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농성' 조희연 교육감 “학생인권조례 지우는 건 학생·교사 편가르기”

서지원, 이후연, 황수빈 2024. 4. 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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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교육청

" 학생인권조례를 지워버리는 방식은 학생과 교사를 편 가르고, 학교 현장에 불신과 원망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28일 오후 2시 서울시교육청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농성 중이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대하며 72시간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성별·종교·가족 형태·성별 정체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학생 인권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제정했고, 이후 서울·광주·전북·충남·인천·제주 등 6개 지역에서도 도입했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가 제32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가결했다. 뉴스1

조희연 “교권침해 원인 복합적인데 학생 인권만 문제 삼아”


학생인권조례는 체벌과 ‘강제 야간 자습’을 없애는 등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학생의 권리만을 강조해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게 교권 침해 논란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면서 ‘휴식권’을 주장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는 권리’ 조항을 드는 식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이 가열됐다. 결국 서울시의회는 도입 12년 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건 충남에 이어 서울이 두 번째다.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교문 앞에는 추모 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조 교육감은 “(학생이 아닌) 다른 구성원에 대한 존중의 노력과 방법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수용한다”면서도 “교권 침해는 ‘내 새끼 지상주의’ 같은 학부모 문화 등 여러 복합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가장 쉽게 책망할 수 있는 학생들의 인권만을 주요한 문제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은 인권조례가 여전히 학생 인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봤다. 그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두발 길이를 아직도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며 “한 학교는 두발 규정을 완화하자는 학생들 의견이 대다수였는데도 학교 구성원 의견수렴 결과를 정리하면서 학생 응답률은 비중을 낮추고, 소수 인원인 교사의 응답에는 가중치를 두었다. 논의 자체를 물거품으로 만든 사례”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의회 111명 중 국민의힘 의원이 76명(68%)을 차지하고 있어 교육감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조 교육감은 재의결될 경우 대법원 제소도 고려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 가결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교총 “교권침해와 인과성 없다는 건 현실과 괴리된 생각”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원 단체에선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찬성하며 “학생권리만 부각한 학생인권조례로 교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김동석 교총 교권본부장은 “지난해 전국 유·초·중·고 교원 3만2951명을 설문조사했는데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며 “이런데도 학생인권조례가 교실붕괴, 교권침해와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생각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인해 학생 인권이 약화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본부장은 “이미 학생인권조례와 관계없이 현행법으로 학생 인권이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며 “오히려 교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교권보호법’이 학생인권조례와 충돌하는 지점들이 있어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26일 오후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조례 폐지, 학생인권법 제정 논란으로 번지나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둘러싼 대립은 향후 ‘학생인권법’ 제정 논란으로 번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총선 공약으로 학생인권법(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의 기본권을 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특별법·신법 우선 법칙에 따라 지금까지 여야 합의로 만들어 놓은 교권보호법이 무력화되면 또다시 교실 붕괴·교권 추락이 과거처럼 심화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이 교사 사회에서 번지고 있다”며 “인권법을 공론화시키려는 마중물로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야권 측이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서지원·이후연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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