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의 과학 산책] 호기심이 그 유일한 이유일 뿐
어느 국제학술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수학자 앨런 실즈(1927~1989)가 오랜 미해결 난제인 ‘불변 부분공간 문제’에 대하여 발표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가 꽤 지루했다. 문제가 너무 딱딱했던 듯. 결국 한 참석자가 질문했다. 왜 그 문제를 그토록 풀고 싶어 하나요? 앨런 실즈가 잠시 머뭇거리다 건조하게 툭 대답했다. 그냥 내 앞에 그 문제가 있어서요.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소고』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뉴욕 대학의 교수를 지낸 모리스 클라인(1908~1992)이 이 책에 서문을 헌정했다. 그 문장이 명문이다. “미해결 문제는 인간의 지성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가장 커다란 지적 즐거움은 붙잡기 어려운 진리와의 싸움으로부터 얻어집니다. 위대한 작품은 우리의 눈앞에 그런 미해결 문제들을 갖다 놓고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집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인류의 호기심은 멈출 것이다. 곧 인류의 정신은 무기력해지고 뇌는 굳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다루는 핵심 이론은 수학이다. 다행이다.
수학은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을 터. 지금도 수백 년 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수학에 미해결 난제가 있는 한, 호기심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인류의 정신도 잠들지 않을 것이다.
앨런 실즈의 건조한 대답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로지 호기심이 그 유일한 이유일 뿐이라고, 호기심이 살아있는 한 인공지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을 만든 힘도 호기심이고 인공지능을 극복할 힘도 호기심이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 신화의 예지력이 대단하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준 호기심이 인류에게 재앙을 주더니, 인류를 지킬 마지막 희망도 남겨주었으니 말이다.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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