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캐럿' 사파이어만 13개…최고가 주얼리, 까르띠에의 상징 [까르띠에 디지털 도슨트 ②]

윤경희, 왕준열 2024. 4. 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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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부터 중앙일보와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Cartier, Crystallization of Time)’이 문을 연다. 이번 전시는 까르띠에가 특별 협력사로 참여해 300여 점의 예술적 작품을 공개하는 이벤트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6월 30일까지 두 달에 걸쳐 진행된다.

매주 금요일 연재하는 ‘까르띠에 디지털 도슨트’ 2회에선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뚜띠 프루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에서 볼 수 있는 '까르띠에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 사진 까르띠에, Nils Herrmann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전의 구성은 크게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 등 3가지다. 챕터별로 장대한 시간을 거쳐 탄생한 보석, 자연과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장인의 독보적인 공예 기술이 결합한 주얼리를 선보인다. 그중 첫 챕터 ‘소재의 변신과 색채’ 에서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있으니, 바로 ‘까르띠에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다.


‘까르띠에 스타일의 상징’이 된 목걸이


이 하나의 목걸이에는 파랑·초록·빨강 등 다채로운 색을 가진 보석들이 규칙과 불규칙 사이를 넘나들며 모여 있다. 보석엔 각각 나뭇잎과 꽃, 열매 모티프가 조각돼 있다. 동그란 구슬 모양으로 커팅된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루비는 마치 목걸이에 달린 잘 익은 포도송이마냥 풍요로움을 자아낸다.
인도 스타일로 조각된 에메랄드와 루비 등 아름다운 보석들. 사진 까르띠에


목걸이의 이름인 뚜띠 프루티(Tutti Frutti)는 ‘모든 과일’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유색 보석을 열매·나뭇잎·꽃 같은 문양으로 조각해 오밀조밀하게 모아 놓은 모습이 마치 여러 종류 과일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까르띠에의 주얼리가 아니더라도 보통 컬러풀한 디자인의 주얼리를 뚜띠 프루티라 부른다.

아르데코가 붐을 이루던 1920~30년대. 까르띠에는 누구보다 먼저 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비록 뚜띠 프루티란 이름은 1970년대에 와서야 정해졌지만, 처음 공개했을 때부터 전에 본 적 없는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모습 덕에 20세기 주얼리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다.

첫선을 보인 이후 100여 년이 지금까지도 뚜띠 프루티는 까르띠에 스타일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윤성원 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아르데코 시대의 주얼리이자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주얼리”라고 설명했다.


인도 전통 주얼리에서 영감 받아 탄생


까르띠에는 인도 전통 주얼리를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뚜띠 프루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는 인도의 전통 스톤 세공 기법과 까르띠에의 선진적인 디자인, 장인의 스톤 세팅 노하우가 만난 동·서양 문화의 결합체로 볼 수 있다.
1920년대 당시 인도는 유럽 보석상들 사이에서 ‘축복받은 보석의 땅’으로 불렸다. 보석 소비자였던 유럽 상류층 사이에선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사파이어·루비·에메랄드 등 고급 보석 산지였던 인도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이 팽배했다.
전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에 출품된 또 다른 뚜띠 프루티 네크리스. 사진 까르띠에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까르띠에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 역시 전통 인도 주얼리에 대한 까르띠에의 경의가 담겨있다. 보석에 선을 새기는 17세기 인도 무굴제국의 세팅 기법을 사용했고, 처음으로 클래스프(금속 잠금장치) 대신 인도식으로 스트링을 달아 목걸이를 착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까르띠에와 인도와의 인연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까르띠에를 경영했던 창립자 루이 프랑수아와 까르띠에의 2대손 자크 까르띠에가 인도 마하라자(왕족·군주)들이 영국 조지 5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에 참석한 게 시작이다. 그는 인도 상류층 여성에게 자신들의 주얼리를 판매할 요량으로 투명한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벨에포크 스타일 주얼리 130여 점을 가져갔지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판단 착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유는 인도에서 고가의 주얼리를 소비하는 것은 상류층 여성이 아니라 바로 남성인 마하라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가져간 벨에포크 주얼리는 그들에겐 너무 여성스러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마하자라들은 자신의 강력한 힘과 지위를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주얼리를 원했다. 자끄 까르띠에는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인도 마하라자가 좋아할 만한 유색 보석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뚜띠 프루티였다.


사교계 여왕 데이지 펠로즈의 안목


뚜띠 프루티는 당시 유럽 상류층 중에서도 트렌드를 주도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재봉틀 기업 ‘싱어’의 상속녀 데이지 펠로즈다. 그는 당시 사교계 여왕으로 군림했는데, 패션 감각 역시 뛰어나 당시 패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그런 그가 뚜띠 프루티를 착용하자 목걸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당연했다. 당시 패션잡지 보그는 데이지 펠로즈와 목걸이를 두 페이지에 걸쳐 보도할 만큼 화제가 됐다.
까르띠에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를 착용하고 있는 데이즈 펠로즈의 모습. 흑백 사진으로 목걸이의 색을 볼 수 없어 아쉽다. 사진 까르띠에, Cecil Beaton Archive © Condé Nast


전시에 나온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는 1936년 데이지 펠로즈의 요청으로 처음 제작됐다가, 이후 1963년 새롭게 리디자인된 작품이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셀프 선물’로 목걸이를 주문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대 스톤(보석)을 까르띠에에 넘겨 세공을 의뢰했다.

이 목걸이엔 146.9캐럿의 브리올레트 컷 사파이어 13개, 93.25캐럿의 나뭇잎 모양 조각 세공 사파이어 2개와 에메랄드·사파이어·루비·다이아몬드가 세팅돼 있다. 보석을 잡아주는 골격으로 쓰인 소재는 플래티늄과 화이트 골드를 사용해 유색 보석을 돋보일 수 있게 했다.

목걸이는 세월이 흘러 데이지의 딸이 물려받았고, 1991년 경매에 나온 것을 까르띠에가 낙찰받아 브랜드의 유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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