해주는 거 아니야?(웃음) 한국계 미국인 레즈비언 부부들과 얘기하면서 굉장히 부러웠던 건, 학교에서 이걸 배워 온다는 거예요. 교육기관에서 다양성을 위해 동성 부부뿐 아니라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알려주고 편견이 없도록 교육한대요.

Q :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모모 가정임을 밝힐 계획인가요?

A : 세연 저희 그때 어떻게 할지 맨날 얘기하는데, 결론은 아기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거예요. 애가 소심하거나 주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성격이면 밝히지 않는 편이 좋겠죠. 그런데 라니가 저와 규진이를 닮아서 기가 센 성격이라면, 그런 관심도 즐기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정말 힘들면 해외 파견을 다시 나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긴 합니다.

A : 규진 저희 둘 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어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와이프는 중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학부까지 미국에서 살았죠. 그래서 외국에서도 그곳의 힘듦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성소수자로서는 환영받을 수 있겠지만 인종 차별, 이민자로서의 차별도 존재하겠죠. 그리고 저는 한국 사회가 굉장히 쉽게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갑자기 두 줄 서기 하라고 하면 착착착 하루만에 바뀌는 게 한국이에요. 물밑의 싸움은 지난하겠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사람들은 빠르게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젠더 교육은 어떻게 시킬 계획인지 궁금해요.

A : 규진 라니의 성장 환경은 이미 너무 퀴어해요.(웃음) 어떻게 자라든 전형적이진 않을 테죠. 벨기에 클리닉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어요. 주변에 매일 보는 남성이 없을 텐데 그런 점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그래서 저는 게이 친구들이 많다, 멋진 게이 삼촌들이랑 놀면 되지 않냐고 했는데 상담사분은 필터링으로 걸러진 사람들만 보는 게 아니라 남성의 장점과 단점, 여러 면을 다 보여줘야 아이가 다양한 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A : 세연 우리가 엄선해서 어른들을 보여준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

A : 규진 맞아요. 현실은 훨씬 다양한데. 그 점을 계속 염두에 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서 양육하려 해요.

Q : 라니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요?

A : 세연 건강하고 행복하고 열정 넘치는 아이가 되면 좋겠어요.

A : 규진 동료시민으로서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마냥 자기만 행복하고 남들의 고통은 모른 척 하는 사람이 아니라요. 뭐, 가끔 가다 열 다섯 살에 아이돌로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도 합니다.(웃음)

Q : 한국은 생활동반자법도 요원합니다. 두 분이 법적인 부부가 되고, 라니가 법적인 두 분의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밟아나가야 할 절차가 아득한데, 그에 임하는 마음이 궁금합니다.

A : 규진 저희가 돈을 벌고 건강할 때까진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병에 걸리거나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는 이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확신해요. 동성혼 인식에 대한 조사 결과만 봐도 이미 2030은 과반이 찬성이에요. 아시아에서도 대만에 이어 태국이 동성혼을 법제화했죠. 변화는 곧입니다.

A : 세연 법제화가 돼야 사회적 분위기도 따라와요. 법제화를 한다고 없었던 동성 커플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이미 동거 내지는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던 이들이 법적인 가족이 되는 것이니까요. 하루라도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도 하고 있습니다.

Q : 규진 님이 한겨레에 연재 중인 칼럼에서 ‘착한 레즈비언 엄마’ 딜레마를 논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분은 명문대를 졸업 후 각자 외국계 대기업 재직, 전문직 종사 중이고, 대형 호텔에서 결혼했죠. 한국 사회에서 그런 ‘착한’ 호소는 강력했고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재원 작가의 “착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을 바꾸지만 나쁜 장애인은 제도를 바꾼다”는 말을 고민한다는 말씀이 좋았어요.

A : 규진 저는 레즈비언의 평균도 아니고, 모두를 대표할 수도 없어요. 퀴어가 훌륭하고 번듯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환대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거예요. 다만 저는 그저 제 상황에서 빠르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을 취했을 뿐입니다. 저는 좀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먼저 리스크를 지고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라고 회사에서 안 잘린다는 보장이 있진 않아요. 하지만 여유가 있는 입장일수록 리스크를 지고 선두에 나와줘야죠. 동시에, 더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삶이 가시화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 〈코스모폴리탄〉은 ‘Fun, Fearless, Female’을 지향하는 잡지예요. 두 분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그것에 맞서는 방법은?

A : 세연 아이가 중2병에 걸리는 것.

A : 규진 벌써부터?(웃음)

A : 세연 그에 맞서는 방법은 호된 교육입니다.(일동 웃음)

Q : ‘용감한’이라는 수사를 붙이기에 두 분만 한 분들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요.

A : 규진 용감하기보다는, 겁나지만 그래도 하는 사람입니다.(웃음)

A : 세연 원래 저는 겁이 많은 사람인데, 규진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용기를 얻고 있어요.

Q : 그렇다면 두 분에게 가장 큰 재미는?

A : 세연 요즘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파악하는 것이 여전히 큰 재미예요.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의 가치관을 촘촘하게 확인하게 되는 계기들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아기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두고,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계속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텐데, 규진이와 그런 대화를 하는 것이 참 재미있어요.

A : 규진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하는 경험, 만나는 사람들이 되게 달라지고 새로워졌어요. 어린이집 부모들을 만난다든지 하는 일이요. 저는 그게 싫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너무너무 즐거워요. 커밍아웃을 대대적으로 하니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웃음)

Q : 이 세상의 모든 모던 패밀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 세연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A : 규진 재미있지 않나요? 이 사회의 모두가, 모든 가정이 다 똑같은 모습이라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을 거예요. 다들, 함께, 지금까지처럼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임현주 & 다니엘 튜더 & 아리아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당신, 행복하죠? 알고 있어요. 그 행복을 믿고, 그걸 따라서 계속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니엘 튜더)셔츠, 팬츠, 로퍼, (임현주)톱, 스커트, 스트랩 슈즈 모두 Ferragamo. (아리아)의상 본인 소장품.

Q :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소감이 어떤가요?

A : 현주 아리아가 제일 프로였다!(웃음) 칭얼대다가도 딱 슛 들어가면 웃는 거 보셨죠? 저를 닮았나 봐요.(웃음)

Q : 두 분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A : 현주 이 기획 기사에 섭외된 가족들을 보면서 다니엘과 “우리 너무 평범한 가족 아니야? 괜찮을까?”하고 웃었어요.(웃음)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조명하는 이 기획이 참 좋더라고요. 저는 가족을 선택과 우연으로 만들어진 인연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A : 다니엘 사랑의 공동체. 기꺼이 희생하고 싶은 마음.

A : 현주 다니엘은 희생의 아이콘입니다.(웃음)

Q :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가족 구성원인가요?

A : 현주 살면서 수천 번의 선택을 했는데, 그 모든 선택에는 늘 조금이라도 후회와 아쉬움이 따랐어요. 다니엘을 만난 단 한 번의 선택을 빼고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매일매일 배울 점이 많아요. 이를테면 다니엘은 사소한 것도 제게 물어봐요. 제 물 같은 것도 부부가 같이 마실 수도 있는 건데 “이거 마셔도 돼?”라고 허락을 먼저 구하죠.

A : 다니엘 한국 문화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연인에서 자연스레 ‘우리 아이 엄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예전에 금융권에 종사할 때 동료들에게 그런 인식이 보편적이었어요. 전 그런 생각이 싫습니다. 현주는 아리아 엄마이기 이전에 여전히 제 연인이에요.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죠. 우리는 단지 육아 공동체일 뿐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예요.

Q : 출산 후 지금까지 다니엘 님이 주 양육자로서 육아를 더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여성이 주 양육자인 게 당연한 한국 사회에서 좋은 선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A : 현주 저희 엄마가 늘 얘기하세요. “다니엘 같은 남자가 없다.” 둘 다 일을 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결국 누군가가 희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는데, 다니엘이 출산 후 6개월간 본인이 아이를 주 양육자로서 돌보겠다고 해서 직장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죠. 엄마 세대 때만 해도 육아는 여자의 몫이었는데, 얼마나 신기해하시는지 몰라요.(웃음) 가끔 다니엘이 주부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지쳐 보여서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A : 다니엘 많은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머리도 좀 쓰고 싶은데, 그럴 여건이 안 되기는 합니다.(웃음) 하지만 현주가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그런 마음이 해소돼요. 저렇게 일을 잘하고 멋있는 현주가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했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겠어요.

A : 현주 다니엘이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쥬쥬는 늘 쥬쥬야. 그냥 늘 쥬쥬로 살았으면 좋겠어.” 쥬쥬는 제 애칭인데 그 말을 들으면 사랑이 폭발합니다.(웃음) 응원이자 동시에 채찍질이에요. ‘내가 날 잃으면 이 사람은 내게 실망하겠구나. 그러니까 나는 날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죠.

Q : 다니엘 님은 한국에서 사는 건 어떤가요? 외국인과 가정을 이룬 현주 님이 편견을 마주할 땐 없나요?

A : 현주 돌이켜보면 다니엘과 처음 연애할 때 주변에서 나를 낯설게 보진 않을까 어색해하던 기억이 나네요. 제 안에 있던 다름에 대한 내면화된 두려움이었죠. 차별이나 편견은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교과과정에서 다양성에 대해 좀 더 넓게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이미 존재하는 선택지에서 정답을 맞히는 교육에서 더 나아가야죠.

A : 다니엘 지금 기자님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다행스럽게 느끼는 것은, 기자님이 현주와 저를 번갈아 보면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현주와 제가 함께 있을 때 현주를 보면서 말해요. “다니엘 김치 드셔?” 바로 옆에서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도.(웃음)

A : 현주 다니엘이 한국에 15년 넘게 살았고 한국어를 잘함에도 여전히 낯선 존재인 거죠.

A : 다니엘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한국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제가 한국어로 말해도 계속 영어로 답해주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Q : 현주 님은 출산하고 3개월 후 회사에 복귀했죠. 어떻게 가능했나요?

A : 현주 아이를 낳기 전에 저는 제가 제일 소중했고, 가능한 한 빨리 복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회사에도 3개월 만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고요. 잘한 선택이었죠.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애를 떼어놓고 직장에 오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처음엔 떨어져 있는 게 힘들었지만 이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어요. 제가 출근 준비를 새벽 5시쯤 시작하니 그때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다니엘이 아이를 돌보는데요, 아이가 너무 예쁘지만 아이하고만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거든요. 세상에서 잊히는 기분도 들고. 그렇기에 적당한 일은 오히려 육아에 힘이 됩니다. 지금은 시터분도 없이 둘이서 잘해내고 있어요.

Q : 최근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서 아리아를 안고 방송을 진행해 화제가 됐어요. 아기를 안고 생방송을 진행한 아나운서는 세계 최초였죠. 2017년 호주에선 여성 상원 위원이 모유를 수유하며 연설했고, 2019년 뉴질랜드의 국회의장은 아이에게 분유병을 물리며 회의를 주재해 화제가 됐어요.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은 여성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으로 아리아를 안고 생방송에 임했나요?

A : 현주 출산 전엔 ‘일할 때 엄마로서의 나의 존재는 가급적 숨겨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내 커리어나 이미지에 도움이 될까?’라는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이건 저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저를 성장시키는 경험이더군요. 때마침 제작진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엄마로서의 제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고 제안했죠. 저는 엄마로서의 나의 모습을 브이로그나 관찰 예능처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왕 할 거면 의미가 있고, 한발 더 나아가야 했죠. 그래서 제가 역으로 제안했어요. 아이를 안고 생방송을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아이가 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예측 불가함 역시 아이의 모습이기에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아이들은 대체로 사랑스럽지만, 사실 보채는 시간이 더 길 거예요. 저의 이런 시도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도 했는데, 다니엘이 옆에서 많이 지지해줬어요. 오프닝 멘트도 같이 만들었죠.

Q : 그 방송 오프닝을 같이 볼까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손님과 함께합니다. 지금 제 품에 있는 이 아기는 오늘로 인생 170일 차를 맞은 저희 딸 아리안데요, 오늘 저희 방송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한 저출생 관련 토크가 준비돼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 아이가 귀해진 시대라고 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가 배제되는 곳도 많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오늘은 노키즈 존이 아닙니다.”

A : 다니엘 영국에선 노키즈 존을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펍에서도 아이가 같이 있는 게 어색하지 않죠. 그런데 한국에선 엄마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아요.

A : 현주 방송 댓글을 보면 ‘아이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진상 부모들을 배제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진상부리는 사람들은 엄마 말고도 많아요. 그런데 ‘아이를 동반한 진상 엄마’를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부터가 차별이고 아이에 대한 배제인 거죠. 그걸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부터 문제예요.

A : 다니엘 설령 아기가 울거나 하는 게 개인적으로 짜증스럽더라도, 사회 보편적인 관점에서 용납해주는 시선이 필요해요. 우리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잖아요.

A : 현주 댓글에 힘을 얻었다고 응원해주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저도 힘이 났죠.

Q : 아리아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나요?

A : 다니엘 남에게 배려심이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A : 현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잘난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교육하겠지만, 나중엔 남편의 고향인 영국에서 살아볼 수도 있을 거예요. 다니엘 친구 중에 저희와 같은 다문화가정이 있는데, 두 아이가 각각 자신의 정체성을 다르게 생각한대요. 첫째는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둘째는 자기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아이의 선택에 달린 문제예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주고 선택을 존중해주는 거죠. 아이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게 우리 일이에요.

Q : 세 가족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 다니엘 아리아를 안아 올려서 눈을 마주칠 때.

A : 현주 볼을 맞대고 아리아 머리 향기를 맡을 때. 심플하죠.

A : 다니엘 그리고 현주가 제게 “남편”이라고 부를 때 사랑을 느낍니다.(웃음)

A : 현주 “아리아 아빠”라고 부를 계획은 없어요.(웃음)

Q : 다양한 가족 형태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필요로 할까요?

A : 현주 타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A : 다니엘 어떤 분이 동성 부부에 반대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럼 당신은 동성을 사랑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하게 두고요!”

Q : 나와는 다른 국가,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배우자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A : 현주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당신, 행복하죠? 알고 있어요. 그 행복을 믿고, 그걸 따라서 계속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홍석천 & 홍주은 & 홍영천
“사회적 시선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한들 아직까지는 입양 사실을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스스로 떳떳하다면 용기를 가지세요.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니까요!”
(홍주은)크롭트 셔츠, 스커트 모두 YCH. (홍석천)재킷, 이너 톱 모두 Andersson Bell. (홍영천)재킷, 이너 톱 모두 Adererror. 팬츠 본인 소장품.

Q : 가족사진을 찍은 소감이 어떤가요?

A : 영천 10여 년 전에 온 가족이 단체로 사진관에서 찍었던 적은 있는데, 이렇게 셋이 찍는 건 처음이에요. 되게 묘한 기분이네요.

Q : 사실 영천 님은 인터뷰를 끝까지 고사했죠. 마지막에 용기를 낸 이유가 궁금해요.

A : 영천 누나 같은 경우 방송도 몇 번 나가고 했는데 저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선뜻 용기가 안 생기더라고요. 이번엔 기왕 찍는 가족사진이라면 저도 함께 찍어야지, 하고 용기 내봤어요. (웃음)

A : 주은 영천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유학 생활을 했어요. 한번은 “나는 어디서 안 불러주네? 사람들이 아들은 있는 줄 모르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서운한 티를 조금 내더라고요.(웃음)

A : 석천 워낙 샤이 보이라 나가면 데이트는 잘하나 모르겠어.

Q : 석천 님이 두 조카를 입양하게 된 계기는 누나의 이혼이었죠?

A : 석천 맞아요. 누나한테 “애들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라고 했죠. 에휴, 그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고.(웃음) 애들 아빠 노릇을 해야 하니까 정말 억척같이 일을 했어요. 애들 유학 보내려면 돈도 많이 드니까요.

Q : 한국의 사회적 인식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두 자녀의 유학을 결정했나요?

A : 석천 그렇죠. 애들이 따돌림이라도 당하진 않을까 걱정돼서 유학을 보냈어요. 입양 사실을 밝혔을 때, “어떻게 삼촌이 아빠가 되냐?” 그리고 “동성애자가 어떻게 아이들을 입양해 책임지느냐” 이 두 시선이 지배적이었거든요.

A : 주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였죠. 학교에는 늘 짓궂은 친구들이 있잖아요? 질문 공세가 끊이질 않았어요. 갑자기 왜 성이 바뀌었는지, 어떻게 삼촌이 아빠가 됐는지…. 그런데 사실 저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그냥 그렇게 됐어”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많았죠.

Q : 전학을 고민할 법도 했을 텐데 꿋꿋이 학교 생활을 했네요.

A : 주은 제가 다행히 골목대장 스타일이어서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당시에는 입양이 흔한 일이 아니었고, 삼촌이 이미 너무 유명인이어서….(웃음)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몇몇 친구들 때문에 힘든 점이 있기도 했는데 괜찮았어요!

A : 석천 저도 갑자기 학부모가 되기는 했는데 안 좋은 소문이 날까 봐 운동회며 졸업식이며 하나도 참석하지 못한 거예요.

A : 주은 근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소문이 너무 빠르게 퍼져가지고.(웃음)

A : 석천 그러니까. 되게 웃기더라고. 얼마나 조심했는데 다 알더라고요.

A : 주은 동생은 학창 시절을 계속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함이 없었을 거예요.

A : 영천 그렇죠. 근데 그 몇 안 되는 한국인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와서는 꼬치꼬치 묻더라고요. 저는 당당하게 다 얘기해줬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이혼을 했는데 지금은 삼촌이 입양을 하셔서 법적으로 삼촌이 아버지다” 이렇게 명쾌하게 답하면 더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

A : 석천 나만 발을 동동 굴렀지 뭐. 계속 ‘얘네들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만 하고.(웃음)

Q : 너무 멋지지만 남들과는 다른 아빠를 둔 소감은 어때요?

A : 영천 너무 좋아요. 저희는 축복받은 삶이죠.

A : 석천 특별하니까 재밌지 않니?

A : 주은 특별하죠. 삼촌이 저희를 입양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바뀐 삶이 훨씬 좋아요.

Q : 언제 서로가 진짜 아빠라고, 자식이라고 느꼈나요?

A : 주은 중학교 입학할 때 등본을 뗐는데 삼촌이 ‘부’라고 돼 있었어요. 그게 되게 든든하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삼촌이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딸, 아들이라고 소개를 해요. 자연스럽게 삼촌이 아빠라고 느껴졌어요.

A : 영천 홍석천이 아버지라니, 어깨가 올라갈 일이죠!

A : 석천 전 얘네 초등학생 때 종이 카네이션 받으면서부터죠 뭐.(웃음) 제 생일 때 용돈 아껴서 선물 사줄 때마다 ‘내가 진짜 자식들이 있구나’ 느꼈어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 자식들이죠.

A : 영천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늘에서 내려준 아빠.

A : 석천 저는 항상 노심초사했어요. 아빠가 홍석천이라는 사실 때문에 얘들이 사회생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을까, 결혼할 때 상대방 가족이 싫어하진 않을까….

A : 주은 당연히 제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죠.

A : 영천 상대방 가족이 아버지를 싫어한다? 그럼 저도 싫어요.

Q :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기 버겁지는 않던가요?

A : 석천 당시 제가 이태원에서 가게를 10곳 넘게 운영하고, 외식업으로 돈을 미친 듯이 벌었던 게 소수자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애들 둘 다 해외 유학을 보냈으니 지원해줘야 하잖아요. 애들 엄마도 그때 힘들었으니까 제가 더 압박을 느꼈죠. 그러다 보니 30~40대가 훅 지나가버린 거예요. 애들을 입양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 애인이 2순위로 밀렸었어요.(웃음) 얘네들이 1순위였죠.

Q : 석천 님의 삶에서 연애도 꽤 중요한 부분 아닌가요?

A : 석천 아이, 그럼! 근데 애인은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는데 애들은 그대로니까.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애들이 제 지원을 받으면서 쑥쑥 잘 자라주는데 참 고맙더라고요. 제가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성공해야겠다는 결심은 다 아이들로부터 나온 거니까. 그걸 느낄 때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Q : 아이들을 입양한 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살아오신 것 같기도 하네요.

A : 석천 아이들 입양하고 나서는 책잡히기 싫어 클럽도 잘 안 다녔어요. 사실 저 같은 소수자가 이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스스로를 억압하고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거든요. 눈치 보고, 빈틈 보이지 않으려 하고. 그런데 남들 기준에 맞춰 살아온 날들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지금 드는 생각은 ‘60세까지 후회 없이 놀아보자’예요. 과거엔 클럽에 가더라도 테이블 구석에 얌전히 앉아만 있었다면 지금은 테이블도 안 잡아요. 그냥 가서 웃통 까고 새벽까지 놀아요.(웃음)

Q : 이번 기사에 함께 출연하는 김규진&김세연 부부처럼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A : 석천 너무 부럽죠. 이제 아이들도 다 자랐고, 저도 50세가 넘어가니 이제야 비로소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A : 주은 삼촌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하면, 저희는 그 결심을 정말 응원할 거예요.

Q : 석천 님은 한국 사회에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 데 굉장한 업적을 쌓았죠.

A : 석천 아직 제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많은 동성애자 친구들이 자문을 구해 와요. 그래서 유튜브 〈홍석천의 보석함〉의 스핀오프인 〈홍석천의 상담함〉을 준비 중이죠. 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소수자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보려고 해요. 필요하다면 전문가도 초빙하고요.

Q :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가정을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마디 해준다면?

A : 석천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해요. 잘 모르니까 낯선 건데 사실은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거든. 자신과 다른 종자라는 편견을 지워야 해요. 어차피 모든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인생도, 가치관도, 꿈도. 제가 커밍아웃하고 24년이 흘렀는데도 사실 한국 사회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게 없어요. 저 다음으로 (하)리수가 역할을 해줬고, 이제 풍자가 또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있고. 〈홍석천의 보석함〉에선 김똘똘이 주목받고 있어 다행이지만…. 제 짐을 같이 짊어질 동생들을 또 발굴하고 수면 위로 올려놔야죠. 어떻게 보면 이 스튜디오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예요. 이태원의 유일무이한 방송국으로 키워 나갈 예정이죠. 〈홍석천의 근육함〉 또한 준비 중이에요.

Q : 생활동반자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할 텐데요.

A : 석천 예전부터 제정이 시급했죠. 10년을 같이 살았으면 사실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근데 사회가 인정을 안 해주니까 보험이며, 공공 서비스며, 유산 문제며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아는 일화로 25년 동안 함께 산 게이 커플이 있었는데 60세 넘어서까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죽었어요. 근데 모든 재산이 인연을 끊고 살았던 가족에게로 넘어간 거예요. 정작 죽는 날까지 곁에 있었던 사람에겐 그 어떤 권리도 없었어요. 이런 사례가 정말 많아요. 동성혼의 합법화까지는 아직 바라지도 않아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돼야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요. 사회의 시선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법적인 문제는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저 같은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야 되는 건데.(웃음)

Q : 언젠가 정치를 하신대도 좋겠습니다.

A : 석천 아니에요. 지금은 할 게 너무 많아요.(웃음)

Q : 이 세상의 모든 모던 패밀리에게 응원의 말을 해준다면요?

A : 석천 세상을 50년 넘게 살아보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정말 헛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내 행복을 위해서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행복한지. 주변에 두세 명 정도만 내 편이 있으면 돼요. 그 외의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기에는 이 세상에서 할 게 너무 많아요. 남들이 짜 놓은 시나리오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A : 영천 남들과 다른 가족을 가졌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특별함은 오히려 행운입니다.

A : 주은 사회적 시선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한들 아직까지는 입양 사실을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스스로 떳떳하다면 용기를 가지세요.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니까요!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스모폴리탄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