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링 베를린의 거대한 성채

이경진 2024. 4. 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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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테이블웨어 브랜드 헤링 베를린의 디자이너이자 탁월한 도예가인 스테파니 헤링의 집.
1905년 건축가 오토 크노프(Otto Knopf)가 지은 베를린 젤렌도르프의 빌라. 헤링 베를린의 프라이빗 쇼룸으로 쓰고 있는 1층 거실공간으로, 드라마틱한 목재 계단과 바 공간의 천장 장식의 원형을 살렸다.
벽에 걸린 회화는 노버트 비스키(Norbert Bisky)의 작품. 선반 위에는 아티스트 에른스트 감페를의 목조각과 물레로 만들어진 스테파니 헤링의 세라믹 오브제.
일 년 내내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창에 와시(일본 종이)로 제작한 블라인드를 달아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글라스 램프는 헤링 베를린의 ‘글로리아(Gloria)’.

1990년대 초반, 프렌츨라우어베르크(Prenzlauer berg)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한 도예는 스테파니 헤링(Stefanie Hering)을 운명으로 휘감았다. 이후 스테파니는 덴마크와 아일랜드, 독일을 떠돌며 도예 장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거쳐 1999년 테이블웨어와 글라스웨어, 조명과 인테리어 오브제를 아우르는 헤링 베를린(Hering Berlin)을 설립했다. 이제는 톰 셀러스(Tom Sellers), 고든 램지,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등의 유명 셰프들이 그녀에게 디시 웨어를 의뢰한다. 오프라 윈프리와 니콜 키드먼, 레니 크래비츠도 헤링 베를린의 열렬한 고객이 됐다. 정교한 품질과 미니멀한 미학,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담긴 헤링의 세라믹은 하나하나가 예술적 면모를 지니면서도 매일 음식을 담아낼 수 있는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1999년부터 헤링 베를린의 모든 세라믹 제품은 100여 년 전 도자산업을 싹 틔운 튀링겐 지역의 라이헨바흐(Reichenbach) 도자기 공방의 노련한 장인들이 제작한다.

헤링 베를린의 ‘벨벳(Velvet)’ ‘펄스(Pulse)’ ‘시엘로(Cielo)’ 라인의 세라믹들이 진열된 쇼룸의 코너 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엘로(Cielo)의 화병. 배리 맥대니얼(Barry McDaniel)의 목가적인 조각. 2019년 스테파니 헤링이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 ‘엑스트라포지션(Extraposition)’. 유약 테스트를 거친 도자 크랙들.

“테이블 위에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해 왔어요. 각기 다른 사이즈와 조각적인 형태, 특유의 표면과 컬러를 가진 접시와 그릇, 주전자는 음식의 프레젠테이션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줍니다. 카멜레온처럼 식탁 위의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동화되는 거죠.” 베를린 남서쪽 젤렌도르프(Zehlendorf) 지역에 자리 잡은 빌라 헤링(Villa Hering)은 헤링 베를린의 모든 라인을 창의적이고 내밀하게 경험할 수 있는 프라이빗 쇼룸이자 스테파니의 집이다. 전 세계를 상대하느라 언제나 분주한 오피스와 가끔씩 베를린을 방문하는 셰프들의 진귀한 다이닝 이벤트가 벌어지는 식당이 있는, 브랜드의 거대한 성채인 셈이다.

헤링 베를린의 미팅 공간.
옵시디언(Obsidian) 유약을 바른 도자 타일로 제작한 벽난로가 놓인 쇼룸 공간. 벽난로 옆의 화병은 헤링 베를린의 ‘펄스(Pulse)’ 라인.

“마치 이 유서 깊은 빌라가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아요. 1905년 건축가 오토 크노프(Otto Knopf)가 베를린예술공예학교 교수였던 오토 롤로프(Otto Rohloff)를 위해 지은 집이었어요. 이 오래된 빌라의 원형적인 부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우리가 디자인한 가구와 조명, 컬러들이 이곳에 스며들도록 했어요.” 덕분에 유겐트슈틸의 현관문과 황동 손잡이, 레버를 힘껏 돌려야 열리고 닫히는 정교한 창문, 고풍스럽게 뻗어오르는 나무 계단 등 20세기 베를린의 공예 요소들이 온전히 살아남았다. 레너베이션은 헤링의 디자인 팀이 담당했고, 부분적으로 건축가인 스테파니의 딸 엘라 에슬링거(Ella Esslinger)가 가세했다. 검은색의 옵시디언 유약 타일로 만든 벽난로와 공간을 신나게 부유하는 듯한 유리 샹들리에 레이 댄스 5(Ray Dance), 일본의 와시 종이를 늘어뜨린 셰이드는 겨울 햇살마저 따듯한 온기로 끌어안는다. 그녀는 세라믹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려던 꿈을 이곳에서 이뤘다. 드라이 바를 위해 17세기 초반 영국에서 만들어진 육중한 컵보드를 가져왔으며,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좌절된 사회주의의 실존을 표현한 노버트 비스키(Norbert Bisky)의 그림을 벽에 걸었다. 에른스트 감페를(Ernst Gamperl)의 서정적인 목조각은 그녀 내면의 미감이 불러모은 것들이다.

스테파니 헤링.

“에른스트 감페를의 나무 조각에 매료된 적 있어요.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굳건한 그의 작품을 몇 점 모았죠. 그는 주로 바람을 못 이기고 쓰러져 있거나 물에 떠밀려 내려온 나무를 쓰는데, 그래서인지 나무가 가진 불규칙한 틈새와 결에서 고유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요.” 1층의 쇼룸과 오피스, 2층으로 이어지는 스테파니와 가족들의 주거공간, 3층의 게스트 룸으로 기능을 구분했지만 뾰족한 삼각형 지붕 아래에 있는 예측 불가능한 빌라가 품은 역사성은 모두를 하나로 아우른다. 북해 항구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발코니에 서니 젤렌도르프의 눈 쌓인 겨울 아침이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빌라가 품은 거대한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2층 테라스. 20세기 독일 건축의 일부인 목구조가 운치 있게 드러난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1960년대 월터 놀(Walter Knoll)의 라운지체어가 놓인 스테파니의 침실.

“겨울을 제외하면 이곳은 늘 초록이 지배해요. 공원처럼 넓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여름에는 나의 삶과 일이 저 밖에서 벌어져요. 수국을 가꾸고 야채와 과일을 기르면서요. 겨울엔 친구나 가족들과 모여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 좋아요. 함께 요리하거나 늦은 밤에 영화를 감상하면서요.” 스테파니는 우리를 위해 뚝딱 포모도로 파스타를 만들어냈다. 에볼루션이라는 이름의 조각 같은 접시에 가장 소박한 음식이 담길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 손잡이가 없는 에스프레소 잔에는 골드 유약이 발라져 있어 입에 닿는 촉감마저 부드러웠다. 식탁 위에 오른 테이블웨어와 음식들은 안온한 자리에 모인 우리들의 시간을 카멜레온처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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