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조세국가와 재정의 지속가능성

2024. 4. 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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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여 살기 마련이고 그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용, 재정은 어떻게 마련돼 왔을까. 아주 옛날에는 권력자들이 부의 원천을 독점하는 대신 스스로 재정을 부담했다. 봉건시대 영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영지 내에 사는 농민들에게 소작과 안전을 제공하는 구조다. 영주의 주머니에서 공동체의 살림이 함께 이루어진 것. 장원제가 무너지고 절대왕정 시대가 도래하자 국왕의 재력만으로는 나라 살림을 살기 어려워졌다. 무역독점권을 비롯한 많은 특권을 누렸지만, 절대권력의 핵심인 관료제와 상비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재정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세금이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 이른바 조세국가(Steuerstaat)의 탄생이다. 세금 덕분에 국가 재정이 나아지나 싶더니, 결국 무리한 세금 징수가 빌미가 돼 혁명이 일어나고 만다.

이제 우리는 국민이 헌법을 만들고 법대로 통치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나라 살림을 책임질 권력자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 이른바 민주주의 법치국가. 나라 살림에 필요한 재정도 당연히 국민의 손으로 마련해야 한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적은 이유다. 여기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 한 토막을 소개한다. “우리의 새 헌법이 제정되었소.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 외에 확실한 것은 없소.” 후단만 따와 인간의 삶에서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된다. 맞는 말이다. 다만 맥락을 보면 죽음을 2년 앞둔 82세의 벤저민이 하고 싶었던 말은 헌법이 정한 국가의 기본통치체계라 할지라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단, 국민의 납세의무만 빼고! 그의 예언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히 조세국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재정은 정말 세금만으로 충당이 될까. 세금이 모자라면 빚을 내 쓰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국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힘썼다. 국민의 시급한 사회복지요구에 대응하다 보면 재정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좁은 의미의 나랏빚인 국가채무(D1)라 부른다. 2023년 국가결산 기준 1126조7000억원. 여기에 공공기관이 진 빚을 더하면 일반정부부채(D2·1157조2000억원·2022년 말 기준)가 되고, 공기업 부채까지 더하면 공공부문부채(D3·1588조7000억원·2022년 말 기준)가 된다. 마지막으로 지급 시기나 금액이 정해지지 않은 비확정부채를 포함하면 재무제표상의 부채가 된다. 지난해 말 기준 2439조3000억원이다.

실상 빚 없이 재정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으니 조세국가가 아니라 부채국가(Schuldnerstaat)라 고쳐 부르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명칭이 아니라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우리 국민이 장차 세금으로 부채를 갚을 능력이 충분하다면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면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로 가늠해 볼 수 있는데,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53.5%(D2 기준).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들은 80%가 넘고, 미국과 일본도 각각 121%와 260%에 달한다. 이 정도면 우등생이라고 안심하기 쉽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재정적자로 국채발행이 늘어나면 금리 상승과 통화가치 하락의 위험이 크다. 엄격한 부채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평균을 내보면 53.1%이니 현재 딱 중간인 셈. 문제는 미래다. 고령화가 가속되고 저출산과 저성장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매년 나라 살림의 결과뿐 아니라 미래전망까지 꼼꼼히 점검하고 고삐를 단단히 쥘 때다.

정부는 4월 국가결산보고서를 의결해 감사원에 제출한다. 이맘때면 ‘국가부채 사상 최대’ ‘수천조 돌파’라는 자극적인 뉴스가 반짝 쏟아지는데, 그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개혁을 선택하는 현명한 국민의 관심이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윤재원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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