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교훈- 자발적으로 개방하고 포용하는 사회만 살아남는다

김창우 2024. 4.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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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5 세계화의 단서들(2019) 송병건


세줄 요약

-지난 2000년간 인류는 낯선 지역, 낯선 사람, 낯선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한계를 넘어섰다.
-역사적으로 발전을 이룬 사회는 개방성, 자발성, 포용성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세줄 요약이 필요 없다.


주요 내용

프레더릭 처치 '빙산'(1891)


이 책의 부제는 '경제학자가 그림으로 읽어낸 인류의 경제문화사'다. 미국 화가 프레더릭 처치가 1891년 그린 '빙산'을 보자. 과학자는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의 아홉배가 물속에 잠겨있겠군', 환경운동가는 '지구온난화로 금방 녹겠네', 디자이너라면 '돛과 하늘의 색이 잘 어울리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라면 '북극항로를 개척하려는 낭만적인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이군'이라고 읽을 것이다. 어느 시기, 어떤 지역을 배경으로 한 그림인지를 확인해 당시의 경제상을 유추해보는 것이다.

전체 4부로 구성한 이 책의 1부는 '고대와 중세'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이슬람 세계의 팽창, 순례를 통한 교류 등을 통해 제국의 형성, 장거리 무역 같은 주제를 다룬다.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야코프 판 휠스동크가 그린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을 보자. 중국풍 청화백자에 싱싱한 과일이 담긴 정물화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이 그림에서 이슬람의 확장을 읽어 낸다.

야코프 판 휠스동크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오렌지와 레몬, 이란이 원산지인 석류는 7세기에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10~12세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본격적으로 재배했다. 610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타난 이슬람이 세력을 확장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확장 경로를 따라 쌀, 사탕수수, 목화, 시금치, 가지, 사프란, 수박, 살구, 야자 등 오늘날 세계인들이 널리 사랑하는 작물이 전해진 것이다. 이슬람은 인두세만 내면 이교도의 종교와 경제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의 확장은 새로운 작물과 농업 기술이 확산하는 세계화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2부 '확장하는 세계'는 근대 초 정화(鄭和) 원정대의 탐험, 콜럼버스의 항해, 커피나 차와 같은 기호 음료의 등장, 국제적 금융 버블 등을 다룬다. 이를 통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됐는지, 이질적인 문화와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의 풍자만화가 우도 케플러는 1901년 뉴욕증시에서 벌어진 거품 붕괴를 상징하는 그림 '월스트리트의 거품-늘 변함없이'를 대중잡지 퍽에 게재했다. 황소 모습을 한 남자(J.P. 모건)가 '부풀려진 가치'라고 쓰인 비누 거품을 부는 모습이다. 미국 철도주식의 폭락을 계기로 금융거품을 풍자한다. 미국 모기지 시장 거품이 터지며 발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00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벌어졌다. 늘 변함없이.

우도 케플러 '월스트리트의 거품-늘 변함없이'(1901)


국제 금융거품은 어쩔 수 없는 세계화의 어두운 면일지도 모른다. 원조는 1637년 네덜란드의 튤립공황이지만 아직 근대적 금융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악영향은 국경을 넘지 않았다. 본격적인 사건은 18세기 초 벌어진 영국의 남해회사와 프랑스의 미시시피회사 주식 붕괴다. 과정은 비슷하다. 국채 증가에 신음하던 영국 정부는 스페인령 중남미로의 노예무역을 독점할 회사를 세우고 주식을 공개했다. 장미빛전망으로 급등했던 주가는 1년만에 폭락했고, 당대의 석학이던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보았다. 미시시피회사는 당시 프랑스가 지배하던 미시시피강 유역(루이지애나)을 독점 개발한다며 투자금을 모았다. 부푼 거품은 1720년 시가총액이 97% 사라지는 비극으로 끝났다.

3부는 18세기 이래 '산업사회의 형성'이 주제다. 과학의 발달,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특허제도 등을 통해 기술과 사회 제도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고찰한다. 1669년 함부르크 출신의 연금술사 헤니히 브란트는 노란 오줌에서 금을 추출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줌을 가열해 얻은 끈적이는 흰 용액에서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빛을 나르는 물질'이라는 뜻의 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10여년 뒤 로버트 보일은 인이 새로운 독립 원소임을 밝혔다. 브란트는 금을 만드는데는실패했지만 화약과 비료의 원료를 밝힌 셈이다. 이 순간을 그린 작품이 화가 조지프 라이트의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연금술사(1771)'다.

조지프 라이트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연금술사'(1771)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이슬라을 거쳐 계몽주의 시대까지 이어진 연금술은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미신이라는 평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연금술사를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처벌했다. 하지만 물질을 쪼개 기본 성분을 얻고, 이를 조합해 새 물질을 만드는 연금술의 핵심 논리는 근대적인 화학 실험의 방법론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연금술을 비롯해 근대부터 크게 발달한 과학은 계몽주의와 결합해 산업혁명과 현대화의 초석이 됐다.

마지막 4부는 '세계화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세계 질서를 형성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러시아 혁명, 중국 대약진운동, 대기오염 등을 다루며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환경 요소가 세계화의 궤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본다. 세계화는 기술, 문화 등 바람직한 부분만 널리 퍼뜨린 것은 아니다. 생태계 교란과 파괴도 이어졌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1958년 급진적인 농촌개혁인 대약진운동을 벌이며 파리, 모기, 쥐, 참새를 네 가지 해악으로 지목했다. 2년간 이어진 참새잡이로 중국 농촌은 메뚜기 등 해충이 창궐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참새는 곡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벌레도 잡아먹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 기간 발생한 대기근으로 2000만명에서 4500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오쩌둥이 1958년부터 중국에서 전개한 급진적 농촌개혁운동인 '대약진운동' 기간 마오의 극렬 지지자인 홍위병들이 잡은 참새를 싣고 행진하고 있다. 중앙포토


오스트레일리아는 토끼와의 전쟁을 벌였다. 1859년 사냥감으로 들여온 열두 마리의 토끼가 폭발적으로 번식한 것이다. 매년 200만 마리 이상을 잡는데도 개체 수가 계속 늘어 토착 동식물을 위협한다. 지금도 2억~3억 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블루길과 배스 등 수많은 외래종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인간이 경제적 이익이나 개인적 호기심으로 생태계를 건드리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교훈을 준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제할 것 같지는 않지만.

세계화의 증거들


송병건 교수는 그림과 사진을 통해 세계화의 관점에서 인류의 경제사를 살펴봤다. 지난 2000년간 인류는 낯선 지역, 낯선 사람, 낯선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한계를 넘어섰다. 성공적으로 한계를 벗어난 사회가 결국 과실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은 개방성이다. 친숙한 환경으로 생활범위를 제한하면 당장은 안전하고 편리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나기 마련이다. 물론 모든 개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정복자가 '세계화'한 멕시코 아스테카 제국 사람들은 착취나 강제노역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두번째 조건이 내부적인 자발성이다. 마지막으로 포용성이 필요하다. 특정 종교, 특정 인종, 특정 신분에만 특권을 주거나 차별하는 사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TMI

송병건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에서 경제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화의 역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 경제사의 흐름을 짚어보는 이 책은 『비주얼 경제사』(2015)와 『세계화의 풍경들』(2017)을 잇는 후속작이면서 완결편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중앙SUNDAY'에 인기리에 연재했던 ‘비주얼 경제사’ 칼럼을 모아 다듬고 확장해 펴낸 책이다. SBS CNBC에서는 세권의 책을 기반으로 '송병건의 그림 속 경제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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