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바둑학과도 '곤마' 위기…생사 엇갈린 '학과 빅뱅' [캠퍼스 학과 빅뱅]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가 있던 명지대는 지난달 25일 중대한 결정을 했다. 교수회의를 열어 2025학년도부터 바둑학과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사회의 수요, 대학 내외의 평가에 맞춰 대학의 학사구조를 발전 계획에 따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폐과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바둑학과는 말 그대로 ‘곤마(困馬·살아나기 어려운 돌 또는 형국)’에 몰린 것이다.
교수와 학생들은 반발하고 있다. 김한결 바둑학과 학생회장은 “바둑이 사양산업이라는 이유로 과를 없앤다는 학교 측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폐과를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세계 유일 바둑학과도 ‘곤마’ 위기
곤마에 처한 곳은 바둑학과뿐만이 아니다. 지금 대학에선 학과·전공의 생사가 엇갈리는 정원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무전공 입학 확대 등의 변화가 대학가를 덮치면서 이른바 ‘학과 빅뱅’이 벌어지는 것이다. 교육부가 매년 요청하는 대입개편안 시행계획 변경안 제출의 시한(4월 30일)이 지나면 학과 빅뱅은 더 구체화 될 전망이다.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대학에선 학과 통폐합이 꾸준히 진행됐다. 중앙일보가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통계서비스를 통해 2008년부터 2023년까지 15년간 4년제 일반대학 학과 변화 추이를 분석했더니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자원학(42.9%), 천문·기상학(38.9%), 기타 유럽어·문학(35%) 관련 학과들이 30% 이상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29.9%), 물리·과학(28.6%), 수학(21.1%), 독일어·문학(20%) 관련 학과들은 20% 이상 줄었다.
학력 인구 감소, 인기학과 위주 구조조정이 원인
대학가에서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고등교육이 공급자인 대학 중심에서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대학 재정이 어려워져 지방 사립대를 필두로 ‘인기학과, 취업률 상위 학과’ 위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모집정원도 과거 인기가 많았던 사회계열 학과들이 크게 줄었다. 7개 계열(인문·사회·자연·공학·교육·의예·예체능)을 비교해 봤더니, 2008년 모집정원이 가장 많았던 사회계열은 9만868명에서 2023년 6만8809명으로 2만2059명이 줄었다. 인문(4만5218명→3만5905명), 자연(4만1600명→3만6532명)계열도 크게 감소했다.
여러 대학의 ‘시그니처 학과’들도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설립한 한신대는 창립한 지 30년 된 종교문화학과의 신입생을 2025학년도부터 안 받기로 결정했다가 학내 반발에 부딪혔다. “취업률·입시 경쟁률이 낮다”는 학교 측의 주장에 대해 학생들은 “종교지도자 양성학과가 취업률을 따지는 게 맞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용인대는 올해 15명의 신입생이 입학한 택견 전공을 2026학년도부터 안 뽑기로 했다. 용인대 측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대학의 많은 학과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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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 드라이브’에 학과 소멸 공포 더 커져
여기에 교육부의 ‘무전공 드라이브’가 위기 학과의 소멸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학가에서 나온다. 무전공 선발은 입학한 뒤 여러 전공을 탐색하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일정 비율 이상 무전공 입학생을 선발한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무전공 입학생을 뽑으려면 그만큼 기존 학과의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비인기 학과에서는 정원을 한 명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학 본부와 다투는 상황이다. 학과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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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에 맞춰 학과 개편해야” vs “대학 기능 약화”
선택받지 못하는 학과가 폐과·개편되는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대학은 환경 변화에 최적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환경이 변하는데 대응하지 못하면 소멸하는 것”이라며 “특정학과 쏠림도 학생들의 선택이고 해당 분야의 산업 수요가 높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소수 학과나 기초학문 보호 문제는 개별 대학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라며 “재정난,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 입장에선 살아남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장의 논리에 따른 학과 구조조정이 대학의 근본이 되는 학문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앞으로 식량전쟁이 일어났을 때 농업 산업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농민은 고령화돼 있고 전문인력은 양성이 안 돼 있는데 자원학과 농대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라며 “학문 공동체인 대학이 ‘트렌드’만 지나치게 따라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연·서지원 기자, 용인=최민지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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