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정책은 예정된 실패…귀 닫는 기재부 [기자수첩-정책경제]

맹찬호 2024. 4.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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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출생아 수가 또다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43년 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통상 1분기는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나는 시기다. 매번 역대 출생아 수는 최저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2만명 아래로 떨어진 이번 기록치는 사실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국내 합계출산율은 0.6%대로 하락할지도 모른다.

최근 저출산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를 만났다. “우리 사회 난제인 저출산을 해결할 대책이 과연 나올까요”라는 질문에 그는 “미래 세대에게 돈 준다고 애 낳는 생각을 버려야죠. 1억원 주면 출산율 늘어날까요”라고 되물었다.

’돈만 주면 애 낳겠지‘라는 생각은 이제 공론장 위에 올라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 출산·양육비 1억원 지원 방안‘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를 지난 26일까지 10일간 진행했다. 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저출산 정책 효과가 낮았다는 지적과 재정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1억원은 파격적이다. 그만큼 찬반의견도 분분하다. 지난해 기준 출생수는 23만명. 시행되면 23조원이 투입된다.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 48조2000억원 절반 수준인 셈이다. 기존 예산은 그대로 사용하고 20조원 넘는 재정을 투입한다면 정부가 강력하게 밀고 있는 ‘건전 재정’ 방어 수단은 처참히 무너지게 된다.

현금성 출산 지원의 효과가 청년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일과 가정 양립을 고려하지 않는 후진적 노동시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인 반대 주장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보고서에 따르면 무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2014년 33%에서 지난해 9%로 급감했다. 반면, 자녀가 있는 여성은 경력단절 확률이 같은 기간 28%에서 24%로 4%p(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통계가 대한민국 현실을 말해준다. 여성이 아이 갖기를 포기하면 경력단절 위험이 현저히 낮아져서다. 즉 가사·육아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쏠려있다는 방증이다. 교육비 지원, 자녀수당, 산모 지원 비중 증가 등 다양한 제도 개선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저출산 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 한정된 범위에서 검증된 정책을 집중해 사용한다면 정부가 ‘헛심’ 쓴다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이 없었던 것일까. 돈 쓰는 정책은 분명 중요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내놓은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 1200명 가운데 40%는 저출산 원인으로 ‘경제적 부담 및 소득 양극화’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부담감(26.9%)’이 많았다.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한 곳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턱없는 저출산 예산에 정부는 귀를 닫기 바쁘다. 정부는 2006년부터 18년간 저출산에 380조원을 풀었다. 다만 대부분 출산율과 무관한 정책 사업에 투입됐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국내 가족지원예산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다. OECD 38개국 평균(2.29%)보다 낮다. 최하위권인 33위로 정부의 저출산 대응 의지가 어떤 모습인지 보이는 꼴이다.

정부가 최근 들어 저출산 대책 마련에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정책이 대다수다. ‘1억원 대책’과 같은 파격적인 대책을 검토하는 나라도 찾기 어렵다. 특단의 대책을 검토할 만큼 심각한 것은 분명하다. 기재부는 다음 달까지 각 부처로부터 예산요구안을 받는다.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갈 시간은 5개월도 남지 않았다.

필요한 곳에는 돈을 써야 할 것이다. 저출산이 절대 익숙해지면 안 된다. 특히 정부부처와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는 미래세대의 문제라고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오늘(29일)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에서도 저출산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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