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살던 동네 '오명' 씻는다…형광조끼 입은 외국인 정체

손성배 2024. 4. 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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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23일 오후 팔달구 행궁동 일원에서 외국인 주민 43명 등 자율방범대, 봉사단과 함께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합동 도보 순찰을 했다. 몽골 국적 초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외국인 방범순찰대 조끼를 입고 보이는 112 시연을 바라보는 모습. 손성배 기자

" 수상한 전화, 보이스피싱 조심하세요~ "
지난 23일 오후 7시 경기 수원 화성행궁 앞에 형광색 ‘주민 자율방범대’ 조끼를 입은 외국인 이주민들이 방범 순찰을 했다. 이들은 수원에 거주하는 중국, 베트남, 몽골, 미얀마, 말레이시아, 네팔 등 6개국 출신 이주민으로 1993년 한국에 온 이주민 왕언니 킨메이타(59·미얀마 출신)부터 2018년생 이민 2세 앨리슨(6·네팔 국적)까지 43명이 이날 합동 도보 순찰에 동참했다.

이들은 경찰과 함께 화성 행궁광장을 중심으로 약 2㎞를 돌며 전자금융사기(보이스피싱) 예방 책자를 나눠주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국민의 평온한 일상 지키기’ 캠페인을 벌였다.

수원중부경찰서와 수원 팔달구청이 주관한 이날 이주민거주지역 합동 방범 활동엔 이주민 43명을 포함해 주민 70명과 2018년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육부 인가를 받아 경찰사무행정과를 운영하는 수원 삼일공고 재학생 10명도 참여했다.

앨리슨의 아버지 구룽 산제이(45)는 “산업연수생으로 2004년 한국에 와서 이민 20년차”라며 “20대부터 40대까지 한국에서 지내며 한국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한 적도 많지만, 우리 동네에 무슨 일이 있거나 전쟁이 나도 한국과 우리 가족을 위해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제 2의 고향 그 이상”이라며 “이주민과 원주민 모두 어우러져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주민들이 도보 순찰한 지역은 2012년 4월 오원춘(54·중국)이 20대 여성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심하게 훼손해 치안 위험 지역 오명을 뒤집어썼던 지동 인근이다. 경찰과 이주민들은 오원춘 사건 이후 외국인 자율방범대를 조직하고 이주민이 강력 범죄 행위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합심하고 있다.

박영대 수원중부경찰서장(왼쪽 첫번째)이 23일 오후 팔달구 행궁동 일원에서 '함께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합동 도보 순찰'에 동참한 삼일공고 경찰사무행정과 재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수원중부경찰서

재수원몽골교민회장 이지아(39·몽골 이름 노밍·2018년 귀화)씨는 “2009년에 유학생 비자로 와서 15년째 수원 연무동에 살고 있는데, 10년 전쯤 옆 동네(지동)에 외국인이 저지른 무서운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며 “그 사건 빼곤 한국이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 우리 이주민들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안전한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주민과 함께 하는 방범 활동에 나선 삼일공고 재학생들은 경찰사무행정과 제복을 갖춰 입고 대열 선두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올해 상반기 경찰 공채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만 남겨둔 3학년 김도영(18)군은 “경찰과 시민에 더해 이주민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 치안 활동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면접시험을 잘 준비해서 정직하고 실력 있는 진짜 경찰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행궁 주변 행리단길 상인들은 외국인 자율방범대에 경찰·구청 공무원까지 총 110여명의 줄 지은 행렬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천영숙(중부경찰서 생활안전연합회장)씨는 “오늘 합동 순찰이 수원 팔달구 주민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딛고 함께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동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들을 위해 보이는 112 신고 시연을 끝으로 합동 도보 순찰을 마쳤다. 2022년 1월 도입한 보이는 112는 주변을 신고자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는 기능으로 주변 지형물, 간판 등을 토대로 현장 경찰관이 출동하는 체계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토대로 불과 3분 만에 지구대 순찰차가 도착하자 이주민들은 “위급 상황에 한국말이 잘 안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박영대 수원중부경찰서장은 “남녀노소 국적 불문 지역 주민 모두가 공동체 치안의 주인공이자 핵심”이라며 “특별히 수원은 전국에서 외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만큼 내외국인이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전했다.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23일 오후 팔달구 행궁동 일원에서 외국인 주민 43명 등 자율방범대·봉사단, 팔달구청, 수원시외국인복지센터, 삼일공고 경찰사무행정과 재학생들과 '함께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합동 도보 순찰'을 했다. 손성배 기자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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