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성북동 간송미술관 전시…레트로풍 통할까

손영옥 2024. 4. 29. 17: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봄·가을 전시 때면 도로까지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전시가 돌아왔다. 성북동 간송미술관 전시는 2022년 한차례 열리긴 했지만 ‘봄·가을 정례 전시’라는 연속 체제로 이어지는 것은 2014년 이후 사실상 10년 만이다.

보수복원공사를 마치고 재개관전을 갖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보화각). 1939년 1세대 건축가 박길룡시 설계로 완성됐다. 손영옥 기자

간송미술관은 2019년 등록문화재가 된 보화각(寶華閣·간송미술관 건물)에 대한 1년 7개월의 보수복원 공사를 마치고 1일부터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을 갖는다.

1938년 보화각 개관 기념 사진. 간송미술관 제공

지난 29일 언론공개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보화각은 1세대 건축가 박길룡이 1938년에 설립한 흰색 직사각형 건물과 반원형 돌출 구조에서 근대의 맛이 오롯이 풍겼다. 보화각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서화와 도자기, 전적을 수집했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박길룡에게 의뢰해 지은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국보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 12점, 보물 30점을 보유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1971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두 차례 선보인 무료 전시는 큰 인기를 끌어 문화 향유의 아이콘이 됐었다. 하지만 시설이 노후화되고 항온항습 등 보존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며 2014년부터는 그해 3월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협력 전시 형태로 소장품을 선보였다. 코로나 19 및 수장고 신축공사로 인해 2022년 잠깐 전시했을 뿐 연이은 휴관 상태에 있었다.

이번에 문화재청 예산과 서울시 지원 등 23억원의 비용을 들여 보수복원 공사를 하며 보화각은 항온항습과 조명, 이중창 등 전시 시설을 보강하고 배리어프리를 위한 엘리베이터도 갖추게 됐다. 덕분에 과거 보름밖에 열지 못했던 간송미술관 전시는 이제 한 달 반씩 열리게 됐다. 이번 재재관전도 6월 16일까지 이어진다.

등록문화재인 단촐한 2층 전시장에서 누리는 관람 분위기는 말 그대로 레트로풍이었다. 티크나무 바닥이 보존되고 1938년에 구입한 화류장 유리 진열장이 일부 재사용됐다. 간송이 보화각 건립과정을 적은 ‘일기대장’도 최초로 발굴돼 그 화류장 안에 진열 중이었다. 일기대장에 따르면 간송은 거금 9600원을 들여 일본 일본 오사카 야마나카(산중)상회에서 이 단단한 화류목으로 만든 화려한 장을 구해왔다.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당시 좋은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었다”고 말했다.

간송 전형필의 '일기대장' 이 진열된 화각장 진열장. 1938년 구입한 이런 진열장이 일부 재사용됐다.

전시는 전형필을 문화재 수집으로 이끈 스승 위창 오세창이 ‘북단장(北壇莊)’이라고 명명한 부지와 그곳에 세운 미술관 건물 ‘보화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길룡이 설계한 북단장·보화각 도면이 처음으로 나왔고 북단장 개설을 축하하고자 안종원, 김태석, 이한복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이 각자의 서체로 쓴 서예 작품을 비롯해 보화각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오세창이 쓴 ‘보화각 정초석’과 ‘보화각’ 현판 등이 함께 진열됐다.

노수현의 '추협고촌'. 간송미술관 제공

회화 작품은 간송이 1938년 이전에 구입한 컬렉션 가운데 미공개작을 중심으로 선별해 2층에 전시했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수장고가 2022년 3월 신축돼 491.73㎡ 규모로 확충되면서 찾아낸 것들이다.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작인 노수현의 ‘추협고촌(秋峽孤村)’은 당시 신문에 흑백 사진으로 나올 정도로 관심을 모았지만 실물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각각 ‘남나비’와 ‘고접(高蝶)’이라고 불렸던 조선 후기의 유명한 나비 그림 화가 남계우와 고진승의 나비 그림 2폭 대련 작품도 나왔다. 남계우의 영향을 받은 고진승은 오세창이 쓴 ‘근역서화징’에 나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됐지만 실물 나비 그림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 관장은 강조했다. 신윤복을 연상시키는 19세기의 풍속화가 백은배의 ‘백임당풍속화첩(白琳塘風俗畵帖)’ 총 9장면 중 달밤 아래로 은밀히 길을 나서는 여인을 그린 ‘월하밀행(月下密行)’등 4장면도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다.

고진승의 '화접도'. 간송미술관 제공

이처럼 최초 공개되는 화조화, 산수화 등은 근대기 미술 연구자들에게는 귀하고 쏠깃한 사료들이다. 하지만 외국 유명 건축가가 지은 스펙터클한 미술관이 판을 치는 현대미술판에서 옛날식 미술관 건물에서 이뤄지는 전시가 MZ세대에게도 통할지가 관심거리다.

백은배 '양회초야'. 간송미술관 제공

1938년에 입수한 미공개작이라는 것 외에는 전시된 작품끼리의 연계성, 즉 맥락이 없다는 것도 아쉽니다.
간송 전시의 무료 전통을 살려 이번 전시도 무료다. 사전 예약시스템을 통해 입장할 수 있으며 전시 예약은 시간당 100명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