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1분기 성장률 서프라이즈에 드리운 그림자

2024. 4. 3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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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24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1분기 실질 GDP가 직전 분기 대비 1.3%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1.4%를 기록한 2021년 4분기 이후 9분기 만에 1%대 성장률을 보인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4%로 8분기 만에 3%대 성장률을 기록한 만큼 서프라이즈 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민간소비가 전 분기 대비 0.8% 성장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던 민간소비 부분이 그나마 기지개를 켠 정도로 볼 수 있다. 정부소비는 전년동기 대비 -0.6%로 오히려 감소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건설투자의 반등으로,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성장률 서프라이즈를 이끈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전 분기 대비 2.7% 성장이란 수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작년 4분기에는 무려 -4.5%를 기록한 만큼 이는 기저효과로 인한 착시로, 전년 동기보다는 오히려 -0.6%로 감소했다. 따라서 이 수치를 보고 건설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 오히려 최근 정부가 PF 부실사업장의 경·공매 인수 방법을 추가 허용한 데서 보듯 현재 부동산 시장은 속된 말로 ‘존버’가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 예상 뛰어넘는 깜짝 분기 성장률
내수는 착시, 사실상 수출이 주도
수출 주력 반도체 상황 녹록잖아
특정 품목에 과도한 의존도 문제

설비투자는 반대로 지난 분기 성장률이 높은 데 따른 기저효과로 전 분기 대비 -0.8%로 후퇴했다. 이번 성장률 서프라이즈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수출로, 전 분기 대비 0.9%, 전년 동기 대비로는 무려 7.1% 성장해 작년 3분기 이후 완연한 회복세에 들어섰다. 여기에 수입 감소까지 가세해 결국 순수출 쪽에서 성장을 견인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성장률 서프라이즈에 대해 대통령실이 내놓은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잡힌 회복세’라는 진단은 반 정도만 맞다. 상기했듯 실제 성장률을 견인한 부문은 수출 하나였고, 내수는 기저효과로 인한 반등에 불과했다. 성장률 반등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부동산 PF 부실이나 가계 및 기업 부채 부실화와 같은 문제가 금리인하 시점과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내수가 성장을 견인하기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성장을 견인한 수출 회복에서 반도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출 품목 중 부동의 1위인 반도체의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인 반등을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수출도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이제 경기 변동은 경제 전문가에게 물어볼 게 아니라 반도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할 만큼 결국 우리 경기변동은 반도체 경기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성장률 서프라이즈는 결국 ‘반도체 서프라이즈’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또 한편으로는 탄식의 한숨을 쉬게 한다. 글로벌 반도체 최강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1위 자리를 두고 삼성전자와 인텔 외에 TSMC가 가세하면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대만, 중국, 일본이 국가 전략사업으로 반도체 산업을 집중 지원하면서 각국 정부까지 경쟁에 가세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경우 반도체특별법의 국회 상정마저 무산되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전무했으나, 웃프게도 2022년 미국 주도로 결정된 ‘CHIP4 협력체제’로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반도체지원법의 혜택을 받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앞으로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국회가 저 모양이니 기대할 게 없는 만큼 기업 스스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총력을 기울인 파운드리 부문에서 TSMC와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고, HBM 사업에서는 기술 선점에도 불구하고 후발 주자로 뒤처지고 말았다. 그만큼 기업이 처한 환경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4차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최첨단 산업일수록 기술혁신에 따른 외부효과로 시장 수요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만큼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진단해 얼마나 발빠르게 대응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그야말로 한 발자욱만 잘 못 떼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환경이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의 규모를 볼 때 싫든 좋든 수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현재 수출품목 1위는 반도체에 이어 자동차가 석유제품을 누르고 2위로 올라섰는데 상위 10대 수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8.7%로 특정 품목 의존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들 주력 산업 경쟁력이 하락할 경우 이를 대체할 새로운 품목이 부상해야 하는데 2차 전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경공업 중심이라 국가경제를 이끌어가기에는 힘에 붙인다. 현재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마저 경쟁력을 잃는다면 답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나 기업이나 모두 ‘살찐 고양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성장률 서프라이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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