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게임 체인저'? 의료계는 왜 'P-CAB'에 주목할까

이금숙 기자 2024. 4. 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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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AB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왼쪽)과 ‘펙수클루’(오른쪽)/사진=HK이노엔, 대웅제약 제공
지난 24일, 대한민국 37호 국산 신약이 탄생했다.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정’이다. 이는 2022년 11월 대웅제약의 36호 신약 ‘엔블로’의 출시 이후 약 2년 만이다. 자큐보정은 HK이노엔의 ‘케이캡’, 대웅제약의 ‘펙수클루’에 이은 3번째 ‘P-CAB(칼륨 경쟁적 위산 분비 차단제)’ 치료제로, 위식도 역류질환 의약품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고 있다. P-CAB이 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알아본다.

◇섭취 편리성·반감기 등 강점… 초진자에게도 처방 가능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는 크게 3세대로 나뉜다. 1세대(1970년대) 치료제는 ‘히스타민2 수용체 차단제(H2RA)’로, 쉽게 말하면 위벽 세포(위산을 분비하는 세포)의 히스타민(위산 분비를 지시하는 인자)을 차단해 위산을 분비하지 못하게 하는 약이다. 그러나 위산 분비 경로에는 히스타민 이외에도 다양한 경로가 있어 H2RA는 효과가 제한적이며, 복용 후 약 2주가 지나면 내성이 생긴다. 2세대 약은 ‘프로톤 펌프 저해제(PPI)’로, H2RA에 비해 위산 억제 효과가 개선됐다. 다만 프로톤 펌프(위산이 분비되는 통로)는 식사 중 가장 크게 활성화하기 때문에 반드시 식전에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또 PPI는 활성화한 프로톤 펌프에만 결합이 가능해 모든 종류의 위산 펌프에 작용하지 못했다.

3세대 치료제인 P-CAB이 주목받는 것은 PPI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P-CAB은 활성화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프로톤 펌프에 결합해 위산 분비를 억제할 수 있어 식전·식후 상관없이 아무 때나 복용할 수 있다. 또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약효 발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위산 노출에도 생존력이 강해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이와 함께 여러 적응증과 증상 개선 효과도 장점이다. 예를 들어 케이캡은 약효가 빠르고 적응증이 다양하다고 알려졌으며, 펙수클루는 긴 반감기(효과 지속 시간)와 만성기침 증상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도 현재 이러한 장점에 주목해 P-CAB을 많이 처방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 ‘위식도 역류질환 진료지침’이 바뀌면서 처음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도 P-CAB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중앙대광명병원 소화기내과 김상훈 교수는 “P-CAB 개발 초기에는 PPI를 사용해도 효과가 없는 환자에게 대안 성격으로 P-CAB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진료지침 개정 후에는 위식도 역류질환을 진단받고 약을 한 번도 쓴 적 없는 환자에게도 초기 치료로 P-CAB을 처방하는 것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PPI처럼 P-CAB도 장기 복용하면 위장관 감염, 골다공증 같은 부작용이 많아진다는 보고가 있다”며 “또 임산부나 수유자에게는 임상 데이터가 부족해 처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식도 역류질환, 국적 불문 ‘현대인의 질환’
P-CAB 시장의 크기는 해마다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케이캡은 2019년 304억원의 처방 실적을 냈으며, 이후 2020년 771억원, 2021년 1107억원, 2022년 1321억원으로 급속 성장했다. 펙수클루 역시 2022년 7월 출시 이후 누적 처방액 776억원을 기록하면서 위식도 역류질환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또 환자 수의 빠른 증가세도 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김상훈 교수는 “과거 20년치 데이터를 살펴보면 위식도 역류질환의 진단 빈도가 전보다 증가했다”며 “우리나라는 위식도 역류질환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점점 증가해 서구권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위식도 역류질환자는 2018년 약 445만명에서 2022년 488만명으로 10% 가량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500만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인구의 20% 안팎 비율로, 4~5%를 차지했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관련 치료제 시장이 활성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위식도 역류질환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는 식습관이나 식후 바로 눕는 생활 습관, 음주·흡연, 비만 등 원인이 다양한 현대인의 질환”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위식도 역류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13~15%의 유병률이 있는 질환으로, 특히 북미 등 서구권의 유병률이 높다. 위식도 역류질환이 국적을 불문한 ‘전 세계적인 질환’이라는 뜻이다. P-CAB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연착륙하는 이유다. 실제로 HK이노엔은 지난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타부크 제약과 케이캡 수출 계약을 맺었으며, 대웅제약은 지난해 8월 필리핀에서 펙수클루를 정식 발매했다. 약효도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주요 임상시험은 국내에서 진행했지만, 효능·효과에서 인종 간 차이가 없다는 점이 추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시장 확대 위한 연구 ‘계속’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시장은 현 시장의 크기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성도 큰 만큼, 제약사들은 제형 변화와 적응증 확대를 위한 연구 중에 있다. HK이노엔은 연하곤란 환자에게도 투여할 수 있는 구강붕해정을 출시하는 등 제형 변화에 나섰으며, 추가 제형 개발 중에 있다고 전했다. 한편 대웅제약 관계자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로 유발된 위궤양 예방,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 후 유지 요법 등 적응증을 확대하기 위한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약계는 신약 ‘자큐보’의 등장으로 P-CAB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경쟁 관계와 동시에 협력 관계에도 놓여 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기존 PPI 위주 시장에서 P-CAB 중심 시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P-CAB 시장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펙수클루, 자큐보와 함께 시장이 잘 확대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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