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LP…표지부터 예술이었지

나원정 2024. 4. 3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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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힙노시스는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프리즘 음반 커버로 유명하다.

검정 바탕의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해 무지개색을 뿜어낸다. 과학 교과서에나 보던 이미지가 무려 741주간 빌보드 차트를 장식했다. 1973년 발매된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LP 커버 얘기다. 지금도 티셔츠·문신·벽화 그래피티로 ‘힙스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불타오르네’(2016)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슈가와 악수하던 남자 몸에 불이 붙는 장면도 핑크 플로이드의 1975년 음반 ‘위시 유 워 히어’를 오마주한 것이다. CG가 없던 시절 스턴트 배우의 몸에 실제로 불을 붙여 촬영한 장면이었다.

두 앨범 커버 모두 1960~80년대를 풍미한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Hipgnosis)가 만들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피터 가브리엘 등 세계적 뮤지션의 음반 커버를 만든 선구적 회사다.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 스톰 소거슨(1944~2013)과 오브리 파월(78)이 1968년 공동 창업해 15년간 운영했다.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내일 개봉

록밴드 나이스의 음반 ‘엘레지’(2), 레드 제플린의 ‘프레젠스’(3), 핑크 플로이드 ‘애니멀스’(4) 커버도 대표작. 핑크 플로이드 ‘위시 유 워 히어’ 커버(5)는 BTS 뮤직비디오(6)도 오마주했다. [사진 티캐스트, 하이브]

이들의 전성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감독 안톤 코르빈)이 다음 달 1일 개봉한다. 영국 록음악 황금기, 힙노시스가 이끈 새로운 이미지의 향연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다큐다. 제작자는 음악 애호가로 이름난 ‘킹스맨’ 배우 콜린 퍼스다. 개봉에 앞서 힙노시스 공동 창업자 오브리 파월을 e메일로 만났다.

그는 3월 초 힙노시스 대표작 및 미공개 작품을 소개한 전시(‘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개막에 맞춰 처음 한국을 다녀갔다. “영국에서도 자주 먹을 만큼 김치를 좋아하는데, 서울 김치 맛은 끝내주더라. 서울이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도시란 게 인상 깊었다”고 했다. 파월은 BTS의 오마주도 잘 알고 있었다. “BTS 뮤직비디오는 훌륭했다”며 “덕분에 힙노시스가 다시 관심을 끌게 됐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오브리 파월

Q : 힙노시스가 전시·다큐 등으로 재조명되는 이유는 뭘까.
A : “2017년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핑크 플로이드 전시 ‘언젠가는 사라질 그들의 잔해’(Their Mortal Remains)를 내가 디자인했다. 5개월간 41만 5000명이 관람했다. 이를 계기로 1960~80년대 문화와 함께 힙노시스 작품도 음반 커버를 넘어 순수미술 작품으로 주목받게 됐다.”

Q : 힙노시스의 대표작을 든다면.
A : “사하라 사막에 새빨간 축구공 60개를 늘어놓은 나이스의 ‘엘레지’ 음반 커버는 힙노시스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풍경화를 시도한 사례다. 핑크 플로이드의 ‘위시 유 워 히어’는 배신당한 사업가를 불타는 모습으로 담았는데 노래 가사와 태도를 시각적으로 잘 요약했다. 레드 제플린의 ‘프레젠스’(Presence)도 꼽고 싶다. 흔한 록 음반 커버에서 탈피해 누구나 필요로 하는 모종의 에너지를 조각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Q : 힙노시스 작품이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오마주되는 이유는.
A : “이유는 모르겠지만 뿌듯하다. 젊은이들은 멋진 아이디어에 즉각 반응한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의 작품을 티셔츠·머그컵·엽서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Q : 커버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A : “초현실주의와 추상주의가 스톰과 나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 화가부터 영화 ‘황금시대’(1930)·‘안달루시아의 개’(1929)를 만든 영화감독 루이스 부누엘, 마르셀 뒤샹 같은 다다이스트….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었다.

Q : LP 시대와 현재 음악 소비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A :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반 커버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경건함·경외심은 이제 사라졌다. 스마트폰·태블릿을 터치하는 무감동한 경험만 있을 뿐이다.”

Q : 시각적인 면에서 주목하는 예술가는.
A : “사진 작가로는 데이비드 심스, 나디아 리 코언. 뮤지션은 빌리 아일리시, 두아 리파, 릴 심즈, 스톰지.”

Q : K팝의 비주얼 전략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K팝은 팬덤을 위해 기획돼 매끈하고 건전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팝, 대중음악이다. 가장 좋아하는 K팝 뮤지션은 블랙핑크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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