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대신 인적자원을 활용한 도쿄도 분쿄구 고향납세 지정기부 - ‘어린이식당’ 프로젝트

류지윤 2024. 4. 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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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찾는 고향사랑기부제 성공 비결①]

2023년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첫 해, 보수적인 접근으로 제도를 제정한 한국은 650억 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이후, 행정안전부는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재정 확충 등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자 지정기부 도입, 연간 기부금 상한액 조정 등 제도 개선과 함께 최근 ‘민간 플랫폼을 활용하여 기부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히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위기브(Wegive)는 본 연재를 통해 일본 고향세 시장이 어떻게 약 9조 원 규모로 성장했는지, 지역에 어떠한 임팩트를 창출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고향세 지정기부, 플랫폼 등 민간과의 협업, 양질의 답례품, 지역혁신 등 구체적인 사례와 시사점을 조망하고 한국 고향사랑기부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2008년 시작된 고향납세의 작년 실적은 약 9654억엔, 한화 약 8조 6000억원 규모로 이는 시행 14년 전인 2008년과 비교하여 약 120배 성장한 수치이다. 고향납세에 열심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역소멸위기 극복, 관계인구 증대, 지역 경제 활성화, 주민 복지 등 저마다 필요한 곳에 기부금을 활용하며 고향납세의 실질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기부자가 거주하는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의 지자체들은 울상이다. 제공해야 할 행정서비스의 대상은 많은데, 세금은 정작 다른 지역에 내고 있기 때문에 세수 유출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2023년 총무성이 발표한 주민세공제액 실적 등에 관한 통계를 보면, 고향납세 이용자 수가 많은 상위 5개 지역은 도쿄도(약 170만명), 카나가와현(약 87만명), 오사카부(약 75만명), 아이치현(약 64만명), 사이타마현(약 55만명) 순이었다. 오사카와 아이치현은 지방 대도시, 나머지는 도쿄와 도쿄 근교 지역에서 이러한 세금 유출 현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도쿄도 지자체는 고향납세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 제도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재정 상황 압박이 생기는 것을 계기로 도쿄도 내 23개 특별구에서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긴급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도 내에서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는 몇 몇 지자체가 있다. 도심에는 농수산품 등 인기 답례품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지정기부로 승부하는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분쿄구 어린이식당, 스미다구 문화예술 진흥 프로젝트 등이 바로 그 사례이다.

왜 분쿄구는 어린이 급식소를 시작했을까?

도쿄 중심구인 분쿄구. 번화한 동네이기 때문에 대부분 부유한 가정이 거주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분쿄구 내 아동 500명이 양육비 수당을 받고 있으며 약 1200명의 아동이 취학 지원을 받고 있다. 소위 잘 사는 동네에도 아동 빈곤이 발생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 실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득 불균형으로 인해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비슷한 친구들과 뭉쳐 다니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 무단결석을 하는 등의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후루사토초이스 가정급식 GCF 이미지 ⓒ후루사토초이스 갈무리

이에 나리사와 분쿄구청장은 ‘의무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명분 아래 어린이 급식소를 시작했다. 저소득층 아이들만을 위한 식당을 내세우면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무교육을 받는 아이들 즉, 아이들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운영하고 있다. 누구도 고립되지 않은 급식소 구축과 운영에 있어 분쿄구는 컬렉티브 임팩트(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섹터 주체들이 공동의 아젠다를 갖고 협력하는 것)를 통해 NPO, 재단, 기업, 자원봉사 단체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민관협치를 통해 함께 어린이 가정급식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가정급식’ 성공을 위해 민간과의 협업 고집한 이유

분쿄구가 컬렉티브 임팩트를 선택한 이유는 정부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미 노하우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조직과의 협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방의 지자체들이 매력적인 농수산품 답례품을 통해 기부자들의 시선을 끌 때, 도쿄도에서 이점을 가지는 풍부한 민간의 인적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의 문제해결에 동참해 달라는 메시지로 모금에 성공한 것이다. 지자체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취한 것이다.

▲(왼) 분쿄구청장 나리자와히로 슈 (오) NPO법인 플로렌스 대표이사 코마자키 히로키 ⓒ어린이가정식사무국 홈페이지

분쿄구는 기존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학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그러나 학습을 받기 위해 센터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집 앞에 있는 센터가 아닌 먼 곳에 있는 센터에 교육을 신청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가정급식 사업도 만약 정부가 나서서 직접 배달하면 지원 받는 가정은 주위의 눈치를 볼 것이 분명했다. 이에 어린이 식당을 저소득층 아이 뿐만이 아닌,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린이식당이 단순히 아이의 급식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이와 고령자의 고독, 고립 문제까지 함께 다루는 공간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어린이 식당 1곳의 이용자 수는 아이 36.2명, 어른 23.2명이라고 한다. - NPO법인 전국 어린이식당 지원센터 무스비에(이하 무스비에)가 2022년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시행 첫해인 2017년, 어린이 식당 GCF(정부가 시행하는 크라우드 펀딩)를 통해 모금된 고향납세 기부금은 총 8200만엔(한화 약 8억원)으로, 2,343명의 기부자로부터 기부를 받아 당초의 목표엑인 2000만원의 411.2%가 달성되었다. 이후에도 분쿄구 어린이 식당 프로젝트는 매년 5000만엔에서 8000만엔 사이를 꾸준히 기부받고 있다.

민간과의 적극적 협력이 국가 아젠다 형성으로 이어져

어린이식당은 분쿄구에서 시행되기 이전 2012년부터 소규모로 지역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분쿄구의 선전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어린이식당 프로젝트를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NPO법인 전국 어린이식당 지원센터 무스비에(이하 무스비에)가 2022년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7,363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1349개소가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전국적인 확대 배경에는 정책적인 아젠다가 형성되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민간과 협력체계를 갖춘 영향이 컸다. 일본은 2021년 발표한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의 기본방침에서 ‘고독·고립 대책’을 명기하고, 고독·고립대책 담당대신 및 내각관방 고독·고립대책 담당실 또한 신설하였다.

2022년 7월에는 ‘국가의 고독·고립대책 관민 연계 플랫폼’을 만들어, 국가차원에서 NPO 등 다양한 민간 파트너와 본격적으로 협력하며 정책의 전국적 보급 활동, 선진적 대처 및 학술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시작된 작은 흐름을 분쿄구와 같은 기초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확장하고, 중앙정부에서 부처 설립 및 민간협업플랫폼을 만드는 등의 국가 아젠다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단순히 무상급식 등을 통해 아이들의 끼니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체계를 갖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고독·고립의 문제로 시각을 확장하여 방치되는 아이들, 매년 늘어가는 학교 밖 청소년 문제 등도 함께 다룰 수 있다. 또,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육하기 위한 환경의 개선 등 각 지역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분쿄구처럼 민관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과제 해결을 위해 고향사랑기부제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꿈틀대는 교육·육아 지원, 고향사랑기부제로 이룰 꿈

최근 화천군은 교육·육아 지원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2021년 화천군의 평균 출산 연령은 30.3세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타 지역에 비해 젊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천군이 소득 기준이나 수도권과 상관없이 젊은 부부가 많은 건 꾸준한 노력의 결실 덕분이다. 화천군은 현재 청년·신혼부부가 살고 싶은 화천을 만들기 위해 단발성 현금 지원이 아닌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거가 모두 해결되는 통합 솔루션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지원을 설계하고 있다. 특히 입법예고한 청년 및 신혼부부 임대주택 지원 조례안이 각광받고 있는데, 임대주택 거주 시 자녀 출산 여부에 따라 최장 20년까지 지원을 이어간다는 조항이 있다.

이외에도 신혼부부에게 무상으로 공공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키즈아카데미와 복합커뮤니티센터 종일 돌봄 서비스, 자녀 해외 연수, 전 학기 대학 등록금 전액 및 월세(50만원 한도) 지원 등 전국 최고 수준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아이는 사회의 미래이다. 대한민국 미래가 사라지기 전에, 장기적인 시각으로 각 지역에 맞는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 신혼부부가 지역에 정착하고 아이를 갖고, 키우는 20여 년간 안심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 일본 도쿄 분쿄구의 고향납세 사례처럼 고향사랑기부제가 앞으로 한국 사회의 해답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는 건 물론이고 꾸준한 국민적 지지를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국민 스스로가 해결하는 긍정적 사례를 만들어 갈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연경 페어트래블재팬 법인장 admin@fairtraveljap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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